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흔들리는 유럽, 각국 시위 번져

"어떤 때는 선생님이 몇 주 동안 없었어요. 대체교사도 없고요."
프랑스 파리의 고등학생 마달레나는 이달 초 학생 시위 도중 BBC와 만나 교원이 부족한 현실을 토로했다. 학교건물도 낡았다. 기록적인 폭염이 닥친 지난여름은 끔찍했다. "교실이 끓듯이 더웠어요."
토요일인 지난 17일 밤(현지시간) 파리 에펠탑 주변에서 검은 연기가 치솟았다. 유서 깊은 건물의 종탑은 불길 속에서 무너졌다. 애초 폭력적인 시위대가 약탈·방화를 저질렀다거나 경찰이 먼저 강경진압을 했다는 것은 어쩌면 부분적인 이야기다. 왜 프랑스 시민, 특히 나라의 미래인 학생과 청년들이 이토록 분노하는가.
이번 혼란을 직접적으로 촉발한 것은 갈수록 열악해지는 공교육 현실이다. 근대교육과 대학시스템의 정수를 자랑하던 프랑스 학교는 당장 가르칠 교사가 없어 수업을 못 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사립학교와 공립학교의 투자격차는 날로 벌어진다. 이를 해결하려면 재정을 투입해야 하는데 프랑스 정부는 여력이 없다.
프랑스의 GDP(국내총생산) 대비 국가부채비율은 2025년 115%에서 2026년 119%로 높아지고 내년엔 120%로 전망된다. 프랑스보다 국가부채비율이 높은 유로존 국가도 있다. 하지만 프랑스의 부채증가 속도는 빛처럼 빠르다. 이미 연금 등 공공지출이 재정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지나치게 높다.
금융시장도 경고음을 낸다. 프랑스 10년물 국채금리는 4.9%를 넘어 24년 만에 최고수준에 올랐다. 이탈리아 국채금리보다 높다. 프랑스는 한때 유럽의 재정불량 국가들을 일컫는 '피그스'(PIGs)의 일원인 이탈리아를 구제하는 입장이었는데 처지가 뒤바뀐 셈이다.
블룸버그통신은 '부채의 악순환'(debt spiral)을 지적했다. 빚을 줄이려면 세금을 더 걷거나 긴축을 해야 한다. 그러면 청년과 서민층의 생활고가 가중돼 불평등에 대한 분노가 폭발한다. 반대로 복지나 교육지원을 늘리려면 더 비싼 이자를 물면서 국채를 찍어내야 한다.
단지 정부의 씀씀이가 컸던 것뿐일까. 성장의 돌파구를 찾지 못한 산업경쟁력의 실추가 본질적 문제란 지적이다. 유럽은 쓰나미처럼 밀려드는 중국산 제품에 밀려 안방시장도 내줬다. '유럽의 경제엔진'으로 불린 독일마저 미래차 전환지연 등으로 대규모 구조조정 위기에 직면했다. 한때 블루오션으로 여긴 중국 시장도 녹록지 않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값싼 러시아산 에너지를 이용하기 어려워졌다. 미국과 중국의 갈등 및 글로벌 보호무역주의, 중동위기가 겹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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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는 이런 가운데 막대한 복지·사회서비스 예산을 지출하면서 재정적자 부담을 좀처럼 해소하지 못했다. 역대 정부 모두 구조조정을 계획했지만 번번이 저항에 부딪쳐 정치·사회적 타협에 실패했다. 의회 과반정당이 없는 정치적 교착에다 내년 대선을 앞둔 상황에서 좌우 정치권은 '이민정책'을 전선 삼아 충돌했다. 어느 정당도 뚜렷한 경제리더십을 보여주지 못했다.
현대경제에서 부채 없이 국가를 운영할 수는 없다. 적자국채를 발행해서라도 AI(인공지능)와 첨단산업에 선제적으로 투자하지 않으면 글로벌 경쟁에서 도태된다. 하지만 감당할 능력이나 정교한 대책 없이 늘어나는 빚은 나라의 현재 역량은 물론 미래세대의 잠재력까지 그 빛을 잃게 만드는 재앙이 된다.
19일 오전 '루브르예술학교' 학생들이 파리 루브르박물관 출입구를 막아섰다. 박물관 측은 이들을 해산하지 않고 휴관을 결정했다. 문 닫은 루브르, 화마에 무너지며 검게 그을린 시청건물의 잔해는 오늘날 프랑스가 직면한 서늘한 진실을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