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도상선, 탈세 아니면 증명해 봐라?

시도상선, 탈세 아니면 증명해 봐라?

전혜영 기자
2011.04.22 07:10

역외탈세 등 지능적 탈세 확산, '납세자 입증책임제' 도입 탄력받나

"온갖 방법을 총동원한 계획적인 탈세다"(국세청) vs "억울하다. 홍콩에서 세금을 다 냈다"(시도상선)

최근 국세청으로부터 4000억 원대의 '세금폭탄'을 맞고 억울함을 호소하고 있는 권혁 시도상선 회장에게 직접 탈세가 아님을 증명해 보라고 한다면 어떨까.

시도상선을 둘러싼 사상 최대 규모의 조세 소송이 예고되면서 국세청을 중심으로 '납세자 입증책임제' 도입론이 힘을 얻고 있다. 즉, 세금에 대해 납세자와 과세관청 간 다툼이 있을 경우, 입증 책임을 과세관청이 아닌 납세자가 져야 한다는 것이다.

국세청 관계자는 21일 "모든 과세에 적용할 순 없겠지만 일부 계획적이고 고의적인 탈세의 경우, 납세자에게 입증책임을 전환하는 등 정책적 뒷받침이 필요하다"며 "관련부처에 적극적으로 건의하고, 논의를 확산시켜 나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국내 세법은 과세 입증 책임 주체를 명시하고 있지 않지만 판례와 학설은 과세관청이 조세소송의 입증책임을 져야 한다고 봐 왔다. 세금을 부과한 곳이 타당성을 증명해야 한다는 논리다.

하지만 최근 대자산가를 중심으로 한 치밀하고 계획적인 탈세가 확산되면서 과세당국이 입증책임을 전적으로 부담하는 게 오히려 탈세를 부추길 수 있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특히 전 세계를 넘나들며 이뤄지고 있는 역외탈세의 경우, 관련 서류를 은닉하기 쉽고 추후 숨겨둔 서류를 가지고 국세청에 새롭게 소송을 제기하는 등 소송 남발 우려도 있다는 것이다.

국세청 관계자는 "과세 입증에서 중요한 것은 자료를 누가, 얼마나 확보할 수 있느냐 하는 것"이라며 "세무 전문가들의 도움을 받아 해외에 꽁꽁 숨겨두거나, 혹은 폐기한 자료들을 입수해 증거를 확보하는 일이 쉽지는 않다"고 토로했다.

이 관계자는 "가령 국세청이 해외에서 불법계좌를 찾았지만 내역 증명이 안 될 경우, 납세자에게 거꾸로 불법계좌가 아님을 증명하도록 하면 은닉된 서류들을 가져올 수밖에 없다"며 "일부 고의적이고 지능적인 탈세에 한해 이 같은 방안을 도입한다면 효과를 거둘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납세자에게 입증책임을 부과하는데 대해 부정적이던 학계에서도 최근 이 같은 주장이 힘을 얻고 있다.

안종석 조세연구원 조세연구본부장은 "과세관청이 납세자에게 입증책임을 떠넘기는 것은 문제"라면서도 "세계적으로 탈세수법이 지능화되면서 납세자의 입증책임이 강화되는 추세인 것은 분명하다"고 말했다.

실제로 미국은 과세소송에서 납세자입증책임원칙을 채택하고 있다. 납세자 본인이 납세정보 및 탈세행위 등에 대해 가장 잘 알고 있는데도 과세관청에게 전적으로 이를 입증하도록 한다면 오히려 납세자 권리 침해 및 징수비용 과다 집행 우려가 있다는 것이다.

김춘환 조선대학교 법학과 교수는 "선진국의 경우 성실한 납세자는 과세당국이, 불성실한 납세자는 스스로 입증하도록 하고 있다"며 "우리도 단계적으로 입증책임을 납세자에게 전환하면 법적 안정성과 예측가능성을 높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과세당국의 입증책임을 납세자에게 전환하는 문제에 대해 신중을 기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여전하다.

한 업계 관계자는 "국세청은 납세자의 과세자료를 충분히 확보하고 있다. 그런데도 역외탈세를 핑계로 입증책임을 납세자에게 전가하는 것은 행정 편의주의적인 발상"이라고 비판했다.

<저작권자 © ‘돈이 보이는 리얼타임 뉴스’ 머니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AI학습 이용 금지>

관련 기사

공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