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자원의 저주'에 무너진 경제…빈틈 파고든 포퓰리즘 악순환<br>갈수록 힘들어지는 생활에…중산층까지 거리로 쏟아져 나와

지하철 요금 50원 인상으로 시위대가 거리로 쏟아져나온 날 대통령이 가족들과 피자를 먹는 모습이 SNS에 게재됐다. 중남미에서 가장 부유하다는 칠레 얘기다. 볼리비아에서는 부정 투개표 시비가 연일 이어진다. 페론주의와 포퓰리즘 논란은 대선 승자가 가려진 아르헨티나를 여전히 뒤덮고 있다. 중남미 곳곳이 시위의 '불길'에 휩싸였다. 곳곳에서 들고일어난 성난 민심이 거리를 점령했다. 불만 가득한 시민들은 목소리를 높여 정부를 비난하며 '근본적인 변화'를 촉구했다. 일부는 도로를 막고 경찰에 돌을 던졌으며, 공공시설을 파괴하며 분노를 표출했다.

한 국가나 특정 지역이 아닌 중남미 전체에서 동시다발적인 반(反)정부 시위가 벌어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는 이 지역을 관통하는 '부패'와 '불평등'이라는 키워드로 해석할 수 있다. 소수 특권층이 경제성장의 성과를 독식하는 반면 경기침체의 고통은 빈곤층에 떠넘기는 부조리한 상황이 계속되는 것이 근본 원인이다. 누적된 시민의 불만이 한꺼번에 터진 것이다.
언론인 출신의 중남미 전문가 마이클 리드는 최근 중남미 지역에서의 시위 확산 원인으로 △신흥 중산층의 경제적 불만 △썩은 정치권에 대한 분노 △홍콩과 유럽 등 세계적인 시위 움직임으로부터의 영향 등을 꼽았다. 그러면서 "경제가 성장할 때는 사회가 조금 불평등해도 참을 수 있다. 하지만 임금이 더는 오르지 않거나, 자녀들이 지금보다 더 잘 살 수 없다고 느낄 때 사람들은 좌절하게 된다"고 설명했다.

◇'자원의 저주'가 만든 부조리=중남미 시위의 배경에는 취약한 경제구조가 자리한다. 풍부한 자원에 지나치게 의존해, 제조업이나 서비스업 등 다른 산업은 상대적으로 발전하지 못했다. 이른바 '자원의 저주'다. 이 때문에 경제가 자원 가격에 큰 영향을 받는다. 자원 가격이 오르면 경제가 가파르게 성장하지만, 반대의 경우에는 경기침체를 막을 방법이 없다.
국제통화기금(IMF) 자료에 따르면 중남미(캐리비안 포함) 국내총생산(GDP) 증가율은 국제유가가 배렬당 100달러를 넘나들던 2010년부터 2013년까지 세계 경제 평균을 웃돌거나 비슷한 수준을 유지한다. 그러나 유가가 급락하기 시작한 2014년부터 경제성장률이 급락하기 시작한다. 2016년에는 마이너스(-)0.6%까지 기록했다. 그해 세계 경제는 평균 3.4% 성장했다. 올해도 중남미 지역 경제성장률은 0.2%에 불과할 것으로 예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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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품 가격이 내리고 수입이 줄자 곳곳에서 문제가 불거지기 시작했다. 빈부 격차가 확대됐고, 국가부채는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재정이 악화한 정부가 보조금 삭감과 공공요금 인상 등 긴축정책을 추진하자 중산층 이하 서민들의 삶이 팍팍해졌다. 그동안 경제성장의 혜택을 가장 많이 누린 부유층과 기업, 무능한 정부에 대한 불만이 커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된 것이다.
대표적인 사례가 칠레다. 세계 최대 구리 생산국인 칠레는 2000년대 들어 구리가격 상승으로 급격한 경제성장을 경험했다. 2010년에는 선진국 클럽이라 불리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도 가입했다. 그러나 칠레 보통 사람의 한 달 수입은 여전히 560~700달러(약 65만~83만원)에 불과했다. 지하철 요금 4%(약 50원) 인상 소식에 분노에 찬 수천 명의 칠레 시민이 거리로 쏟아져 나온 이유다.

◇문제를 악화시키기만 하는 부패한 정부=무능하고 부패한 정부는 중남미의 가장 큰 골칫덩이다. 시민들은 질릴 정도로 계속되는 정치인들의 부정에 분노하고 있으며, 포퓰리즘은 이 빈틈을 파고들었다. 브라질과 아르헨티나, 멕시코 등에서 복지 정책을 남발하던 좌파 포퓰리즘 정권이 물러나자 이번엔 자국 우선주의와 민족주의를 내세우는 극우 포퓰리즘이 똬리를 틀었다. 너나 할 것 없이 선심성 공약을 남발하면서 남은 것은 막대한 부채와 치솟는 물가뿐이었다.
세계 최대 석유 매장량을 자랑하는 베네수엘라는 무능하고 정권 유지에만 신경 쓰는 정부 탓에 경제가 회생 불가능한 상황에 부닥친 상징적인 사례다. 국제투명성기구(TI)가 분석한 베네수엘라의 부패지수는 18로 세계 최저 수준을 나타냈다. 올해 물가상승률은 20만%에 달할 것으로 전망되며 화폐는 휴짓조각보다 못한 처지가 됐다. 주유소와 마트 등에서는 화폐 대신 물물교환으로 거래가 이뤄질 정도다. 니콜라스 마두로 독재 정권은 국가 경제가 붕괴 위기로 몰리는 상황에도 긴축 재정 대신 시중에 돈을 풀고, 무상복지를 남발했다.
이번 시위로 중남미 각국이 긴축 정책을 포기하면 경기침체는 더욱 나빠질 가능성이 크다. 특히 10년 전 중남미 GDP의 51% 정도였던 국가부채가 최근 78%까지 치솟은 것이 문제다. 블룸버그통신은 "중남미 투자자가 금융시장에서 다시금 커지는 정치적 위험을 우려하고 있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