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삐뽀삐뽀'
사이렌 소리와 함께 응급환자를 실은 구급차가 병원을 향한다. 그 안에서 응급구조사(구급대원)이 심전도 검사 등 응급처치를 시행한다. 구급차가 병원 응급실 앞에 도착한 후 응급구조사는 환자를 들것에 실어 재빨리 응급실에 이송한다. 응급구조사의 역할은 여기까지다. 이후 병원 내 임상병리사가 응급실에 모여 의사의 지시 하에 심전도 검사를 시행한다.
그간 응급환자를 병원에 이송해 처치하는 일반적인 시스템이었다. 그런데 응급구조사가 병원 내 응급실에서도 심전도 검사 등 응급처치를 시행할 수 있게 해야 한다는 내용의 '응급구조사 업무 범위 조정(안)'이 심의·의결되면서 임상병리사와 응급구조사 간의 업무 충돌이 예고된다. 의료계에선 직역 간 갈등이 심화하면 '제2의 간호법' 사태로 커지지 않을까 우려하는 분위기다. 이 두 직역은 간호법 저지를 위해 뭉친 13개 의료단체인 보건복지의료연대에 각각 속해 있다.
보건복지부는 지난 2일 서울 영등포구에 위치한 켄싱턴 호텔에서 '2023년 제1차 중앙응급의료위원회(이하 '위원회')를 개최했다. 이 위원회는 복지부 장관(위원장)과 소방청장, 중앙응급의료센터의 수장 등 6명, 민·관 응급의료 전문가 9명 등 15명으로 구성됐다. 이날 회의에선 권역응급의료센터 추가 지정 추진계획(안)과 함께 응급구조사 업무 범위 조정(안) 2건을 심의·의결하고, 제4차 응급의료 기본계획(안)을 논의했다.
그중 문제로 불거진 건 응급구조사 업무 범위 조정(안)이다. 이날 이 위원회는 "응급상황이 발생하면 시의적절한 응급처치를 통한 환자 생존율 및 경과 개선을 위해 구급 현장, 병원 응급실 등에서 종사하는 응급구조사의 업무 범위를 확대하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심의 결과에 따르면 응급구조사(1·2급) 가운데 1급 응급구조사의 업무 범위에 ▶심정지 시 에피네프린 투여 ▶아나필락시스 쇼크 시 에피네프린 투여 ▶정맥로 확보 시 정맥혈 채혈 ▶심전도 측정 및 전송 ▶응급 분만 시 탯줄 결찰 및 절단 등 5가지가 추가될 예정이다. 이들 업무는 의사의 지도·감독하에 수행되는 것을 전제로 하며, 복지부는 응급의료법 시행규칙을 개정해 내년 하반기부터 적용한다는 방침이다.
그중 '심전도 측정 및 전송'과 '정맥로 확보 시 정맥혈 채혈'의 경우 임상병리사의 업무 영역과 겹친다. 이에 대해 임상병리사 단체인 대한임상병리사협회는 "심전도 검사는 정규 교과과정을 통해 '면허증'을 취득한 임상병리사의 전문적인 업무 권한이지만 '자격증'을 취득한 응급구조사에겐 해당 업무를 할 수 있는 면허가 없다"며 "응급구조사가 의료기관 내에서 심전도 검사를 하는 건 의료법에 근거할 때 불법"이라는 입장이다. 장인호 대한임상병리사협회장은 "면허가 없는 응급구조사를 응급실에서 근무하게 할 게 아니라, 면허를 가진 임상병리사를 응급실에서도 근무하게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응급구조사 측은 말을 아끼는 분위기다. 대한응급구조사협회 관계자는 "보건복지부는 응급의료법 제13조의2에 따라 응급환자의 생명과 건강을 보호하고 응급의료의 효과적 제공을 위해 5년 단위 응급의료 기본계획을 수립하고 있다"며 "이번 응급의료 기본계획안에 대해 협회 차원의 공식적인 입장은 유보하며 이에 따라 인터뷰에 응할 수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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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지부와 대한응급구조사협회에 따르면 응급구조사의 업무 범위는 1999년에 14종 업무로 한정해 열거식으로 규정된 이후 지금까지 24년간 큰 변화 없이 유지돼 왔다. 해당 14종 업무에는 ▶심폐소생술 시행을 위한 기도 유지(기도기 삽입, 기도삽관 등) ▶정맥로 확보 ▶인공호흡기 이용 호흡 유지 ▶약물 투여(저혈당성 혼수시 포도당 주입 등) 등 1급 응급구조사 업무에 2급 응급구조사 업무 10종(기본 심폐소생술, 부목 등 이용한 사지 고정 등)으로 한정했다.
복지부 응급의료과 관계자는 "시간 민감성 질환(심정지·쇼크·심근경색 등)의 경우 빠른 투약, 심전도 획득, 채혈 등을 환자의 회복(자발 순환, 정상혈압 등)이 가능해지면 조기 진단·수술에 기여할 수 있는데도 응급구조사가 할 수 있는 업무가 한정돼 이들 처치의 현장 적용이 불가능했다"며 "이에 복지부는 구급대 시범사업 및 연구용역을 통해 적용 가능성이 확인된 9종 업무를 추가 검토 대상으로 선정했고, 최종 결정된 추가 업무는 1급 응급구조사 업무에 적용되며 의사의 지도·감독하에 수행되는 것을 전제로 한다"고 밝혔다.
이에 대한임상병리사협회는 "복지부가 일방적으로 응급구조사의 업무 범위 조정안을 강행한다면 환자의 안전과 생명을 위협하는 이 사안을 좌시하지 않고 총력으로 저지할 것"이라며 "법적 대응도 불사하겠다"는 내용의 성명서를 14일 발표할 예정이다. 이 협회는 이 조정안이 임상병리사의 면허권을 침탈한다는 내용을 전달하기 위해 오는 16일 박민수 복지부 제2차관과의 면담을 요청할 예정이다.
다음은 장인호 대한임상병리사협회장과의 일문일답이다.

Q. 임상병리사의 '면허'를 강조하는 이유는.
"면허는 복지부 장관이 해당 직역만 할 수 있게 한 업무 범위다. 운전하려면 운전면허가 반드시 있어야 하듯 심전도 검사를 시행하려면 의사 또는 임상병리사라는 면허가 있어야 한다. 대한의사협회에서도 심전도는 의사 외 임상병리사만 가능하다고 인정한 바 있다. 하지만 응급구조사는 면허증이 아닌 자격증을 취득하는 직역이다. ST 분절 상승 심근경색 진단 능력에 대한 심전도 교육 연구 결과에서 1급 응급구조사의 심전도 문제 정답률이 매우 낮은 것으로 조사됐다. 제대로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응급구조사의 업무 범위를 확대하면 환자 안전을 위협할 수 있다."
Q. 분초를 다툴 땐 빠른 처치도 중요하지 않나.
"물론이다. 그래서 2019년 2월 대한응급구조사협회와 정의당 윤소하 의원이 개최한 '응급의료 체계 고도화에 따른 응급구조사의 역할 및 업무 범위 개정 공청회'에서 우리 협회는 구급차와 의료기관 밖 응급상황에 한정해 응급구조사도 심전도를 측정할 수 있게 업무 권한을 '양보'했다. 단, 병원 내에서는 임상병리사가 해야 한다는 조건이었다. 병원 응급실에 환자가 도착한 이상, 그곳 응급실엔 의사가 있고 그 병원엔 임상병리사가 상주해 있다. 응급실에 심전도 검사 인력이 필요하면 병원 내 임상병리사를 부르거나, 임상병리사를 추가로 채용하면 될 일이다. 심전도 검사에 대한 면허를 임상병리사가 갖고 있기 때문이다. 보통은 응급환자가 도착하기 전, 코드블루가 뜨면 병원 내부의 임상병리사가 응급실로 모여 대기한다."
Q. 이번 조정안에선 '응급실 등'이 언급됐는데.
"조정안에 따르면 응급상황 발생 시, 시의적절한 응급처치를 통한 환자 생존율 및 경과 개선을 위해, 구급 현장 및 '병원 응급실 등'에서 종사하는 응급구조사의 업무 범위를 확대하기로 결정했다. 응급실도 아니고 응급실 등이다. 이는 병원 내 응급실뿐 아니라 응급상황이 있는 병실에서도 응급구조사가 심전도 검사 등을 할 수 있게 된단 얘기다. 응급구조사가 의료기관(병원) 내에서 응급처치하는 것 자체가 불법인데 의사와 임상병리사가 포진해 있는 병원 내 어느 곳에서든 응급구조사의 업무가 가능해지면 검사·진단의 정확도가 떨어져 결국 국민의 안전에 위해를 가할 수밖에 없다."
Q. 이번 조정안이 시행되면 어떻게 할 건가.
"그럼 우리 임상병리사도 앰뷸런스(구급차)에 올라타 심전도 검사를 직접 하겠다고 주장할 계획이다. 우리 협회는 이미 응급구조사가 구급차 내에서 심전도 검사를 할 수 있게 양보했다. 손가락 하나 잘라줬더니 팔을 달라고 하면 안 되는 것 아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