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인 찍힐라" 알고도 눈감아…혼란만 남은 일몰제 어쩌나

"낙인 찍힐라" 알고도 눈감아…혼란만 남은 일몰제 어쩌나

배규민 기자, 김지영 기자, 남미래 기자
2026.01.29 09:00

[MT리포트]일몰없는 정비사업 일몰제(下)

[편집자주] '정비사업 일몰제'는 장기 표류 정비사업장을 정리해 도시 관리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도입됐다. 하지만 현장에서는 되레 혼란을 키우는 애물단지 취급을 받는다. 일몰이 사라진 정비사업 일몰제의 현 주소를 되짚어본다.

조합 '표심'에 멈춘 일몰제…알면서도 못 건드린다

정비사업 일몰제가 사실상 작동하지 않는 배경에는 지자체와 정치권의 소극적인 대응 구조도 자리하고 있다. 일몰제가 적용될 경우 해당 정비사업장이 '위험 사업장'으로 낙인찍힐 수 있다는 우려 때문에 지자체와 정치권 모두 사업 재개 가능성이 부족한 사업장마저 그냥 눈감아주고 있다는 지적이다.

업계에 따르면 일몰 대상이라는 인식만으로도 해당 사업장은 금융 조달과 시공사 선정, 각종 인허가 과정에서 불리한 위치에 놓일 가능성이 크다. 정비사업 특성상 장기간 추진을 전제로 자금과 신뢰가 쌓이는데 일몰제 적용 가능성이 거론되는 것만으로 사업 지속성에 대한 의문이 생겨난다는 것이다.

한 업계 관계자는 "일몰 대상이라는 꼬리표가 붙는 순간 조합은 물론 시공사와 금융권 모두 한발 물러서게 된다"며 "실제 해제 여부와 무관하게 사업성이 떨어지는 곳으로 인식되는 낙인 효과가 가장 큰 문제"라고 말했다.

이 같은 구조 속에서 자치구 역시 적극적인 판단에 나서기 어렵다는 평가다. 제도상 일몰 요건이 충족되더라도 정비구역 해제는 지역 민원과 직결되는 사안인 만큼 행정 부담이 상당하다는 이유에서다. 특히 조합원 다수가 거주하는 지역에서는 민원이 집중될 가능성이 높고 지자체 역시 굳이 나서 미움을 사려 하지 않는다는 의미다.

정치권의 판단도 다르지 않다. 정비사업은 주민 재산권과 직결되는 이슈인 만큼 일몰제 적용이나 해제 검토 자체가 정치적 역풍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한 정치권 관계자는 "일몰 대상 사업장이라는 인식만으로도 해당 지역의 반발이 거셀 수 있다"며 "정비사업 현장의 혼란은 곧바로 민원과 표심 문제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업계와 정치권 관계자들은 일몰제가 실제로 적용되기보다는 적용 가능성만 남긴 채 현장을 압박하는 규정으로 전락했다고 지적했다. 요건은 존재하지만 언제, 어떤 기준으로 적용될지 불명확해진 만큼 조합과 시공사, 금융권 등 연관된 사람들 모두가 눈치만 보게 되는 구조가 고착화됐다는 설명이다.

현장에서는 이 같은 불확실성이 정비사업 추진 전략을 왜곡시키고 있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일몰제 적용을 피하기 위해 실질적 진전 없이 형식적인 절차만 반복하거나 최소 요건 충족에만 집중하는 사례가 적지 않다는 것이다. 한 업계 관계자는 "사업을 정리하거나 속도를 내기보다는 제도를 피해 가기 위한 시간 끌기가 합리적인 선택이 되는 구조"라고 말했다.

결국 제도는 존재하지만 실제로는 누구도 책임 있게 집행하지 않는 상태가 반복되고 있다. 건설업계에서는 "일몰제가 사업을 정리하기 위한 장치가 아니라 불확실성을 남긴 채 현장을 묶어두는 요소로 작용하고 있다"며 "이대로라면 갈등을 해소하는 제도가 아니라 갈등의 시간만 미루는 제도로 남게 될 것"이라고 평가했다.

"이대론 공급 확대 어렵다"…정비사업 일몰제 전면 재검토해야

정비사업 일몰제 재검토 전문가 대안/그래픽=김현정
정비사업 일몰제 재검토 전문가 대안/그래픽=김현정

정비사업 일몰제를 둘러싼 혼선이 이어지면서 제도 존폐를 포함한 전면적인 재검토가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도시개발 전문가들은 현재와 같은 획일적 적용 방식이 정비사업 현실과 맞지 않는다며 구조 개편 또는 폐지까지 논의 테이블에 올려야 한다고 지적한다.

가장 많이 거론되는 대안은 재건축과 재개발을 구분한 '차등 일몰제' 도입이다. 재개발은 정비구역 지정 이후 개별 토지 소유자의 개발 행위가 제한되는 반면 재건축은 선택할 수 있는 개발 방식 자체가 제한된다. 정비사업 일몰제에도 이처럼 재산권 침해 구조가 다르다는 점이 반영돼야 한다는 주장이다.

한 업계 전문가는 "재개발은 정비구역으로 묶이는 순간 개별 건축이나 활용이 제한되지만 재건축은 애초에 다른 개발 선택지가 거의 없다"며 "재산권 침해를 기준으로 접근한다면 두 사업을 동일한 잣대로 관리하는 현재 구조는 재검토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일몰제 자체를 폐지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서울을 중심으로 주택 공급 부족이 구조적인 문제로 떠오른 상황에서 사업 속도를 제약하는 제도가 정책 기조와 어긋난다는 이유에서다. 공급 확대를 목표로 내세운 만큼 정비사업을 가로막는 상징적인 규제부터 손봐야 한다는 논리다.

부동산 시장 전문가들은 "정비사업이 지지부진한 원인은 일몰제가 아니라 동의율, 사업성, 공사비 부담 등 복합적인 요인에 있다"며 "조건 미충족을 이유로 사업을 정리하기보다 사업이 진행될 수 있도록 지원하는 방향으로 정책 기조가 전환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반면 제도는 유지하되 보완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만만치 않다. 극단적으로 장기 표류하는 사업장에 대해서는 최소한의 정리 장치가 필요하다는 이유에서다. 다만 이 경우에도 일몰 발동 요건과 절차를 명확히 해 현장 혼란과 자의적 판단 여지를 줄여야 한다는 지적이 뒤따른다.

특히 전문가들은 일몰제를 정비사업 관리의 최후 수단이라는 점을 명확히 할 필요가 있다고 입을 모은다. 일정 기간 이상 실질적 진전이 없고 회생 가능성이 낮은 경우만 제한적으로 적용하되, 그 이전 단계에서는 행정과 제도적 지원을 통해 사업 정상화를 유도해야 한다는 것이다.

여기에 더해 일몰제 논의를 개별 사업장 관리 차원이 아닌 주택 공급 정책 전반의 맥락에서 봐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정부와 서울시가 정비사업을 통한 공급 확대를 주요 정책 목표로 삼고 있는 만큼 일몰제 역시 공급을 촉진하는 방향으로 기능을 재정립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한 전문가는 "일몰제를 그대로 두느냐, 없애느냐의 문제보다 중요한 것은 정비사업을 어떤 기준과 속도로 관리할 것인가에 대한 정책적 선택"이라며 "차등 적용이든 단계적 폐지든 명확한 방향성을 제시하지 않으면 현장의 불확실성만 키우게 되는 꼴"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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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규민 기자

현장에 답이 있다.

김지영 기자

안녕하세요. 건설부동산부 김지영 기자입니다.

남미래 기자

안녕하세요 건설부동산부 남미래 기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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