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한국병=리스크 회피 증후군

[광화문]한국병=리스크 회피 증후군

홍찬선 증권부장
2006.05.11 12:30

[광화문]

경제주권을 빼앗겨 제2의 경술국치(庚戌國恥)로 불리던 외환위기 때 우리는 “외환위기가 위장된 축복”이라는 비아냥을 가슴속에 고통으로 새겨야 했다. 한 푼이 급한 달러를 조달하기 위해 금 모으기에 나서는 고통을 겪은 덕분으로 외환위기를 1년여만에 극복하고 탄탄한 경제체질을 만들어 냈다. 올 1/4분기 경제성장률이 6.2%에 이르고 1인당 국민소득도 2만달러를 넘보고 있다.

경제선진국 모임인 OECD 가입국답게, 그 어느 때와 견줄 수 없는 태평성대를 누리고 있는 듯 하다. 환율이 920원대로 떨어지면 수출기업이 모두 망할 것이라고 호들갑을 떨어지만, 막상 920원이 돼서도 주가는 사상 최고치를 경신하고 있다. 나물먹고 물마시고 북치고 장고치고 팔베개하고 누운 양상이다.

모든 게 순조로운데 한국병 운운은 왠지 쌩뚱맞아 보인다. 아무런 문제도 없는데 공연히 트집 잡는 것처럼 생각되기도 한다.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면 곳곳에 고질로 바뀔 수 있는 병근(病根)을 찾을 수 있다.

우선 기업가 정신이 메말라가고 있다. 아무리 어려운 상황에서도 기회를 찾아내 기업을 일으키려는 적극적인 기업가보다 있는 기업마저 정리하고 부동산을 사서 임대소득으로 편하게 사려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벤처 1세대들이 창업한 회사를 파는 한편에서는 판교 아파트 청약 에 수천억원의 뭉칫돈이 몰려들고 있다. ‘외환위기의 가장 큰 손실은 창업가 정신의 상실’이라는 말이 전혀 새삼스럽지 않다.

젊은이들이 결혼과 출산을 기피하고 있다. 여성 1명이 평생 낳는 아기수는 지난해 1.08명으로 지구상에서 가장 적었다. 세계 1위의 사교육비와 주거비 부담을 이겨내고 아이를 잘 키울 수 없다는 변명과 육아 외에 할 일이 많다는 이기심이 아기를 낳지 않는 수렁으로 몰아넣고 있다. ‘가난을 대물림하기 싫다’는 절망이 한반도에서 아이 울음소리를 줄어들게 하고 있다.

똑똑한 아이들을 바보로 만드는 교육 시스템은 더욱 한심하다. ‘내신’이라는 획일적 잣대로 학생들의 다양한 소질을 말살시켜 일부의 모범생과 다수의 문제학생을 만들어내고 있다. 현재 한국 교육은 19~20세기 공장 노동자와 보통 사람을 양산할 뿐 21세기 경쟁력을 가진 인재를 키워내지 못하고 있다. 모든 학생에게 똑같은 기회를 준다는 ‘평준화’의 미명 아래 어려운 수학문제를 ‘투표’로 풀려고 하는 어처구니없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 돈 있는 사람은 유학을 떠나고, 하류로 떨어지고 있는 중산층 이하 자녀들은 평준화의 희생물이 되고 있다.

엊그제 경기 평택에서 벌어진 농민과 군?경의 충돌처럼 양보 없는 집단이기주의도 거세지고 있다. 이 땅의 모든 사람은 농부의 아들인 탓인지, 농업문제만 나오면 소수의 독재가 당연시된다. 크게 보면 FTA는 피할 수 없는 일이지만 스크린쿼터 축소와 쌀 수입은 목숨걸고 막아야 하는 일이 된다. 밥그릇과 연결된 일에는 이성은 사라지고 감정만 남아 갈등은 커지고 해결책은 없는 공권력 부재가 장기화된다.

심화되는 양극화에 따른 사회병리현상도 도를 넘어서고 있다. 가난의 고통 등으로 삶의 의미를 잃어버린 많은 사람들이 절도와 강도를 넘어 이제는 연쇄살인과 방화까지 저지르고 있다. 불특정 다수를 향한 분노가 사회적 약자의 피해를 늘려가는 역설이 벌어진다.

5대 한국병은 한마디로 ‘리스크 회피 증후군’으로 표현할 수 있다. 어렵고 위험한 일은 하지 않으려고 하지만, 결과적으로는 건전한 발전을 좀먹는 고질로 진화한다. 병은 일찍 발견하면 별로 힘들이지 않고 완치할 수 있다. 하지만 건강할 때는 병의 조짐이 있어도 무시한다. 경제도 잘 돌아갈 때는 문제를 거론하는 사람은 왕따 당한다. 그러나 병근을 제거하지 않으면 결국 병마에 쓰러지는 것처럼 한국병의 병균을 없애지 못하면 조만간 한국 경제의 태평성대는 사상누각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역사는 수없이 보여주고 있다.

한국경제 최대 위협은 '소비함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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