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일드씽' '모자무싸' '오십프로'를 통해 실감하는 무한매력

만일 당신이 제작자이거나 연출자로서, 어떤 작품에서 배우 오정세를 쓰기로 했다면 이 세 가지 부분에서 매력을 느꼈거나 아니면 이 세 가지 부분에서 만족감을 느낄지 모른다. 첫 번째 시나리오, 대본이 마음에 든다면 배역의 크고 작음을 가리지 않는다. 두 번째 작품 안에서 선역이든, 악역이든 그게 아니든 어떤 역할로도 쓸 수 있다. 세 번째 이렇게 넓은 배역을 커버하면서도 깊이도 따라온다. 한 마디로 균질한 결과물을 받아낼 수 있다.
‘오정세가 다작을 한다’, ‘많은 작품에서 다양한 연기를 한다’, ‘최근 많은 작품에 등장해 그의 모습을 많이 볼 수 있다’ 등의 수식어는 더이상 오정세에게는 새롭지 않다. 그는 요즘으로 치더라도 JTBC 드라마 ‘모두가 자신의 무가치함과 싸우고 있다’(이하 모자무싸)를 끝내고, 곧바로 MBC ‘오십프로’에 들어갔고 다음 달 3일이 되면 손재곤 감독의 영화 ‘와일드 씽’에도 출연한다.
‘모자무싸’에서 ‘1등 주의’에 쫓겨 시야가 좁아지는 영화감독 박경세를 연기하던 그는 어느새 ‘오십프로’에서 북한 출신 특수요원으로 남한의 삶에 적응해버린 ‘웃픈’ 봉제순이 됐다. ‘와일드 씽’에서는 잘나가던 ‘여심 사냥꾼’ 발라드 왕자에서 20년이 지나, 진짜 ‘사냥꾼’이 돼버린 최성곤 역을 연기한다. 블랙코미디에서 코믹 액션 스릴러, 대놓고 코미디물까지 장르도 다양하다.

이런 작품을 연이어서 하고 있지만, 정말이지 신묘한 점은 오정세의 이런 자취가 느껴지지 않게 그가 맡은 캐릭터에 잘 숨어든다는 점이다. 이러한 그의 자취는 요즘만 그런 것이 아니었다. 그의 필모그래피를 살펴보면 위에서 언급한 세 가지 원칙이 딱딱 들어맞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1997년 영화 ‘아버지’를 시작으로 그는 30년 가까운 시간을 본듯 보지 않은 연기를 하며 살아왔다.
그런 의미에서 그에게 분기점이 된, 다섯 가지 캐릭터를 꼽아본다.
# ‘남자사용설명서’ 이승재
경기도 성남에서 자란 오정세는 신문방송학과에 입학해 대학생활을 하다 연기로 길을 정했다. 명계남이 설립한 ‘액터스21 아카데미’에 들어가 연기에 대한 꿈을 키웠다. 1997년 장길수 감독의 영화 ‘아버지’에 단역으로 출연한 것을 시작으로 10년이 넘는 무명생활로 오디션으로 점철된 삶을 산다.
그런 그에게 2012년 개봉한 이원석 감독의 ‘남자사용설명서’는 오정세의 첫 영화 주연작이었다. 이시영 주연의 영화에서 그는 한류스타 이승재 역을 맡아 존재감을 알린다. 이원석 감독의 독특한 병맛 코미디와 함께 “잤지? 잤어 아주. 잤네”라며 지질한 모습을 보이는 연기는 지금도 회자 중이다.

# ‘동백꽃 필 무렵’ 노규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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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은 오정세에게는 잊히지 않는 해다. 연초 이병헌 감독의 영화 ‘극한직업’에서 테드 창으로 천만영화의 맛을 봤고, 연말에는 SBS 드라마 ‘스토브리그’에서 기이한 구단주 권경민 역을 맡으며 존재감을 보였다. 무엇보다 이해가 의미가 깊은 것은 그에게 처음 백상예술대상 수상의 영예를 안긴 ‘동백꽃 필 무렵’의 노규태를 만나게 해줬기 때문이다.
이후 ‘모자무싸’에서도 인연을 맺어 ‘오정세표 궁상 캐릭터’의 정점을 찍는 노규태는 참견도 하고, 간섭도 하고, 샘도 많고, 외로운 마음 아무 데나 부벼대는 ‘꼰대 아저씨’ 같으면서도 어딘가 청승맞고 불쌍한 다층적인 매력을 뿜어냈다. 극 중에서는 비호감의 선두지만, 대외적으로는 드라마 인기의 주춧돌 역할도 한다. 색깔 속옷, 아무렇게나 찬 벨트, 외로움과 관련된 소품. 뭐든 세심하게 준비하는 그의 노력이 빛났다.
# ‘사이코지만 괜찮아’ 문상태
노규태의 여진이 아직 남아있던 2020년, 오정세는 tvN ‘사이코지만 괜찮아’의 문상태 역으로 노규태를 대중의 머릿속에서 싹 지워버린다. 바로 이듬해 백상에서도 똑같은 TV부문 남자 조연상을 받아, 2년 연속으로 이 상을 받는 기염도 토한다. 문상태는 자폐 스펙트럼을 갖고 있어 37세이지만 어린아이와 같은 모습을 보인다.

누가 연기해도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는 발달장애 캐릭터를 연기하기 위해 오정세는 아주 세심하게 접근했다. 연기를 보고 팬이 된 첼리스트 배범준씨와의 일화는 유명하다. 그는 ‘상태형’을 만나고 싶은 배씨를 위해 극 중 캐릭터의 의상을 입고 놀이공원 데이트를 했다. 그 인연은 현재까지 남몰래 이어지고 있다. 비슷한 시기 ‘모범형사 2’의 빌런 오종태와 병치 시켜 놓고 보면 놀라움을 금할 수 없다.
# ‘굿보이’ 민주영
찌질한 누군가, 밝은 성격의 누군가를 떠올렸다면 오정세는 어두운 내면의 인물도 곧잘 했다. 그래서 특별출연이었지만 빌런 연기도 많았고, 속을 알 수 없는 인물도 많이 연기했다. ‘작은 아씨들’ 신현민, ‘악귀’ 염해상, ‘스위트홈 2’임박사 등 2022년에서 2023년은 오정세에게 그러한 시기였다. 2025년 만난 ‘굿보이’의 민주영은 ‘오정세식 악역’의 정점을 그려 보였다.

그는 이른바 ‘굿보이들’이라고 불리는 박보검, 김소현, 이상이, 허성태, 태원석 등의 대척점에서 홀로 빌런으로서의 존재감을 보였다. 빌런이라고 해서 그냥 단편적인 빌런이 아니다. 세무 공무원으로 평범한 일상을 사는 것처럼 보이지만, 밤에는 도시의 지하경제를 주무르는 빌런이다. 평범함 속에 악의 마음을 숨겨놓는 그의 비상한 설정에 드라마 속 빌런의 역사도 다시 쓰이는 경험을 했다.
# ‘와일드 씽’ 최성곤
오정세는 그렇게 많은 작품에서 많은 인물을 연기했지만, 여전히 ‘코미디’를 가보지 못한 영역으로 생각한다. 그리고 언젠가는 가야할 곳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아직 개봉은 하지 않았지만 ‘와일드 씽’의 최성곤은 그의 경력을 재정의하는 또 하나의 시작으로 봐도 될 것 같다. 비슷한 결이지만 그는 노규태를 ‘투명한 사람’, 봉제순을 ‘슬픈 사람’으로 본다. 최성곤은 ‘치열한 사람’으로 꼽았다.

‘여심 사냥’을 하다가 진짜 ‘사냥’을 하는 비주얼. 그 와중에도 자신의 발라드곡을 20년 만에 다시 선보이고 싶어하는 일종의 광기. 그럼에도 따라주지 않는 운 등은 벌써 많은 사전 콘텐츠를 통해 팬덤을 형성하기 시작했다. 개봉도 안 한 영화 캐릭터가 이런 반응을 얻는 일은 쉽지 않다. ‘와일드 씽’은 오정세가 아직 가지 않은 길인 코미디를 정식으로 지르밟는, 그의 ‘도장깨기’ 또 다른 성과가 될 것은 유력해 보인다.
신윤재(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