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전에 뵌 적이 있어 유족분들의 얼굴을 알기에 죄송한 마음이 들어 쳐다볼 수가 없습니다. 전 여자친구를 살해한 사실은 인정하나 보복을 위해 계획적으로 (피해자를) 죽이러 간 건 아니니 선처를 부탁드립니다."
2022년 8월31일. '서울 중구 오피스텔 살인 사건'의 범인 김병찬(당시 36세)은 항소심 법정에서 눈물을 흘리며 이같이 선처를 호소했다. 1심에서 선고한 징역 35년이 너무 무겁다는 주장이었다. 그러나 법원 판단은 정반대였다. 항소심은 오히려 형량을 징역 40년으로 늘렸고 대법원에서 그대로 확정됐다.
김병찬과 피해자 A씨는 부산에서 만나 2020년 1월부터 교제했다. 하지만 김병찬의 폭력과 집착에 시달리던 A씨는 같은 해 6월 이별을 통보했다.
김병찬은 이별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A씨 집에 무단으로 침입하거나 살해 협박을 하는 등 약 5개월간 스토킹을 이어갔다. 견디다 못한 A씨가 직장을 옮겨 서울로 떠나자 김병찬은 서울까지 따라왔다.
그는 A씨의 집을 찾아가 사흘간 감금하거나 차량에 몰래 들어가 기다리는 등 스토킹을 계속했다.
A씨는 결국 경찰에 5차례 피해 신고를 했다. 법원은 2021년 11월9일 김병찬에게 A씨에 대한 접근금지 명령을 내렸고, 경찰은 A씨에게 긴급 상황에 신고할 수 있는 스마트워치를 지급했다. 보복을 두려워한 A씨는 친구 집으로 피신하기도 했다.

접근금지 명령이 내려진 지 불과 9일 뒤인 11월18일 김병찬은 부산에서 버스를 타고 서울로 올라왔다. 당시 김병찬은 길이 30㎝에 가까운 흉기를 준비한 상태였다.
서울 종로구의 한 숙박업소에서 하룻밤을 보낸 그는 다음 날 오전 A씨가 거주하던 서울 중구의 오피스텔로 향했다.
김병찬은 지하주차장에서 A씨의 차량을 확인한 뒤 집 근처 계단에 숨어 기다렸다. 약 20분 뒤 A씨가 문을 열고 나오자 준비한 흉기로 위협했고, A씨가 저항하자 흉기를 여러 차례 휘둘렀다.
공격을 받던 A씨는 경찰이 지급한 스마트워치의 긴급호출 버튼을 눌렀다. 하지만 경찰이 현장에 도착한 것은 신고 약 12분 뒤였다.
스마트워치가 표시한 위치가 실제 범행 장소와 약 500m 떨어져 있었기 때문이다. 경찰은 기술적 결함으로 위치값에 오류가 발생하면서 신속한 위치 추적에 실패한 것으로 추정했다.
경찰이 오피스텔에 도착했을 때 김병찬은 이미 달아난 뒤였다. 흉기에 찔린 A씨는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결국 숨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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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찬은 범행 직후 서울을 빠져나갔다. 경찰은 폐쇄회로(CC)TV 등을 통해 도주 경로를 추적했고 이튿날인 11월20일 대구의 한 숙박업소에서 김병찬을 긴급체포했다.

김병찬은 보복살인 등의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1심 재판부는 범행의 계획성과 잔혹성 등을 인정해 징역 35년을 선고했다.
김병찬은 형이 너무 무겁다며 항소했다. 그는 보복을 목적으로 피해자를 계획적으로 살해한 것이 아니라 우발적으로 벌어진 범행이었다고 주장했다.
2022년 8월31일 열린 항소심 결심공판에서도 같은 주장을 이어갔다. 최후진술에서 그는 눈물을 흘리며 "유족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남긴 데 죄송할 따름"이라며 반성과 자아성찰의 시간을 가졌다고 호소했다.
하지만 항소심 재판부는 김병찬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오히려 "혐의를 일부 부인하는 등 진심으로 뉘우치고 있는지 의심스럽다"고 지적하며 1심보다 5년 늘어난 징역 40년을 선고했다.
김병찬은 상고했지만 대법원은 이를 기각했고 징역 40년형은 그대로 확정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