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한 병원의 '상처뿐인 영광'

[기자수첩]한 병원의 '상처뿐인 영광'

안정준 기자
2016.02.01 03:10

"병원 문을 닫았는데 소송에 이긴들 무슨 소용이겠습니까"

최근 건강보험공단(이하 공단)을 상대로 한 '요양급여비용 환수처분 취소소송'에서 승소한 의정부 L병원 관계자는 이번 판결의 의의를 묻는 질문에 이 같이 말했다.

L병원은 원장인 의사 K씨 명의로 개설된 재활병원이었다. 하지만 동업을 한 의사 J씨가 경기도 일산에서 또 다른 병원을 운영하고 있었다는 이유로 이른바 '병원 이중개설 금지법' 위반 혐의를 받았다. 2014년 경찰은 K씨와 J씨가 공모해 병원을 이중 개설하고 운영한 것으로 판단했고, 이 같은 수사결과를 전달받은 공단은 L병원에 요양급여비용 지급을 중단했다. 지급된 요양급여비 약 92억원도 환수하겠다고 통보했다.

결국 법원은 K씨와 동업한 J씨가 L병원의 경영에 관여한 것으로 보기는 힘들다고 판단했다. 하지만 '상처 뿐인 영광'이었다. 요양급여가 수익 대부분인 L병원은 공단의 급여지급 중단으로 자금유통이 막히자 3개월 만에 문을 닫았다.

한 병원을 파산으로 몰고 간 바탕에는 '의료법 제 33조 8항'(이중개설금지법)이 있다. "의료인은 어떠한 명목으로도 둘 이상의 의료기관을 개설·운영할 수 없다"는 내용이다. "의료인은 하나의 의료기관만 개설할 수 있다"는 기존 조항을 2012년 개정 강화한 것이다. 의료기관이 지나친 영리를 추구해 기업화하면 환자 건강을 돌보는 본래 목적에 소홀할 수 있다는 취지에서 개정됐다.

그러나 조항 자체가 애매모호해 법률의 명확성 원칙에 위배된다는 의견이 법조계에서 나온다. 어느 정도의 경영행위를 할 때 회사를 지배하는 것인지, 개설과 운영의 범위가 어디까지인지가 불분명하다는 것이다. L병원의 변론을 맡은 김주성 법무법인 세승 변호사는 "비 의료인이 여러 병원을 운영하는 '사무장병원'은 금지해야 할 분명한 이유가 있다"며 "모호한 법 조항 탓에 의료인에 대한 처벌이 사무장병원과 동일하게 이뤄지고 있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의료법 제 33조 8항'은 '반(反) 유디치과 법'으로 불리기도 한다. 1명의 의사가 여러 병원을 운영한 혐의를 받은 유디치과와 대한치과의사협회의 분쟁과정에서 개정안이 통과된 탓이다. 당시 개정안 통과의 내막이 구체적으로 드러나지는 않았지만 최근 L병원의 사례에서 보듯 의료계 전체의 현실을 포괄적으로 반영한 법이 아닌 것만큼은 확실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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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정준 특파원

안녕하세요. 국제부 안정준 특파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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