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번에도 어정쩡한 휴전 수순이다. 중국은 희토류 수출규제 계획을, 미국은 중국산 수입품 추가관세 계획을 각각 유예하거나 철회할 분위기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아시아 순방 일정을 시작하면서 대통령 전용기에서 한 말이 눈길을 끈다. 스콧 베선트 미국 재무부 장관과 허리펑 중국 국무원 부총리가 지난 26일 기본 합의 틀을 도출하기 전에 했던 말이다. "중국은 양보해야 한다. 우리도 그럴 준비가 돼 있다." 중국의 양보를 앞세웠지만 미국도 물러설 뜻을 분명히 했다. 사실상 중국에 꼬리를 내린 모양새라는 걸 부인하기 어렵다.
7년 전 집권 1기 때는 달랐다. 트럼프 대통령은 거칠 것 없이 관세를 휘둘렀고 중국은 2018년 말 1단계 무역합의까지 내내 끌려다녔다. "지금은 중국과 대화할 때가 아니다." "미중 무역분쟁을 마무리하는 별도의 시간표는 없다." 당시 트럼프 대통령이 했던 말이다. 최근 상황에서 돌아보면 중국을 와신상담으로 이끈 장본인이 트럼프 대통령이었던 셈이다.
달라진 상황은 철저하게 희토류 때문이다. 세계 최대 희토류 생산·정제국인 중국이 희토류 수출규제, 다시 말해 희토류를 무기화하면서 '공수'(攻守)가 뒤바뀌었다. 외교통상가에선 중국이 트럼프 대통령의 방식으로 트럼프 정부에 반격한다는 얘기가 나온다. 중국의 희토류 수출규제와 미국의 관세가 맞붙을 때 타격은 미국이 더 크다. 중국은 수출 경제가 망가지는 수준이라면 미국은 경제가 멈춘다. 전기차, 스마트폰, 발전소는 물론이고 전투기도 못 만든다.
중국의 발표를 보면 그나마 수출 타격도 크지 않아 보인다. 지난 9월 대미(對美) 수출이 27% 줄어든 대신 유럽연합(EU)으로 수출이 14% 늘어 3년 만의 최대를 기록했고 동남아 지역 수출도 16% 증가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이달 10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을 만날 이유가 사라진 것 같다"고 했다가 "아직 회담을 취소한 것은 아니다"라고 하고 며칠 만에 "좋은 무역협정에 이를 수 있다"고 말을 바꾼 것도 아쉬운 쪽은 미국이라는 걸 드러낸다. 중국이 미국의 선박입항료 부과 방침에 반발해 지난 9일 희토류 수출통제 강화 조치를 발표한 다음날 뉴욕증시에선 엔비디아, 테슬라, 아마존, 구글 등 7개 대형 기술주에서만 하루만에 시가총액 1100조원이 증발했다. 중국의 희토류 수출량은 9월 들어 한달새 이미 30% 넘게 줄어든 상태다.
트럼프 대통령이 아시아 순방길에 오르기 이틀 전인 지난 22일 기자들을 만나 "관세가 희토류보다 훨씬 더 강력하다"고 말한 것을 두고도 역설적으로 관세 카드가 잘 먹히지 않는다는 조바심을 드러낸 것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최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을 향해 이상하리만치 노골적으로 '깜짝 회동'을 구애하는 것도 시 주석과의 담판이 부담되기 때문이 아니냐는 얘기가 나온다. '북한 빅이벤트'로 미중 협상을 덮으려는 의도일 수 있다는 것이다.
미국에선 뒤늦게 탄식이 나온다. 1990년대 초까지만 해도 전 세계 희토류 채굴의 60%, 정제·가공의 거의 100%가 미국에서 이뤄졌다. 희토류 지배력 구도가 뒤집힌 배경에는 지난 30여년 동안 끈질기게 희토류 생산·정제 기술을 추구한 중국의 노력과 전략적 고려 없이 환경규제와 기업 효율성만 따져 희토류 산업을 포기한 미국의 방치가 얽혀있다고 파이낸셜타임스는 짚었다. 스콧 베선트 미국 재무장관은 한 투자 포럼에서 "지난 20년 동안 우리는 모두 운전대에서 졸고 있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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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행스러운 건 미중의 이런 미묘한 역학구도 변화가 우리에게 마냥 나쁜 신호는 아니라는 것이다. 중국을 견제할 공동전선이 필요한 미국에 한국의 반도체와 조선은 유리한 카드가 될 수 있다. 여전히 경제적으로 맞물린 중국도 한국을 무조건 적대시할 순 없다. 남은 건 우리가 이걸 어떻게 활용하느냐다.
미중 갈등은 분명 세계를 둘로 쪼개는 힘이다. 하지만 분열의 시대는 언제나 새로운 질서의 출발점이었다. 미중이 세계를 나눌 때 우린 새로운 질서를 설계해야 한다. 흐름에 휩쓸리는 나라가 아니라 흐름을 바꾸는 나라가 목표다. 눈치로 맞추는 균형이 아니라 이익과 기술, 가치가 교차하는 냉정한 계산 위에서. 그래야 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