'투표용지 부족' 사태가 법정으로 갈 가능성이 높아졌지만 법조계에서는 선거 무효나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법적 책임을 묻기는 쉽지 않다는 분석이 나온다. 또 선관위원의 탄핵 가능성도 법조계에선 의견이 엇갈린다.

지난 3일 서울 송파구 잠실7등 제2투표소 등에서 투표용지 부족으로 일부 시민들이 투표를 포기하면서 선거무효 소송 가능성이 제기됐다. 공직선거법상 선거의 효력에 이의가 있는 정당·후보자·선거인은 일정 기간 안에 대법원에 선거무효 소송을 제기할 수 있다.
공직선거법 제224조는 선거에 관한 규정 위반이 있어도 그 위반이 선거 결과에 영향을 미쳤다고 인정될 때에 한해 선거 전부 또는 일부를 무효로 하도록 한다.
대법원 판례에 따르면 선거무효 사유가 되는 '선거에 관한 규정에 위반된 사실'은 △선관위가 선거사무의 관리집행에 관한 규정에 위반한 경우 △후보자 등 제3자에 의한 선거과정상 위법행위를 묵인·방치하는 등 그 책임으로 돌릴 만한 하자가 있는 경우 △그 밖에 후보자 등 제3자에 의한 선거과정상 위법행위로 선거인들이 자유로운 판단에 의해 투표를 할 수 없게 돼 선거의 기본이념인 선거의 자유와 공정이 현저히 저해되었다고 인정되는 경우다.
대법원은 또 '선거의 결과에 영향을 미쳤다고 인정되는 때'는 규정 위반이 없었더라면 다른 결과가 발생했을지도 모른다고 인정되는 때라고 밝힌 바 있다. 즉 선거무효 소송이 제기되면 과연 해당 선거구에서 투표용지 부족으로 투표하지 못한 인원 수가 얼마나 되고, 이로 인해 당락이 갈릴 수 있는지 등이 구체적인 쟁점이 될 가능성이 높다.
선거·당선무효 소송은 대법원 단심제인 만큼 인용의 문턱이 높다. 선거·당선무효 소송이 인용된 전례도 찾기 어렵다. 2004년 17대 총선에서 열린우리당 후보가 자유민주연합 후보에 9표 차이로 뒤지면서 낙선하자 당선무효 소송을 제기했으나 대법원은 "몇몇 투표구에서 투표용지 교부수보다 투표지 수가 1~3장씩 부족하거나 1장씩 많다는 사정만으로는 지역구 국회의원선거나 해당 투표구 선거 결과에 영향을 미쳤다고 단정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대법원 단심제 결론도 재판소원 대상이 될 수 있다. 헌법재판소 관계자는 "재판소원의 보충성 요건 등을 따졌을때 대법원을 거친 확정판결이면 절차적으로 가능하고 단심 여부는 중요하지 않다"면서도 "기본권 침해의 쟁점이 잘 잡혀야 가능성이 있을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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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관위에 대해 공직선거법 위반으로 형사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책임론이 불거지지만 실현 가능성이 높지 않다. 선관위 출신의 한 변호사는 "공직선거법상 투표방해죄나 직무유기에 해당할 여지가 있지만, 선거관리 담당자들의 직무해태에 대한 고의가 입증돼야 한다"며 "단순히 예상을 잘못했다는 이유만으로는 형사처벌이 어려워 보인다"고 밝혔다.

다만 선관위원 탄핵 가능성은 남아있다. 국회는 헌법 제65조에 따라 선관위원이 직무집행에 있어 헌법이나 법률을 위반한 때 탄핵 소추를 의결할 수 있다. 선관위원 탄핵소추안은 국회 재적의원 3분의 1의 발의와 과반수 찬성이 있으면 가결된다. 이후 헌법재판소의 탄핵 심판으로 최종 확정된다. 탄핵심판은 선거·당선무효 소송과는 별개로, 헌법 제65조에 명시된 공무원들이 헌법·법률을 위배한 때 그 직을 파면할지 여부를 정하는 절차다. 현재까지 한국 역사상 선관위원이 탄핵소추된 적은 없다.
법조계 일각에선 선관위원들이 탄핵심판을 받아야 할 사안이란 목소리가 나온다. 선관위는 헌법 제114조에 따라 선거와 국민투표의 공정한 관리 및 정당에 관한 사무를 처리하기 위해 존재하는데 선관위가 이번 선거에서 헌법에서 정한 역할을 다하지 못했다는 시각이다.
헌법연구관을 지낸 서울의 한 헌법학 교수는 "투표용지를 부족하게 준비해 결국 유권자들이 선거를 못하게 방해한 것"이라며 "헌법에서 정한 '선거의 공정한 권리'를 보전하지지 않았다는 것을 근거로 탄핵심판이 진행될 수 있다"고 했다.
헌법연구관 출신의 황도수 변호사는 "선관위의 존재 이유는 공정한 선거를 위한 것인데 이번 사태는 그 역할을 다하지 못했단 걸 보여준다"며 "선관위의 고의 없는 과실이라 하더라도 유권자들이 주권을 침해 당했기 때문에 탄핵심판을 진행해야 한다"고 밝혔다.
반면 탄핵심판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는 시각도 있다. 헌법연구관 출신 노희범 변호사는 "선관위원들의 고의성이 없기 때문에 탄핵사유가 되지 않는다"며 "이번 투표용지 부족 사태는 있어선 안 되는 실수이긴 하지만 헌법·법률을 위반했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이어 "탄핵심판을 위한 최소한 소명 자료가 있어야 한다"며 "선관위원들이 일부러 투표용지 인쇄를 적게 하라고 지시하게 하거나, 투표를 못 하게 했다거나 하는 고의성이 입증되지 않는 이상 탄핵심판이 어려운 사안"이라고 설명했다.
한 법조계 관계자는 "탄핵소추안은 야당 의원들의 정치적 활동의 일환으로 발의할 수는 있다"면서도 "현재 국회 구성 상황상 과반수의 찬성으로 탄핵소추안 가결이 이뤄지기는 힘들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