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보세]KB금융의 지배구조 실험

[우보세]KB금융의 지배구조 실험

오상헌 기자
2021.12.23 04:10
[편집자주] 뉴스현장에는 희로애락이 있습니다. 그 가운데 기사로 쓰기에 쉽지 않은 것도 있고, 곰곰이 생각해봐야 할 일도 많습니다. '우리가 보는 세상'(우보세)은 머니투데이 시니어 기자들이 속보 기사에서 자칫 놓치기 쉬운 '뉴스 속의 뉴스' '뉴스 속의 스토리'를 전하는 코너입니다.

국내 금융회사 지배구조의 취약성을 거론할 때 빠지지 않는 사례가 2010년 '신한 사태'와 2014년 'KB 사태'다. 결은 달랐지만 본질은 금융회사 최고위 경영진간 암투와 권력투쟁이었다. 두 사건 모두 국내 금융회사 지배구조의 허상과 민낯을 고스란히 드러내는 계기가 됐다. 신한 사태로 주인없는 금융회사에서 지배주주처럼 군림하는 '대리인(경영진) 문제'가 여실히 드러났고, KB 사태에선 관치의 폐해가 노정됐다.

문재인 정부 5년은 어땠을까.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이런저런 잡음이 끊이지 않았다. 금융권 채용비리와 사모펀드 불완전 판매 사건 등을 기화로 최고경영자(CEO) 문책이 이어졌고, 소송전으로 확산했다. 금융지주 회장 연임 시기마다 크고 작은 소란도 일었다. 일부 은행장 인사에선 '보이지 않는 손'이 작용한 정황이 있었다. 이명박 정부 당시 대통령과 사적 인연으로 얽힌 '4대 천황'(4대 금융지주 회장)과 박근혜 정부 당시의 '서금회'(서강대 금융인회)처럼 정치권력의 노골적인 인사 개입과 관치가 상대적으로 덜했다는 게 차이라면 차이다.

소소하지만 그나마 나아진 건 지배구조 관련 법·제도가 꾸준히 정비되고, 금융당국과 개별 금융회사의 자정 노력이 포개진 결과로 볼 수 있다. ESG(환경 사회 지배구조)가 기업 영속성과 기업가치를 좌우하는 핵심 키워드로 떠오른 것도 빼놓을 수 없다. 경영진끼리 반목하고 이사회 기능과 내부 통제마저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금융회사를 믿고 돈을 맡길 고객과 주주, 투자자는 없다. 지배구조 투명화는 금융회사의 숙명이다.

금융회사는 지배주주가 있는 대기업과 달리 주인이 없는 태생적 한계를 갖고 있다. 경영진과 주주 이해가 상충하는 '대리인 문제'가 고질처럼 반복되기 십상이다. 주인없는 기업의 CEO는 장기 성장전략을 고민하기보단 2~3년 재임기간 단기 성과에 집착하는 특성을 보인다. 정부 지분이 없는 민간 금융회사가 외풍에 취약한 것도 이런 구조적 한계 탓이 크다.

최근 여권 일각에서 금융회사 CEO 임기를 최장 6년으로 제한하는 지배구조법 개정이 또 다시 추진되고 있다고 한다. CEO '셀프연임 방지법'인 셈인데 여러 측면에서 과잉규제가 아닌가 싶다. 대형 금융그룹에선 이미 '3연임·만 70세룰'이 관행처럼 정착되고 있다. 규제 취지는 이해되지만 민간 금융회사 CEO 임기를 법으로 규율하는 건 자연스럽지 않다.

경직된 방식의 법률 규제보다는 금융회사 지배구조의 투명성을 더 강화하고 불확실성을 줄이는 인사 제도와 문화의 정착이 우선이다. 차기 회장 후보군을 대내외에 명확히 공표한 KB금융의 지배구조 실험이 본보기가 될 수 있다. KB금융은 내부 경영승계 프로그램에 따라 육성된 핵심 계열사 CEO 출신 3인을 나란히 부회장에 올리는 연말 인사를 최근 단행했다. 차기 주자 3인의 공정한 후계 경쟁을 유도하고, 예측 가능성을 높여 지배구조 안정화를 꾀하려는 묘수로 읽힌다. 혹여 모를 외풍을 막는 명분도 될 수 있다. 금융회사들에 좋은 선례가 되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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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상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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