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4년 예산국화시험장 출발…144품종 개발, 국산화로 로열티 부담 낮춰
-재배면적 전국 1위·판매액 4위…생활 속 꽃 소비·해외시장서 돌파구 모색

서리를 견디고 피어나는 국화는 오래도록 선비의 꽃이었다. 사군자 가운데 하나로 절개와 지조를 상징했다.
누군가에게 국화는 가을을 감상하는 꽃이지만, 충남 태안과 예산지역 농민들에게 국화는 감상의 대상으로 그치지 않는다. 꽃잎이 펼쳐지는 순간까지 온도와 빛을 살피고, 출하 날짜를 맞추며, 한 송이의 가격으로 다음 농사를 준비해야 하는 생계가 걸린 작물이다.
충남이 30여 년간 국화에 공을 들여온 이유도 여기에 있다.
충남 국화의 명성은 하루아침에 만들어지지 않았다. 서해안의 비교적 온화한 기후, 넓은 농경지, 수도권 소비시장과 가까운 입지가 토대였다. 여기에 재배농가의 다양한 경험이 쌓였다.
결정적 전환점은 1994년 예산국화시험장 설립이다. 수입 품종에 기대던 재배 현장에 우리 기후와 시장에 맞는 꽃을 직접 만들겠다는 연구가 뿌리를 내렸다.

5일 충청남도농업기술원에 따르면 충남의 국화 재배면적은 78.2㏊(2024년 기준)로 전국 335㏊의 23.3%를 차지했다. 전국 1위다. 농가 181곳에서 약 1954만 본을 판매했다. 태안과 예산이 중심 산지다.
판매액은 46억5600만원으로 전국의 9.6%, 순위로는 4위였다. 가장 넓은 면적에 심었지만, 가장 높은 판매 가치를 거두는 지역은 아니었다. 충남 국화가 풀어내야 할 숙제다.
연구소가 지금까지 육성한 국화는 144품종이다. 최근 출원한 5품종까지 더하면 개발·출원 목록은 149개에 이른다. 분홍빛 '보라미', 노란 '예스홀릭', 여름철에도 화색이 쉽게 바래지 않는 '예스루비'가 대표적이다.
크림색 '프릴송'과 작은 꽃을 피우는 품종들은 생활 속 꽃 소비를 겨냥한다. 꽃의 색과 모양을 바꾸는 일은 단순한 미적 취향의 문제가 아니다. 재배가 쉬운지, 꽃병에서 오래가는지, 소비자가 다시 찾을지를 함께 풀어야 하는 산업의 문제다.

한 품종이 나오기까지 연구자의 인내도 필요하다. 둥글고 촘촘한 꽃잎을 가진 폼폰형 국화는 꽃가루가 잘 형성되지 않는 경우가 있어 교배부터 어렵다.
원하는 색과 모양을 안정적으로 구현하는 일도 만만치 않다. 국화의 품종 개발은 꽃잎의 아름다움을 설계하는 동시에 농가의 수익구조를 고치는 과정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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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직접적인 변화는 로열티다. 화훼연구소에 따르면, 외국 품종의 사용료는 주당 16원, 국산 품종은 2원이다. 100평에 1만5000주를 심는 농가라면 품종 사용료에서만 21만원을 아낄 수 있다.
해당 면적 생산비의 약 4.6%다. 수입 품종을 대체한다는 말이 농민에게는 추상적인 구호가 아닌 통장에 남는 돈으로 읽히는 이유다.
기후위기 앞에서도 연구는 이어진다. 폭염은 국화의 개화를 늦추고 꽃의 품질을 떨어뜨린다. 화훼연구소는 고온 적응성이 높은 품종을 선발하고, 고온기 재배기술을 개발했다.

과산화수소 엽면처리 시험에서는 잎 온도를 최대 5도 낮추고 기형화 발생률을 크게 줄이는 효과를 확인했다. 국화가 제때 피는 일은 이제 날씨에만 맡길 수 없는 기술의 영역이 됐다.
농촌진흥청의 지역특화작목 연구개발 사업은 이 성과를 시장으로 연결하는 계기였다. 화훼연구소는 2022년부터 2024년까지 '충남 국화 브랜드화를 위한 안정생산 기술 개발 및 유통다양화' 과제를 수행했다.
관심은 품종 개발을 넘어 수확 뒤 신선도 관리, 온라인 직판, 수출용 국화의 계획생산으로 확대됐다. 좋은 꽃을 만드는 일과 그 꽃이 제값에 팔리게 하는 일이 비로소 하나의 연구 과제가 됐다.
실제 충남 농가들이 생산한 국화는 온라인 새벽배송 시장에 진입했다. 2024년 예산과 당진의 5개 농가가 마켓컬리를 통해 판매한 물량은 6만4000본, 판매액은 1억6000만원이다.

이 판로의 의미는 물량만이 아니다. 도매시장에서는 길이 60㎝에 못 미치는 절화가 제값을 받기 어렵지만, 온라인에서는 30~60㎝의 꽃도 상품으로 팔릴 수 있다. 꽃의 가치를 재는 자가 바뀌면 농민의 소득 기회도 달라진다.
소비자의 취향 역시 변하고 있다. 국화는 오랫동안 제례와 장례의 꽃으로 기억됐지만, 요즘 시장은 연분홍·크림색·연노랑의 부드러운 색감과 작고 둥근 꽃 모양에도 눈길을 준다.
연구소가 폼폰형과 안개꽃을 닮은 국화, 달리아나 카네이션을 연상시키는 국화를 개발하는 배경이다. 누군가를 떠나보내는 날의 꽃에서 평범한 하루를 장식하는 꽃으로 국화의 쓰임을 넓히려는 시도다.
국화의 무대는 충남 밖으로도 이어진다. 연구소는 일본 시장을 겨냥해 '예스루비' 등 다양한 화색의 품종을 육성했고, 2010년에는 충남 육성 품종의 일본 판촉과 40만달러 수출계약을 이끌어냈다.
올해는 흰색 스탠다드국화 '백야'의 베트남 생산·판매를 위한 전용실시 계약도 체결했다. 현지에서 삽수를 생산해 국내 농가에 공급하고 일본 수출까지 연결하려는 구상이다.

성과만 바라보기에는 현실이 녹록지 않다. 충남의 국화 재배농가는 2022년 190곳에서 2024년 181곳으로 줄었고, 재배면적도 같은 기간 82.8㏊에서 78.2㏊로 축소됐다.
국산 품종의 보급과 수출 계약이 의미 있어도 농가가 줄고 판매액이 정체된다면 지역특화작목의 성공을 선언하기 어렵다. 앞으로 필요한 것은 품종 수보다 농가의 지속가능한 소득, 계약액보다 실제 수출실적, 연구실의 성과보다 시장에서 확인되는 경쟁력이다.
서리가 내리는 계절에도 꽃을 피워 선비의 절개를 상징했던 국화. 이제 충남의 국화는 또 하나의 가치를 증명해야 할 때다. 꽃의 아름다움은 계절에 남지만, 그 꽃의 가치는 농민의 삶에 남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