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이은 공공요금 인상·극심한 빈부격차 배경 <br> "돈 내기 싫으면 일찍 일어나라", 분노 불붙여

지하철 요금 30페소(50원) 인상으로 촉발된 칠레 시위가 대통령의 대국민 사과에도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23일(현지시간) 로이터·AFP통신 등에 따르면 칠레의 수도 산티아고를 비롯한 주요 도시에서 수천 명의 학생과 노동조합원 등으로 구성된 시위대가 이날 극심한 빈부 격차 해소를 촉구하며 반(反)정부 시위를 이어갔다.
칠레 최대 노동조합인 칠레노동자연합(CUT)을 비롯한 20개 단체는 예고대로 이날부터 이틀간 총파업에 돌입했다. 이들 단체에는 금융노동자조합(ANEF), 세계 최대 구리 생산업체인 국영 '코델코' 노동조합 등도 포함됐다.
전날 세바스티안 피녜라 칠레 대통령은 이날 대국민 사과와 함께 최저임금과 연금수령액 상승, 부자 증세 등 유화책을 발표했다. 시위를 촉발시킨 지하철 요금을 포함해 각종 공공서비스 요금을 모두 동결키로 하고, 의료비 등도 국가 부담을 확대해 낮추기로 했다.
그러나 시위 열기를 가라앉히기에는 역부족이었다. AFP통신에 따르면 현재까지 집계된 사망자 수는 최소 18명으로 올랐으며, 부상자 수 또한 270여명으로 집계됐다. 로이터통신은 6000명 이상이 구금됐다고 전했다.

칠레 반정부 시위는 지난 6일 산티아고지하철공사가 교통 혼잡 시간대의 지하철 요금을 기존 800칠레페소(약 1288원)에서 830원(1366원)으로 인상을 발표한 것이 화근이 됐다. 그러나 단돈 30페소(50원) 인상 때문만은 아니다. 정부는 지난 1월에도 산티아고 지하철 요금은 20페소 인상했고, 이번 인상안은 전기요금 10% 인상안을 발표한 지 몇 주 만에 나왔다. 지하철 요금 인상안과 더불어 버스비 인상안도 검토됐다. 블룸버그가 인용한 연구에 따르면 산티아고 주민들의 상당수가 통근 시간이 최대 2시간 이상인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후안 안드레스 폰테인 경제부 장관의 "돈을 더 내기 싫으면 일찍 일어나면 된다"는 말은 시민들의 분노에 불을 붙였다. 학생들을 주축으로 시작된 시위는 도심 곳곳으로 확산됐고, 방화·약탈로까지 이어졌다. 걷잡을 수 없는 혼란에 18일 밤 칠레 정부는 산티아고에 비상사태를 선포하고 무장 군인을 배치했고, 오후 10시~오전 10시 사이 통행금지령까지 내렸다. 통행금지령이 내려진 것은 칠레가 민주화된 1990년 이후 29년 만이다. 이후 정부는 지하철 요금 인상안을 철회하고 대국민 사과 및 경제 대책까지 내놓았지만, 칠레 시민들의 분노는 사그라들 기미가 보이지 않는 상황이다.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칠레는 "청렴한 통치와 투명성, 투자자 친화적인 환경으로 남미의 총아"로 꼽히던 곳이다. 구리 수요와 튼튼한 거시경제 체제로 경제 성장도 이뤘다. 세계은행(WB)에 따르면 칠레의 빈곤율(하루에 5.5달러 이하를 벌어들이는 인구 비율)은 2000년 30%에 이르렀으나 2017년 들어 6.4%로 줄어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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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왜 칠레 국민들은 거리에 나선 것일까. 그 이면에는 불평등이 자리한다. 칠레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국 중 빈부격차가 최고 수준에 달한다. 소득 격차는 OECD 평균보다 65%가량 크다.
국립통계연구소에 따르면 칠레 노동자의 절반이 한 달 소득이 550달러(약 64만원) 이하인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해 정부가 실시한 연구에 따르면 최상위층 소득이 최하위층 소득보다 13.6배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로이터통신은 "시위대는 그들이 높은 교육 비용, 보건시스템, 주택임대료, 공공요금 등으로 인해 시달려왔으며, 민영화된 연금제도는 급여도 적은 데다 종종 지급이 연기되기까지 해 불만을 키웠다고 호소한다"고 전했다.
산티아고 소재 사립대학 유니버시다드 마요르의 로드리고 페레스 개발경제학 교수는 "비슷한 불평등 수준을 지닌 나라도 있지만, 칠레의 경우는 정부가 재분배나 소득 격차 해소를 위해 아무것도 해오지 않았다"며 "칠레 인구의 교육 수준이 높아지며 시민들도 사태를 빠르게 인식하게 됐고, 이는 (정부가) 시민들의 눈을 가리기 어려운 상황이 됐다고 본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