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T리포트]중복상장 금지의 딜레마(上)

이재명 대통령이 이른바 '중복상장'을 주주가치 훼손과 '코리아 디스카운트(한국주 저평가)' 원인으로 지목하면서 금융당국이 중복상장을 원칙적으로 금지키로 했다. 관건은 예외 조항과 조건들이 어디까지 허용되느냐 여부다. 한국거래소가 마련하고 있는 중복상장 관련 가이드라인이 규제의 첫 시발점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산업계는 유연한 적용을 요구한다. 정책 도입 과정에서 다양한 논의가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 중복 상장 원칙적으로 금지…거래소 세부기준이 2분기 이후 적용될 예정
25일 금융당국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한국거래소(이하 거래소)의 중복상장 관련 세부기준이 2분기에 의견수렴을 거쳐 확정될 예정이다. 지난 18일 청와대에서 진행된 '자본시장 안정과 정상화 간담회'에서 금융당국은 앞으로 중복상장을 금지한다는 향후 원칙을 공개했다.
거래소의 세부기준도 이미 마련된 상황이다. 당초 올해 1분기 확정이 될 예정이었지만 대통령과 청와대까지 중복상장 규제 필요성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면서 적용 시기가 2분기까지 밀렸다.
구체적으로 중복상장의 범위는 △상장회사의 외부감사법상 종속회사 △상장회사의 공정거래법상 계열회사로 수직적 지배관계에 있는 회사(손자회사 등 포함)를 상장하는 경우로 명확해질 예정이다.
그동안은 분할 후 중복상장하는 '쪼개기 상장'만 다소 추상적으로 규율하는 선에서 그쳤지만 앞으로는 인수하거나 신설된 자회사도 모회사와 함께 상장할 수 없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산업계가 유연한 적용을 요구하고 있는 점이 변수다. 이날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는 더불어민주당 코리아프리미엄 K-자본시장 특별위원회 주관으로 열린 '중복상장 쟁점과 개선방향 토론회' 다양한 산업계 의견이 나왔다.
중복상장 금지 취지는 공감하면서도 시장 위축을 우려한 유연한 적용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김춘 한국상장사협의회 정책1본부장은 "종복상장이 원칙적으로 금지까지 갈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고 말했으며 안상준 한국벤처캐피탈협회 부회장은 "인수합병(M&A)도 중복상장이라고 다 막으면 결국 모기업의 자금 부담은 커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이날 토론회에 참석한 임홍택 한국거래소 유가시장본부본부장보는 "지난 18일 내용을 보고 기본적으로 (중복상장 범위를 시장이) 인지했을 것"이라며 "중복상장 여부 심사는 엄격하고 제한적으로 주주 가치 훼손 여부를 반영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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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따라 원칙적으로 중복상장이 금지되지만 예외적으로 상장이 필요할 경우에는 △상장 필요성 △주주소통 여부 △주주보호 △경영·영업의 독립성 등을 종합심사해 기준을 명확히 충족하는 경우에만 허용하는 방안이 검토되고 있다.
◆ 금융당국, 상황에 따라 중복상장 관련 법 개정도 준비
금융당국도 거래소 규정 개정을 먼저 시장에 적용하고 자본시장법에서 관련 내용을 개정할 예정이다. 공시 가이드라인이 마련되지만, 법 개정을 통해 공시를 법적 의무사항으로 담겠다는 구상이다.
1단계로 거래소에 규정 개정으로 공시 가이드라인이 마련되고 난 후, 2단계로 자본시장법을 개정해 법상 의무도 부여한다는 계획이다.
제도 개선 취지에 맞춰 민주당은 상장사 물적분할 시 기존 주주에게 신주를 우선배정하는 법개정이 국회에서 함께 논의할 계획이다. 이는 금융당국도 2024년말 법개정을 공식적으로 발표했던 사안으로 기업이 물적분할한 자회사를 상장할때 공모 주식의 최대 20%를 모회사 주주에게 배정하는 내용이었다.
금융당국의 기존 주주 배정 의무를 20%로 뒀지만 국회의원들이 발의한 동일한 내용의 법개정안에서는 모회자 주주 의무 비율이 25~70%까지 다양하게 두고 있다.
이에 대해 금융당국 관계자는 지난 20일 입장을 통해 "현재 논의되는 자본시장법 개정안은 중복상장 원칙금지 방안이 발표되기 전에 발의된 법안"이라며 "향후 중복상장이 원칙적으로 금지되는 가운데 예외적으로 허용 시에도 모회사 주주에게 신주가 우선 배정될 수 있도록 해 일반주주를 한층 두텁게 보호하는 장치로 작용할 것"이라고 말했다.
오기형 K-자본시장 특위 위원장은 "중복상장의 효율적인 측면도 있다. 원칙 금지하되 예외를 인정하는 게 서로가 납득가능하고 예측가능한 내용이어야 한다. 하지만 중복상장은 줄이긴 해야 한다"며 "6월 전까지 많은 토론회를 거쳐서 의견을 수렴해나가겠다"고 밝혔다.

중복상장은 자회사가 기업공개(IPO), 전환사채(CB), 교환사채(EB) 등을 통해 자체적으로 자금을 조달할 수 있는 창구로 활용됐다. 알짜 사업부를 분할 한 중복상장은 기업가치가 자회사로 쪼개긴 모회사의 주가에 타격을 입힐 때가 많았다. 소액주주의 투자 손실은 시장에 대한 신뢰도마저 떨어뜨렸고, 이는 코리아 디스카운트로 이어졌다.
25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지난 20일 기준 코스피 평균 주가순자산비율(PBR)은 1.85배를 기록했다. 1년 전(0.92배)에 비해 2배 성장했다. 주가수익비율(PER)은 같은 기간 13.83배에서 24.10배로 상승했다. PBR과 PER은 일반적으로 낮을수록 저평가, 높을수록 고평가된 상태로 해석한다.
투자업계에선 증시 지표가 상승했음에도 아직 저평가 단계를 벗어나진 못했다고 본다. 코스피 상장사 809곳 중 자료가 없거나 지표를 산출할 수 없는 6곳을 빼고 PBR이 1배를 밑돈 업체는 554곳. 코스피 상장사 중 약 70% 비중을 차지하는 기업의 시가총액이 당장 기업을 청산했을 때 가격에도 못 미쳤다.
이런 주가 저평가의 핵심 요인으로 중복상장이 꼽혔다. 중복상장은 사업이익이 분산되거나 중복 평가돼 기업 입장에서 유리하지만, 기존 주주에는 불리하다는 지적을 받는다. 이들의 입장에선 주식으로 투자했던 회사의 이익을 곧바로 가져가지 못하고, 지분율에 따른 재무 효과를 지켜보는 게 최선이다.
2020년 2차전지 사업부를 자회사 LG에너지솔루션으로 물적분할해 상장시킨 모기업 LG화학의 경우가 대표적이다. LG화학의 시총은 20조5071억원으로, LG에너지솔루션(83조700억원)의 4분의 1 수준이다. 이 와중에 LG화학은 LG에너지솔루션의 지분을 70%까지 단계적으로 낮출 계획이다. LG화학의 기업가치는 지금보다 낮아질 수 있는 상황이다.
LG화학의 주당 가치는 희석된 것으로 분석된다. LG에너지솔루션의 주식 발행은 시장에서 새롭게 유통된 것이다. 유통물량이 늘어나면 주당순이익(EPS) 지표가 분산되면서 주식 가치가 하락한다. LG화학의 주가는 이날 장 마감 기준 31만8000원으로 물적분할 당시 고점인 105만원 대비 3분의 1 토막났다.
또 다른 중복상장 사례로 카카오가 꼽힌다. 카카오는 중복상장을 외형 확장 창구로 쓰면서 껍데기만 남은 것으로 보인다. 카카오가 분사해 상장한 업체는 카카오뱅크, 카카오페이, 카카오게임즈 등이다.
카카오가 지주사 역할을 자처해 알짜 사업부를 떼 내면서 주가는 우하향했다. 카카오톡 플랫폼으로 사업을 확대했기 때문에 플랫폼의 가치가 여러 기업 주가에 중복평가 되기도 했다. 카카오의 상장 자회사에서 일부 임직원은 스톡옵션을 매도해 차익을 실현했고, 개인은 평가손실을 입으면서 기업 신뢰도에도 타격을 줬다는 평가다.
일각에서는 중복상장이 그간 분할 자회사의 자체적인 자금조달 기법으로 활용됐던 만큼, 과도한 규제는 피해야 한다고 본다. 상장사가 아닌 자회사는 지분을 담보로 하는 EB나, 주식을 팔아 차익을 남기는 CB를 발행할 수 없다. 이에 따라 자금 조달은 온전히 모회사의 부담이 될 수 있다.
투자은행(IB) 업계 관계자는 "모회사는 중복상장 한 자회사의 지분율을 낮추면서 외부자금을 수혈하게 되는데, 이 경우 수급에 악영향을 미쳐 주가는 떨어지고 리스크가 공유된다"며 "다만 자사주 소각처럼 적응 시간을 줘야 하는 것은 물론이고, 신사업을 위해 레버리지를 일으켜 투자받는 경우까지 막는다면 금융생태계를 망치게 될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