엽서에 자주 등장하는 싱가포르 야경의 비밀은 무엇일까. 싱가포르에서는 같은 디자인으로 건축허가를 내주지 않는다. 배를 하늘에 띄운 듯한 ‘마리나베이샌즈’나 각기 다른 방향으로 블록을 쌓은 듯한 아파트 ‘인터레이스’가 탄생한 배경이다. 개성 강한 이 건물들은 명소가 돼 전세계 관광객들을 끌어 모으고 있다.
싱가포르에서 이 같은 규제가 가능했던 것은 토지 대부분이 정부 소유이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도시개발은 50~70년간 장기대여 방식으로 진행된다. 즉 규제에도 민간의 불만이 적을 수밖에 없다.
서울시도 이른바 ‘성냥갑’ 아파트로 가득 찬 도시경관을 바꾸고 싶었던 것일까. 지난 12일 발표한 ‘도시·건축 혁신안’은 재건축·재개발 정비계획 수립전부터 서울시가 관여해 개성있는 도시경관을 만들겠다는 것이 핵심이다.
서울 도심을 멋지게 바꾸려는 의도는 물론 충분히 이해가 된다. 그런데 당장 걱정되는 게 한 두 가지가 아니다.
가장 큰 것은 재산권 침해 우려다. 재건축·재개발 조합들은 가뜩이나 초과이익환수제 등 겹겹히 쌓인 규제로 채산성이 떨어져 사업이 지지부진한데 디자인 설계까지 규제하는 것이냐고 한숨을 쉬고 있다. 도시 전체의 미관도 중요하지만 당장 전재산이나 다름없을 수 있는 재건축·재개발 주택 소유자들의 사정도 헤아려야 한다는 얘기다.
익명의 한 재건축조합 관계자는 "한강변 등의 층고를 제한해 퇴짜를 맞은 재건축 단지 설계안이 한 두개가 아닌데 이제와서 경관까지 따지겠다는 것은 이해가 되지 않는다"고 볼멘 소리를 했다. 부동산 전문가들은 재건축·재개발이 더 막혀 몇 년뒤 서울시에 공급 부족 대란이 올 것을 우려하고 있다.
관(官)의 힘이 세지는 것도 문제다. 디자인에 대한 판단은 상당히 주관적이다. 이 판단을 디자인 전문 집단이 아닌 서울시가 한다고 하는 것은 결국 더 강한 인허가 권한을 갖겠다는 얘기로 밖에 들리지 않는다. 서초 무지개 아파트 등이 우수 디자인을 인정받아 발코니 삭제가 면제된 것처럼, 직접적인 규제보다 가이드라인과 인센티브를 주는 방향으로 가는 게 나을 수 있다.
이런 점에서 서울시의 이번 정책은 규제 완화로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자고 하는 시대 흐름에도 역행한다. 4차 산업혁명 시대에서 민간의 자율성은 더욱 중요해졌다. '작은 시(市)'로 가야할 이 시점에 서울시는 어깨에 완장 하나를 더 차고 싶은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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