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T리포트]주52시간제 도입 1년, 노조 몽니·정부 방임에 보완대책은 '표류'

[MT리포트]주52시간제 도입 1년, 노조 몽니·정부 방임에 보완대책은 '표류'

세종=권혜민 기자, 유영호 기자
2019.06.30 17:00

[주52시간1년]탄력근로제 단위기간 ‘3→6개월’ 연장 1년째 헛돌아… ‘계도기간 연장’ 땜질대책 남발에 산업현장 혼란 가중

[편집자주] 하루가 멀다 하고 열리던 회식이 뜸해지고, 칼퇴근에 눈치를 보지 않는다. 반면 수입이 줄어든 근로자나 공장을 탄력적으로 돌리지 못하는 사업주는 불만이 쌓여간다. 주 52시간 근로제 시행 1년을 맞은 풍경이다. ‘워라밸’에 한 걸음 다가섰지만, 현장은 여전히 혼란스럽다.
/사진=임종철 디자인기자
/사진=임종철 디자인기자

주52시간 근무제가 도입된 지 1년. 300인 이상 기업을 중심으로 근로시간이 줄면서 ‘과로 공화국’ 오명을 벗고 ‘워라밸’(일과 개인 삶의 균형)이 자리 잡는 성과가 확산되고 있다.

하지만 탄력근로제 단위기간 확대 등 주52시간 근무제 안착을 위한 지원대책이 1년째 헛돌면서 생기는 산업현장의 어려움도 여전하다. 특히 1일부터 금융, 노선버스, 방송 등 21개 업종 300인 이상 기업에 주52시간 근무제가 추가 도입되는데 정부가 ‘계도기간 3개월’의 땜질식 대책만 내놔 혼란이 예상된다. 그 배경에는 노동조합의 '몽니'와 정부의 '눈치보기'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30일 관계부처와 산업계에 따르면 주52시간 근무제 안착을 위해 가장 시급한 보완대책은 ‘산업계 숙원’으로까지 불리는 탄력근로제 단위기간 확대다. 경영계는 52시간제가 시행되면 현행 제도로는 산업수요를 맞추기 힘들다며 탄력근로제 단위기간 확대를 줄기차게 주장해 왔다. 현재 근로기준법상 탄력근로제의 최대 단위기간은 3개월이다. 경영계는 계절산업이나 신제품 출시시기, 대형 제조업체 개보수 작업 등 집중근로가 필요할 때 3개월의 단위기간으로는 대응이 어렵다고 호소했다.

이에 대통령 직속 사회적대화 기구인 경제사회노동위원회(경사노위)는 탄력근로제 단위기간 확대 논의를 이어 왔다. 마침내 지난 2월 노사정 대표들은 경사노위 산하 노동시간제도개선위원회에서 단위기간을 6개월로 늘리는 방안에 합의했다.

하지만 탄력근로제 확대에 반대하는 청년·여성·비정규직 위원 3명이 본위원회 일정을 '보이콧'해 최종 의결에는 이르지 못했다. 노동계는 탄력근로제를 확대하면 52시간제 도입 취지가 퇴색될 수 있다는 입장이다. 경사노위 논의 과정에 불참한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도 탄력근로제 확대가 '노동법 개악'이라며 이를 막기 위한 투쟁을 벌여왔다.

경사노위는 지난 3월 탄력근로제 논의 경과를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에 제출하며 국회로 공을 넘겼다. 하지만 국회가 파행을 빚으면서 탄력근로제 개편을 포함한 근로기준법 개정 작업은 사실상 중단됐다. 최근 여야가 국회 정상화에 합의하며 다시 논의의 물꼬를 텄다. 당초 3월 내 처리하겠다는 계획에서 한참 벗어나고 말았다.

탄력근로제 확대 문제가 중요한 것은 52시간제 처벌유예기간(계도기간)과 연관이 있기 때문이다. 앞서 고용부는 지난해 7월 52시간제를 도입하며 산업현장 연착륙을 위해 6개월간 처벌을 유예하는 계도기간을 뒀다. 탄력근로제 개편 논의가 지연되면서 계도기간을 올해 3월31일까지로 한 차례 더 연장했다.

4월1일부터는 본격적으로 근로시간 단축을 위반한 기업에 대한 처벌이 시작됐다. 하지만 고용부는 지난해 12월 계도기간을 재연장하며 "현행 탄력근로제 단위기간이 짧아 어려움을 겪는 기업은 근로기준법 개정안이 통과될 때까지 처벌을 유예한다"는 단서를 달아놨다. 이에 따라 탄력근로제를 도입했거나 도입 예정인 기업에 대한 계도기간은 사실상 법 개정 때까지 무기한 연장됐다. 결국 탄력근로제 도입 1년에도 계도기간이 연이어 연장되며 제도 안착은 지연되고 말았다. 산업현장도 법안 통과 시점을 예측할 수 없어 대비에 혼란을 겪었다.

감감무소식인 포괄임금제 가이드라인도 기업들의 불확실성을 키운다. 포괄임금제는 연장·휴일근로 수당을 총 연봉에 포함해 계약하는 제도다. 실제 초과근로와 상관 없이 수당을 정액으로 책정한다. 사용자 입장에서는 연장근로를 많이 시키든 적게 시키든 인건비를 고정할 수 있어 포괄임금제를 선호한다. 하지만 포괄임금제가 '공짜노동'에 악용되면서 장시간근로 관행의 주요 요인으로 꼽히기도 했다.

52시간제 시행 이후 고용부는 포괄임금제 적용 근로자 역시 주 52시간을 준수해야한다는 입장을 내놨다. 이에 따라 기업들은 포괄임금제를 적법하게 활용할 수 있도록 정부에 구체적 가이드라인을 요구했다. 고용부는 지난해 6월까지 가이드라인을 마련하겠다고 답했으나 현재까지 진전된 내용이 없다.

문제는 주52시간 근무제 적용 대상이 확대되면서 혼란도 급격히 커질 수 있다는 점이다. 당장 1일부터 보관 및 창고업, 금융업, 방송업, 육상운송업 중 노선여객자동차운송사업 등 21개 업종 1047개 기업에 주52시간 근무제가 적용된다. 대부분 주52시간 근무제 준비를 아직 마치지 못했다.

대표적인 사례가 전국 31개 노선버스업체다. 당장 신규 인력을 추가 채용해야 하는데 기존 인력 임금협상, 운임 인상 등의 문제도 아직 해결되지 않았다. 노선버스업계는 지금도 정부에 주52시간 근무제 적용 시점을 늦춰 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하준경 한양대 경제학부 교수는 “근로시간 단축과 탄력근로제 개편 등은 다수 이해관계자가 얽혀 있는 사안인 만큼 이를 조율하는 정부의 리더십이 중요한데 정부가 오히려 자신감 없는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고 지적했다. 박지순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도 “민주노총 등의 반대로 탄력근로제 논의가 막힌 상황에서 결국 새 해법을 모색해야 한다”며 “정부가 주도적으로 나서 중소기업 대상 추가 연장근로 허용 방안 등을 마련하는 등 새로운 논의를 진행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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