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투 초대석]이안 브레머 유라시아그룹 회장
최근 글로벌 금융시장을 다시 뒤흔들고 있는 유로존 채무위기의 발단은 그리스의 정치 혼란이었다. 올해로 3년째 이어지고 있는 유로존 채무위기 자체가 경제문제가 아닌 정치문제라는 지적도 있다. 유로존에 부족한 것은 위기를 해결한 돈이 아니라 정치적 결단과 리더십이라는 의미다. 지난해 8월 이후 글로벌 금융시장을 뒤흔든 악재도 유로존 채무위기와 함께 채무한도조차 무난하게 올리지 못했던 미국 정치권의 무능이었다.

경제위기가 정치 요인에 크게 좌우되는 현상이 빈번해지면서 더욱 바빠진 남자가 있다. 경제에 영향을 미치는 정치 리스크를 분석, 컨설팅하는 유라시아그룹의 이안 브레머 사장이다. 미국 뉴욕 맨해튼의 가장 번화한 5번가 중심에 위치한 유라시아 그룹 사무실에서 브레머 사장을 만났다.
컬럼비아대학 교수로 국제정치와 관련한 저서를 다수 발간한 브레머 사장은 "글로벌 시장이 직면한 가장 큰 리스크는 유로존이 아니라 중국"이라는 색다른 견해를 내놓았다.
-그리스가 유로존에서 탈퇴할 수밖에 없을 것이란 우려가 높아지고 있다.
▶지난 6일 총선 이후 그리스의 유로존 탈퇴 가능성이 높아진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조만간 그리스가 유로존을 떠날 가능성은 여전히 낮다. 무엇보다 그리스 국민 대다수가 유로존에 남아 있기를 원한다. 그리스에서 공산당을 지지하는 8%만이 유로존 탈퇴를 원한다.
독일도 그리스가 유로존에 남기를 원한다. 독일 국민들이 그리스에 구제금융을 지원하는 것을 달가워하지는 않지만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독일 국민 대다수가 독일을 위해 유로존이 필요하다고 보고 있다. 유로존 덕분에 독일은 중국에 이어 세계 2위의 무역흑자국의 지위를 유지하고 있다. 한 마디로 그리스가 남아 있는 것이 떠나는 것보다 유로존 나머지 국가들에게 훨씬 부담이 덜하다.
다음달 17일 총선 이후 출범할 그리스의 새 정부가 긴축에 약간의 성의만 보여준다면 그리스와 유로존 사이에 타협이 이뤄질 것이다. 이 타협안으로 그리스가 경쟁력을 회복하진 못해도 유로존에는 남아 있을 수 있을 것이다. 지금 언론들은 유로존 붕괴 리스크를 과장하고 있다.
-스페인 은행권도 불안하다. 스페인 정부가 방키아은행에 구제금융을 투입했지만 예금 인출 사태(뱅크런)가 일어나고 있다는 보도도 있었다.
▶독일이 그리스가 유로존에 남아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중요한 이유 중의 하나는 스페인 때문이다. 그리스가 유로존에서 나가면 시장에서 스페인 은행들에 대한 불안감이 걷잡을 수 없이 고조될 것이다. 따라서 그리스의 유로존 탈퇴와 스페인의 은행 시스템 불안은 서로 연결된 문제다. 긍정적인 점은 마리아노 라호이 스페인 총리가 이끄는 국민당이 의회에서 40%의 의석을 차지하고 있어 꾸준한 정책 집행이 가능하다는 사실이다.
다만 스페인 경제가 둔화되고 있어 재정적자 목표치를 맞추지 못할 것이란 점은 문제다. 나는 올 하반기에 독일과 유럽중앙은행(ECB)이 어떤 형식으로든 스페인을 지원할 것이라고 예상한다. 결국 (사람들이 지금 생각하고 있는 것과는 달리) 유로존이 붕괴되는 일은 없을 것이다. 유로화는 많은 사람들이 앞으로도 계속 투자하기를 원하는 통화이다. 유럽의 지배구조는 의사결정이 느리고 혼란스럽고 유로존 위기의 끝은 아직도 요원하지만 현재 체제가 계속 유지되긴 할 것이다.
독자들의 PICK!

-프랑수아 올랑드 신임 프랑스 대통령은 성장을 강조한다. 따라서 긴축을 내세우는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와 충돌할 것이란 전망이 많다.
▶지난 1월 다보스 포럼에서 메르켈 총리를 만났다. 메르켈 총리는 그 때 이미 성장에 대해 얘기했다. 경기 부양을 위해 지출을 늘리는 방식의 성장 촉진이 아니었을 뿐이다. 메르켈 총리는 기업들의 연구·개발 투자와 관련해 불필요한 절차를 단순화하고 유럽 은행들의 자본을 확충해 성장을 이뤄야 한다고 말했다. 올랑드 대통령이 니콜라 사르코지 전 대통령보다 성장을 더 강조하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유로존 문제에 있어서 올랑드 대통령과 메르켈 총리의 이해관계는 기본적으로 같을 수밖에 없다. 따라서 유로존의 정책이 급격하게 바뀌지는 않을 것이다.
-당신은 '신흥국이란 정치가 경제만큼 중요한 국가'라는 정의를 내놓은 적이 있다. 요즘 유로존을 보면 신흥국이란 생각이 든다.
▶2008년 금융위기가 절정에 달했을 때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워싱턴이 적절하게 대처하지 않으면 전세계가 붕괴에 직면할 것"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당시 위기상황에서 정치적 대처가 중요하다는 의미였다. 이런 점에서 보면 미국은 2008년 위기 때 몇 개월간은 신흥국이었던 셈이다. 하지만 미국이 위기에서 벗어나면서 경제에 대한 정치적 개입의 수준은 낮아졌다.
오바마 대통령이 재선에 성공하든 미트 롬니 공화당 대선 주자가 대통령에 당선되든 미국 경제는 기본적으로 크게 달라지지 않을 것이다. 프랑스도 정권이 바뀌었지만 사르코지 전 대통령 때와 근본적으로 큰 차이점은 없을 것이다. 선진국에서는 정권이 교체된다 해도 급진적인 변화가 일어나지는 않는다. 유럽 곳곳에서 정권 교체가 예상되면서 위기에 대한 대처가 제대로 이뤄질지 우려하는 목소리가 많지만 근본적으로 이전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이것이 신흥국과 차이점이다.
-국가가 경제 개발을 주도하는 중국식 국가 자본주의가 서구식 자유시장 자본주의보다 훨씬 더 큰 성공을 거두고 있다.
▶국가 자본주의는 국가가 가진 자원을 값싸게 이용하기 때문에 가난한 국가가 빠르게 성장하는데 매우 효과적이다. 러시아는 석유와 천연가스를 국가 자본주의로 값싸게 이용해 성공을 거뒀고 중국은 값싼 노동력을 토대로 빠르게 성장해왔다. 하지만 중국의 노동력이 더 이상 싼 수준을 유지하지 못하게 되면 국가 자본주의는 더 이상 효과를 발휘하지 못할 것ㅇ다. 중국 정부도 이 사실을 잘 알고 있다. 중국이 장기적으로 계속 성공하려면 국가 자본주의에서 벗어나 혁신과 기술 개발이 가능한 소비자 주도의 경제로 이전해야 한다. 값싼 인건비로 제조한 물건을 선진국에 파는 경제로는 계속 성장할 수 없다.
-북한의 김정은 체제에 대해 상당히 위험하다고 경고한 적이 있다. 하지만 지금 북한은 생각보다 안정적인 것처럼 보인다.
▶북한이 안정적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은 그냥 추측으로 말하는 것이다. 북한에서 나오는 정보는 거의 없다. 김정은이 북한에서 얼마나 많은 결정을 내리고 얼마나 많은 권력을 장악하고 있는지 아무도 모른다. 우리가 아는 것은 북한이 국제사회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미사일을 발사했다가 실패했고 이례적으로 실패를 인정했다는 것이다. 또 최근 북한이 중국 어선을 나포한 뒤 몸값을 요구했다가 풀어줬다는 사실도 알고 있다. 이 모든 정황들이 (북한이 불안정한) 과도기를 겪고 있음을 보여준다. 매우 강력한 전체주의적 정권이 통치 경험이 거의 없는 27살 젊은이에게 넘어가면 위험할 수밖에 없다. 한국 국민들이 이 같은 위협을 차분하고 안정적으로, 또 이성적인 방법으로 받아들인다는 사실은 높이 평가하지만 그렇다고 북한의 위협이 존재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이 리스크가 관리 가능한 것이길 바라지만 과연 그런지 알 수 없다.
-현재 세계가 직면한 가장 큰 리스크는 무엇인가.
▶오늘날 글로벌 시장 전체적으로 가장 큰 리스크는 중국에서 무엇인가 나쁜 일이 발생하는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유로존이 가장 큰 리스크라고 생각한다.
▶유로존은 붕괴되지 않을 것이다. 설사 그리스가 유로존을 떠난다 해도 단기적으로 충격은 있겠지만 이는 이미 시장에 대부분 반영돼 있다. 하지만 중국은 그렇지 않다. 보시라이 전 중국 충칭시 당서기의 실각사건을 둘러싸고 중국 내부에서는 상당한 의견 충돌이 있었다.
단기적으로 중국에서 가장 우려스러운 것은 중국판 위키리크스가 터지는 것이다. 중국 고위관료들 사이의 일을 다룬 기밀 문건들이 갑자기 만천하에 공개되면 이는 중국 정부와 국민들 모두에게 엄청나게 위험할 것이다. 이러한 기밀 문건에는 중국 상류층의 비리와 심각한 부의 편향 문제가 포함돼 있다. 미국의 기밀 외교문건들이 위키리크스에 공개됐을 때 사실 아무도 신경 쓰지 않았다. 다들 알고 있던 내용이었다. 하지만 중국은 정보를 통제해왔고 앞으로도 통제할 필요가 있다. 정보들이 무료로, 점점 더 자유롭게 유통되는 환경에서 계속 정보를 통제할 필요성이 있다는 것이 중국을 충격에 매우 취약하게 만들고 있다.
-중국은 올 하반기에 정권이 교체된다.
▶정권 교체는 크게 걱정스럽지 않다. 문제는 중국 리더십이 아니다. 중국은 시스템의 수혜를 입는 대규모 권력집단에서 또 다른 대규모 권력집단으로의 교체가 폭넓은 공감대를 바탕으로 상당히 부드럽게 진행돼 왔다. 위험한 것은 중국의 시스템이다. 중국은 세계 2위의 경제대국으로 전세계에서 차지하는 중요성이 매우 크다. 중국에서 뭔가 균열이 생기면 우리 모두가 그 영향을 체감하게 될 것이다.
-중국 경제는 어떤가. 최근 둔화되고 있는데.
▶중국 정부는 당분간 경제 성장을 계속할만한 능력이 있다. 중국 정부는 원하기만 하면 농촌의 값싼 노동력을 공장에 투입하거나 은행 시스템을 통해 비효율적인 인프라 건설을 계속해 성장세를 지속시킬 수 있다. 하지만 이러한 경제 조작은 장기적으로 더 많은 내적 불균형과 지속 불가능성을 야기할 뿐이다. 중국은 큰 엔진을 단 자동차에 비유할 수 있다. 이 큰 자동차는 지금까지 매우 빠른 속도로 달려 왔다. 하지만 머지않아 도로가 급격하게 꺾이게 된다. 우리는 중국이 자동차를 잘 꺾을 수 있는지 알지 못한다. 아직까지 중국이 도로에서 꺾는 것을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이 역시 글로벌 시장에는 매우 위험한 요인이다.
-최근 '모든 국가가 각자도생(Every Nation For Itself)'란 책을 펴냈다.
▶현재 세계가 직면한 G-제로 시대를 분석하고 미래를 예측한 책이다. 미국이 주도하는 세상이 막을 내리고 새로운 국제 공조의 틀로 G20이 만들어졌지만 G20은 사실상 제 기능을 다하지 못하고 있다. 이처럼 어떤 국가나 어떤 기관도 글로벌 리더십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는 지금이 G-제로 시대이다. G-제로 시대에서는 갈등을 관리할 리더십이 없어 각종 문제들이 다양한 형태의 위기로 심화될 가능성이 매우 높아 변동성이 커진다. 이런 G-제로 시대에서는 다양한 국가들과 다각적인 관계를 맺어 힘의 역학관계를 이용하는 중심축(Pivot) 국가가 승자가 된다. 브라질과 터키, 인도네시아, 베트남, 싱가포르 등이 대표적인 중심축 국가이다. 한국도 미국과 안보 동맹관계를 유지하면서 중국과도 균형 잡힌 관계를 구축해 관리해야 한다. 또 무역 상대국을 다각화할 필요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