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주식 투자자, 세금 내고 싶어도 못낸다

해외주식 투자자, 세금 내고 싶어도 못낸다

박성희 기자
2010.04.08 14:16

양도세 개정으로 분기별 과세, 방식도 복잡해 세무사도 "못 하겠다"

# 2006년부터 해외주식에 직접 투자해 온 자영업자 장 모씨(43세)는 내달 양도소득세 납부를 앞두고 속이 바짝바짝 타 들어간다. 연 1회였던 양도소득세 신고가 올해부터 분기별로 늘어났기 때문이다.

지난 1~3월 장 씨의 해외주식 거래건수는 330건. 방대한 양과 복잡한 수익 계산 방식에 세무사도 "못 하겠다"고 두 손 들었다. 장 씨는 "분기마다 그 많은 거래에 대해 일일이 수익을 계산하라는 건 아예 해외주식 투자를 하지 말라는 것과 같다"며 분통을 터뜨렸다.

5월 말 양도소득세 신고 납부를 앞두고 해외주식 투자자들이 '범법자'로 몰릴 위기에 처했다. 양도소득세 신고 횟수가 연 4회로 늘어난 반면 현실을 반영하지 못한 과세 체제로 내야할 세금이 얼마인지 계산조차 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게다가 올해부터 기간 내 신고하지 않으면 20%의 가산세가 붙는다. 세 부담을 줄이기 위해 제 때 세금을 납부하려고 해도 할 수 없어 '진퇴양난'에 빠진 셈이다.

개정된 양도소득세법에 따르면 올해부터 해외주식 거래가 발생한 분기 말부터 2개월 안에 양도소득세를 자진신고 납부해야 한다. 3월 주식거래를 한 투자자의 경우 5월까지 1분기 양도소득세를 신고해야 한다는 말이다.

해외주식 거래규모가 급증하면서 종목별로 매매 건수마다 환율, 수수료 등을 모두 고려해 세금을 계산하기 어렵다는 점을 호소하는 투자자들이 늘고 있다. 지난해 월평균 해외 주식 거래대금은 3억9700만달러. 하지만 올해 들어서는 매달 7억달러에 달하는 금액이 거래되고 있다.

해외주식을 분할 매매할 경우 '선입·선출방식'에 따라 분할 매수 가격을 적용해 수익을 계산해야 한다. 예를 들어 A 주식이 1달러일 때 1000주, 2달러일 때 2000주를 매수했다고 하자. 이후 주가가 7달러로 올라 2000주를 매도한다면, 이 가운데 1000주는 처음 1000주를 매수했을 때 가격인 1달러로, 나머지 1000주는 2달러로 적용해 수익을 계산해야 한다는 말이다. 이 경우 1000주에 대한 매매 수익은 6000달러(1000주*6달러(7달러-1달러)), 나머지 1000주는 5000달러(1000주*5달러)의 수익을 낸 것으로 계산된다.

이런 식으로 종목마다, 매매시점의 환율과 수수료까지 모두 고려한 수익이 250만원이 넘으면 초과분에 대해 20%가 양도소득세로 부과된다.

장 씨의 경우는 그나마 나은 편이다. 거래내역만 200페이지에 달하는 투자자도 있다. 증권사마다 적용되는 환율 기준시점도 제각각이어서 현 과세체제에선 형평성 위배 논란도 불거질 수 밖에 없다.

A 증권사 관계자는 "일반 투자자들이 수백 건에 달하는 매매내역을 이런 복잡한 방식으로 직접 계산하는 건 거의 불가능하다"며 "일부 VIP 고객은 증권사 직원에게 부탁하지만 자진신고이기 때문에 대신 해줄 수도 없거니와 직원도 이를 일일이 찾아서 계산하는 건 어렵다"고 전했다.

업계 관계자는 "세무사들조차 업무량과 강도가 엄청나 수익도 남지 않는다며 해외주식 양도소득세 업무를 받지 않는다"며 "과세 체제가 현실에 맞게 개선되지 않는 이상 대다수 해외주식 투자자들이 납세 의무를 다하지 못해 세금 폭탄을 맞게 된다"고 지적했다.

업계에선 잦은 주식 거래를 고려하지 않고 부동산 거래와 같은 방식으로 일괄 과세한 게 문제라고 지적했다.

또 다른 업계 관계자는 "당초 부동산 시장 안정을 위해 세제 개편이 이뤄지면서 주식 시장의 현실은 고려되지 않은 채 행정 편의적으로 일괄 적용됐다"며 "분기별로 손에 꼽을만큼 거래가 이뤄지는 부동산과 하루에도 수십 건 매매하는 주식은 엄연히 과세 방식이 달라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그동안 세금 계산 방법이 워낙 복잡하고 제출 서류가 방대해 투자자들이 납세에 어려움을 겪었는데 과세 체제를 정비하지도 않고 가산세까지 부과하는 건 관련 시장을 고사시키겠다는 뜻"이라고 꼬집었다.

투자자 불만이 높아지면서 해외주식 사업에 차질을 빚게 되자 해당 증권사들은 해외주식 직접투자의 양도소득세 신고 절차와 높은 세율이 해외주식 거래 활성화를 가로막고 있다며 관련 세제 개정을 건의한 상태다.

신한금융투자와 삼성증권, 대우증권, 우리투자증권, 현대증권, 한국투자증권, 대신증권, 한화증권, SK증권, 리딩투자증권, 키움증권 등 11개 증권사는 지난 달 말 금융투자협회에 '해외주식 양도소득세 신고절차 개정 건의안'을 제출했다. 해외주식 양도소득세 신고회수 축소와 세율 인하 등이 골자다.

협회 관계자는 "증권사들의 건의 내용을 이미 두 차례에 걸쳐 구두 요청했으나 기획재정부 세제실에선 변경할 수 있는 게 없다는 답변만 했다"며 "해외에서도 주식 거래에 대해 분기별로 과세하는 경우는 없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협회는 8일 미래에셋증권을 포함한 12개 증권사 담당자를 대상으로 회의를 열고 당국에 정식으로 관련 법규 개정을 건의할 계획이다.

과세가 해외주식 투자의 복병으로 떠오르자 이미 해외주식 거래는 감소하는 추세다. 이제껏 해외주식 거래시 발생한 양도소득세를 예정 신고할 경우 신고 세액의 10%가 감면되던 것마저 없어진 것도 해외주식 투자의 발목을 잡고 있다.

실제로 올들어 1월 해외주식 월평균 거래대금은 7억5000만달러, 2월 6억9700만달러로 줄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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