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의 새로운 대표 드라마가 되기에 손색없는 완성도

올해 넷플릭스 오리지널 한국 드라마들의 기세가 심상치 않다. 의학 드라마 ‘중증외상센터’(1월), 로맨스 드라마 ‘더 멜로무비’(2월)에 이어 3월에 공개된 시대극 ‘폭싹 속았수다’까지, 완성도와 재미의 균형을 맞춘 작품들이 연이어 시청자들을 즐겁게 하고 있다. 그중 ‘폭싹 속았수다’는 15세, 19세 이상 관람가가 대부분인 넷플릭스 한국 드라마에서 드물게 만나는 12세 관람가여서 온 가족이 함께 보기에 좋은 드라마다.
넷플릭스 한국 드라마 중에서 실력파 연출가와 스타 드라마 작가의 만남으로 큰 성공을 거둔 작품은 안길호 감독-김은숙 작가의 ‘더 글로리’다. 그 밖에도 오진석 감독-문지영 작가의 ‘퀸메이커’, 김용완 감독-박경수 작가의 ‘돌풍’, 김철규 감독-김이영 작가의 ‘셀러브리티’ 등이 원작 기반 드라마들과 차별화된 오리지널 작품의 면모를 보여줬다. ‘폭싹 속았수다’ 역시 ‘미생’, ‘시그널’, ‘나의 아저씨‘로 연출력을 인정받은 김원석 감독과 ‘동백꽃 필무렵’ 임상춘 작가의 만남으로 기대를 모았다.

결론부터 말하면 ‘폭싹 속았수다’는 넷플릭스의 새로운 대표 드라마가 되기에 손색없다. 넷플릭스가 이례적으로 순차 공개 방식을 택해 16부작에서 4화까지 공개된 상태지만, 감독과 작가의 대표작 ‘미생’ ‘동백꽃 필무렵’에 버금가는 인생 드라마가 될 요건을 고루 갖춘 작품이다. 1950~60년대부터 현재까지 한국 근현대사를 아우르며 주인공들의 순애보 로맨스와 소시민의 애환을 진득하게 담아냈다. 애플 TV+에 대표 시대극 시리즈 ‘파친코’가 있다면, 이제 넷플릭스엔 ‘폭싹 속았수다’가 있다.
전작 ‘동백꽃 필무렵’ 중반부부터 뜨거운 모녀 서사를 펼쳤던 임상춘 작가는 제주를 배경으로 한 ‘폭싹 속았수다’에서 모녀, 여성 서사를 확장한다. 1화에선 어린 애순을 향한 억척 엄마 광례(염혜란)의 모성애가 그려지는데 딸이라면 가슴에 박히는 대사들이 즐비하다. ‘명치에 든 가시 같은 (딸)년’이 자신처럼 물질하는 해녀, 식모로 살지 않기를 바라는 엄마의 눈물겨운 사랑이 눈물을 훔치게 만든다. 애순(아이유)만 바라보고 사랑하는 일편단심 남자 주인공 관식(박보검), 애순을 지키는 동네 해녀들이 전작과 유사하지만 이러한 설정들이 정통 시대극의 따뜻한 인간미를 더욱 부각한다.

‘폭싹 속았수다’는 엄마 애순과 딸 금명의 이야기를 오가며 계절별로 진행된다. 봄에 해당하는 1화부터 4화는 엄마 애순의 어린 시절과 첫사랑 로맨스 이야기가 주를 이룬다. 시대극에서 시간을 교차하는 설정이 특별하진 않지만 과거와 현재를 자연스럽게 연결하는 솜씨나 극적인 순간에 긴장감을 높이는 연출에서 김원석 감독의 이름이 빛난다. 새롭게 등장하는 인물들을 보여주는 방식이나 미스터리한 떡밥과 회수도 기막히다. 매 화마다 마지막 장면에 흘러나오는 음악들을 달리해 극의 텐션을 끌어올리고 여운을 이어가는 효과도 크다.
드라마 ’호텔 델루나‘(2019) 이후 6년 만에 드라마에 출연한 아이유 역시 인생 캐릭터를 만났다. 애순의 젊은 시절과 애순의 딸 금명을 연기한 아이유의 1인 2역이 드라마의 최대 관전 포인트다. 꿈 많은 문학소녀에 사랑의 도피 행각을 벌이는 당찬 애순과 형편이 녹록지 않은 가정의 맏딸이라는 부담과 책임을 느끼는 금명을 확연히 다르게 연기했다. 4화까지는 귀엽고, 철없고, 무모하면서도 강단 있는 애순을 다채롭게 보여줬다면, 5화부턴 사랑과 현실 문제에 부딪히는 금명의 모습이 부각될 것으로 보인다. 눈물샘을 자극하는 아이유의 연기를 보면 ‘국민배우’ 호칭이 더할 나위 없이 어울린다.

박보검의 순애보 연기도 최고치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감정 연기가 뛰어나다. 어린 관식에서 박보검이 연기하는 청년 관식이 등장하는 순간부터 상대역 아이유와 케미 넘치는 연기 호흡을 보여줄 뿐 아니라 시청자들의 마음을 단단히 붙든다. 로맨스 드라마의 순정남 캐릭터는 자칫 유치하거나 고루해 보일 수 있는데, 박보검의 반듯한 이미지와 듬직한 연기가 캐릭터처럼 무쇠 같은 역할을 한다. 애순의 중년과 노년 시절을 연기한 문소리, 애순의 엄마 역으로 1화를 휘어잡는 염혜란, 애순의 남편 박해준을 포함해 배우들의 연기에 구멍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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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엔 전회차 공개가 아니어서 불만스러웠다. 남은 12화를 언제 기다리나 조급한 마음이 들었다. 막상 드라마를 보고 나선 마음이 바뀌었다. 1화부터 4화까지 찬찬히 다시 보기를 해도 새로운 게 보이는 드라마다. 다음 4회차가 공개될 때까지 보고 또 보는 재미가 생긴다. ‘착한 끝은 있다’고 믿는 이 드라마가 어떤 ’착한 끝‘을 보여줄지 궁금하다. ‘폭싹 속았수다’의 뜻은 ‘수고 많으셨습니다’라는 뜻의 제주 방언이다. 마지막 화를 보고 나서 ‘폭싹 속았수다!’라고 외치게 되길 바란다. 넷플릭스 히트작 ‘오징어 게임’ ‘더 글로리’의 매운맛도 자극제가 되어 좋았지만, 요즘 시청자들에겐 ‘폭싹 속았수다’의 순한 맛이 필요한 때다. 많은 시청자들이 위로의 맛을 느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