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T리포트] 복수의결권-정치에 발목 잡힌 '유니콘'의 꿈 ①

벤처·스타트업 창업자들의 경영권을 지켜주는 방패인 '슈퍼주식', 즉 복수의결권 제도의 국회 통과가 차일피일 미뤄지고 있다. 복수의결권이 초기 주주에 지나치게 힘을 싣고 편법적 경영권 세습을 부추길 수 있다는 반발 때문이다.
정부는 복수의결권의 남용을 제한하는 안전장치를 법안에 충분히 담았다는 입장이다. 벤처업계는 제도 도입이 늦어져 자칫 한국만 글로벌 스타트업 생태계에서 뒤쳐질까 우려하고 있다.
한국 벤처기업협회와 벤처캐피탈협회 등 16개 단체가 모인 혁신벤처단체협의회는 22일 공동성명을 통해 "복수의결권 제도를 도입해 국내 증권시장의 글로벌 경쟁력을 강화하고, 디지털 혁신 기업의 국내 상장을 활성화해야 한다"며 법안의 조속한 처리를 촉구했다.
당초 민주당은 벤처기업에 대한 복수의결권 제도 도입을 골자로 한 '벤처기업육성에 관한 특별조치법 개정안'을 지난달 국회에서 처리할 계획이었다. 그러나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소속 일부 의원들의 반발에 부딪혀 아직 상임위원회조차 넘어서지 못했다. 다음달 공청회가 예정돼 있다는 점에서 이달 중 처리도 사실상 물 건너갔다.
류호정 정의당 의원과 친여권인 조정훈 시대전환 의원이 법안 처리에 가장 적극적으로 반대하고 있다. 조 의원은 지난 4일 법안심사소위원회에서 "벤처 투자자들이 바보가 아닌 이상 똑똑한 경영자를 왜 자르겠느냐"며 "대기업이 벤처를 만들어 경영권 승계하는 방법은 이미 널리 알려진 방법인데 이 법이 통과되면 또 난리가 날 것이기에 절대로 통과시킬 수 없다"고 말했다.

현행 법상 우리나라에서 '복수의결권 주식'(Multiple voting shares)의 발행은 현재 불가능하다. 복수의결권 주식은 1주당 2개 이상의 의결권을 부여된 주식을 말한다. 간혹 '차등의결권 주식'(Dual-class shares)이란 표현과 혼용되기도 한다. 그러나 차등의결권은 '1주 1의결권' 원칙의 예외에 해당하는 것을 통칭하기 때문에 우선주 등 의결권 없는 주식까지 포함한다. 이 때문에 정부는 지난해 12월 법안을 국회에 제출할 당시 '복수의결권'으로 용어를 통일했다.
법안에 따르면 복수의결권은 1주당 최대 10배의 의결권을 부여해 벤처 기업들이 대규모 투자를 받아도 지분 희석에 따른 경영권 약화에 대한 우려 없이 안정적으로 경영에 전념할 수 있도록 돕는다는 취지다. 최근 미국 증시에 상장한 쿠팡은 김범석 의장이 보유한 복수의결권 주식에 29배의 의결권을 부여한다. 2%의 지분율로도 58%의 의결권을 가져 경영철학을 침해받지 않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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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수의결권이 벤처기업의 R&D(연구개발) 투자를 늘릴 수 있다는 연구도 있다. 중소기업연구원은 지난 1월 '복수의결권제도 도입이 벤처기업 연구개발투자에 미칠 영향 분석' 보고서를 통해 벤처기업 대주주 지분율 30~50% 구간에서 지분율이 1%포인트(p) 높아질 때 R&D 투자액이 최대 5400만원 늘어날 것으로 했다. 대주주의 안정적 의결권 유지가 기업의 R&D 활동을 촉진시켜 벤처의 성장 가능성을 높일 수 있다는 것이다.
정부는 벤처 생태계 발전을 위해 복수의결권 도입이 꼭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지난달 14일 자신의 소셜미디어에 "복수의결권 도입 추진 등을 통해 벤처기업 성장을 뒷받침하겠다"고 밝혔다. 권칠승 중소벤처기업부 장관 역시 "복수의결권은 벤처기업이 유니콘으로 성장할 수 있는 생태계 조성에 분명히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는 이미 법안을 통해 복수의결권 남용을 막기 위한 제도적 장치들을 갖춘 만큼 일각에서 우려하는 대로 복수의결권이 재벌 세습에 활용되긴 힘들 것으로 보고 있다. 정부의 법안에 따르면 복수의결권 발행 요건은 비상장 벤처기업의 창업주가 대규모 투자 유치로 최대주주 지위를 상실하는 경우로 제한돼 있다. 남용을 방지하기 위해 상속·양도하거나 공시대상기업집단에 편입되는 경우에는 보통주식으로 전환한다. 벤처기업이 상장하는 경우에도 3년의 유예기간을 거쳐 보통주로 전환된다.
또 감사와 감사위원의 선임·해임, 이익배당, 자본금의 감소, 해산의 결의, 이사의 보수, 복수의결권 존속기간 변경을 위한 정관 변경 등 주요사안에 대해선 1주당 1의결권으로 복수의결권 행사를 제한한다. 아울러 투명성을 확보하기 위해 복수의결권 발행기업은 중기부에 보고하고, 발행내용 공시와 함께 관보에도 고시하도록 했다.
중기부 관계자는 "벤처기업은 지난해 코로나19로 모든 경제지표가 하락하는 와중에도 일자리와 기업가치 측면에서 우리 경제의 버팀목이 됐다"며 "복수의결권을 도입해 '유니콘 기업'(기업가치 1조원 이상의 벤처)을 키울 수 있는 생태계를 조성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