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96년, 두 개의 장소, 그리고 컴필레이션 음반 한 장. 한국의 인디 음악은 여기서 출발한다. 두 장소 중 한 곳은 1994년에 ‘펑크 카페’를 표방하며 문을 연 클럽 드럭이고, 다른 한 곳은 ‘스트리트 펑크 쇼’를 치른 서울 홍대 주차장 거리다. 그리고 컴필레이션 음반은 밴드 크라잉 넛과 옐로 키친의 스플릿 앨범 ‘Our Nation 1’이다. 이 앨범이 바로 1996년에 나왔다. 아울러 드럭은 크라잉 넛이 데뷔한 곳이며, 역사적인 거리 공연 ‘스트리트 펑크 쇼’엔 옐로 키친과 크라잉 넛이 함께 출연했다. 이 해를 기점으로 1998년까지 델리 스파이스, 언니네 이발관, 노브레인, 더더밴드, 자우림, 허클베리핀, 노이즈가든, 어어부 프로젝트, 레이니 썬, 코코어, 미선이 등 이젠 전설이 된 이름들의 음악이 봇물 터지듯 쏟아져 나왔다. 국내 매체들이 독립(Independent)을 뜻하는 인디(Indie)라는 용어를 쓴 것도 이 무렵이었으며, 심지어 레이블 이름도 ‘인디’라 지었을 정도로 90년대 중반 한국 인디 음악의 등장, 유행, 증폭은 무시하기 힘든 문화 현상으로서 당당했다.
익히 알려진 대로 인디의 핵심은 ‘독립’이라는 뜻 자체에 있다. 메이저 기획사나 대형 음반 레이블의 자본에 종속되지 않고 음악가 본인 또는 오아시스를 데뷔시킨 크리에이션 레코드 같은 소규모 독립 레이블(Independent Label)을 통해 콘텐츠를 기획, 제작, 유통, 홍보하는 구조. 이것이 바로 인디의 구조다. 그래서 인디는 오해도 많이 받는다. 확고한 음악적 신념으로 비주류를 자처한 탓에 쉽고 행복한 것을 추구하는 대중 취향과는 거리가 먼 음악을 어렵사리 해나간다는 것이다. 이건 반은 맞고 반은 틀린 얘기다. 가령 다니엘 존스턴이 싸구려 카세트 레코더로 홈레코딩을 한 것과 빌리 아일리시가 친오빠와 방구석에서 노트북으로 음악을 만든 건 DIY라는 면에선 같지만, 후자는 나중 비욘세 부럽지 않은 슈퍼스타가 되었기 때문이다. 이처럼 타협 없는 인디 음악을 하더라도 음악과 운때만 좋으면 누구나 벼락부자가 될 수 있다.
사실 ‘자본에 종속되지 않는다’는 인디의 가치 전제에도 논쟁의 여지는 있다. 음악가가 자본에 구속되지 않으려는 가장 큰 이유는 창작의 전권을 빼앗기지 않기 위해서다. 예술을 하는 데 돈은 무조건 필요하지만, 돈을 대준답시고 내 예술을 통제하려 드는 건 참을 수 없다는 얘기다. 이른바 정신(spirit)과 태도(attitude)를 앞세워 기업형 자본이라면 무조건 꺼는 부류는 차치하고라도, 건전한 투자마저 저들이 의심의 눈으로 대하는 건 내 예술을 지키겠다는 예술가의 반동적 자존심에서 비롯된 경우가 많다. 덕분에 우린 외압 없이 내 음악을 할 수 있었으므로 굳이 자본을 저버리지 않은 메이저 출신의 인디 혹은 인디 출신의 메이저 음악가들을 적지 않게 만나 왔다. 한편으론 모순이요 다르게 보면 딜레마에 갇힌 듯한 그 존재들은 국내외를 가리지 않았다. 당장 커트 코베인이라는 인물만 보아도 그렇다. 그는 희대의 앨범인 ‘Nevermind’ 한 장으로 게펜 레코드에 5천만 달러를 벌어준 일에 인디 출신으로서 죄책감이 들었으면서도 그 성공을 거부하진 않았다. 과거 서태지가 자신들이 부리는 재주로 엉뚱한 사람이 생색내는 걸 참지 못해 직접 차린 요요기획은 엄밀히 따지면 인디 기획사였지만, 서태지와 아이들은 당시 메이저 중의 메이저였던 터라 거기엔 모종의 아이러니가 있었다. 물론 훗날 괴수대백과사전이라는 인디 레이블을 만들어 넬과 피아를 영입해 후배들에게 보다 나은 환경을 제공하면서 그 아이러니는 어느 정도 상쇄되었지만 말이다.
무엇보다 서태지컴퍼니라는 레이블로 자신이 하고 싶은 음악을 해왔다는 데서 서태지는 인디적이라 말할 수 있다. 때문에 자본에 종속되든 자본을 노리든 본인이 원하는 걸 할 수 있는 환경에서라면 이제 고전적인 인디의 반자본주의적 개념은 살짝 낡아 보인다. 여기서 중요한 건 창작자의 창작권이다. 이걸 확보하면 그 음악가가 대기업 레이블에 소속돼 있든 중소 레이블에 몸을 담고 있든, 그냥 집에서 홀로 작업을 하든 ‘인디’라는 건 본질에서 같게 된다. 확실한 팬덤을 등에 업고 아이돌급 인기를 누리고 있는 잔나비나 악뮤, 거의 기업형 인디 레이블에 소속된 실리카겔, 가내수공업으로 모든 작업을 스스로 감당한 2000년대의 장기하, 예술적 자율성을 목숨만큼 소중히 여기는 케이팝 그룹 코르티스를 인디라는 개념 아래 함께 소환할 수 있는 이유다. 근래 가장 핫한 인디 뮤지션인 한로로의 소속사 어센틱의 홈페이지 소개글을 보자. “우리는 꾸밈없고 진지한 과정과 목적을 통해 작품을 만듭니다. 동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마음이 동할 수 있는 이야기를 동경하며, 오랜 시간이 지나도 꾸준히 찾게 될 작품을 궁극적으로 추구합니다.” 앞 문장에선 창작자의 진지한 자유 의지가, 뒤 문장에선 그 창작물이 동시대에 소비되고 후대에 기억되길 바라는 상업적 호소가 느껴진다. 작금의 인디란 그런 것이다.
독자들의 PICK!
다양성 영화라는 말이 있다. 표면적으론 말장난 같은 말인데, 애초에 같은 영화는 없기 때문이다. 영화는 언제나 ‘다양’하다. 저 말뜻이 온전히 전해지기 위해선 ‘독립 영화’ 정도의 구체성을 띠어야 한다. 소자본으로 외부 간섭 없이 만들고 싶은 영화를 만드는 것. 이는 사실상 전통의 인디 음악과 같은 뜻이다. 요컨대 관점과 미학, 취향의 다원화다. 장르의 다양화로 봐도 무방하겠다. 이나영 같은 메이저 배우가 출연료를 받지 않고 독립 영화에 출연하는 일도 다 그 다양화에 공감하고 일조하기 위함일 것이다. 잘 팔리지 않을지언정 순수 창작자의 뜻에서 나오는 예술 작품의 진정성. 인디가 지닌 또 하나의 가치다.
한국의 인디 음악계는 레이블 같은 실체보단 저 진정성에 더 무게를 둔다. 그것은 내가 만들고 싶은 걸 만들겠다는 크리에이터들의 전통적 창작 동기를 지지한 예술의 토양이었고, 그 토양 위에 당사자들이 불사른 끈질긴 집념이었다. 2000년대 중반 전대미문의 방송사고로 그 토양과 집념은 깡그리 증발될 뻔도 했지만 브로콜리 너마저나 검정치마 같은 혜성들의 심폐소생술을 받아낸 덕에 한국 인디는 2020년대까지 고유의 호흡을 이어올 수 있었다. 최근 걸그룹 르세라핌이 앨범 콘셉트에서 인용한 메리 셸리의 고전 ‘프랑켄슈타인’ 속 한 구절을 인용하면 한국 인디 음악계는 "넘쳐나는 새로운 생각들과 기발하고 화려한 상상력이 만들어낸 세계"였다. 그 세계 안에서 장르 불문, 한계 불문의 명곡 명인들이 무수히 배출되어 온 지가 어언 30년이다. 그렇게 한국의 인디 음악은 독립 영화가 영화계에서 그랬듯 대중음악계의 다양성을 상징하는 말이 되었다.
김성대(대중음악 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