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원 화장품 사려고 벤츠타고 온다고? 명품 제치고 대박낸 회사

천원 화장품 사려고 벤츠타고 온다고? 명품 제치고 대박낸 회사

반준환 기자
2026.08.30 0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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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준환의 미국 스몰캡(37)]미국 Z세대 지갑을 연 화장품 회사--이엘에프뷰티

[편집자주]  숫자 뒤 스토리를 읽어야 진짜 투자가 보입니다. 한국주식도 미국 스몰캡 생태계를 알면 α를 낼 수 있습니다. 기술의 언어를 투자의 언어로 풀어내는 전문기자와 글로벌 특화분석 원리서치의 투자 나침반으로 여러분을 안내하겠습니다. 반보(半步)만 앞서면 남들이 모르는 길이 보일겁니다. 난해한 기술주 투자, 이제 쉽고 재미있게 즐겨보세요.
 /사진=이엘에프뷰티 홈페이지
/사진=이엘에프뷰티 홈페이지

미국의 백화점 1층은 오랫동안 에스티로더와 랑콤, 샤넬 같은 고가 화장품의 주 무대였다. 이곳에서 이들은 고가 마케팅으로 100년 동안 큰 수익을 거뒀다. 그러나 지금은 상황이 180도 바뀌었다. 에스티로더는 수요 부진 속에 감원과 강도 높은 구조조정을 진행하고 있지만 사정이 여의치 않다.

에스티로더는 구조조정에 따른 누적 비용이 최대 17억 5000만달러(약 2조 6573억원)에 이를 것으로 예상했다. 이는 기존 전망치인 약 15억 5000만 달러(약 2조 3536억원)보다 2억 달러(약 3037억원) 늘어난 규모다. 값비싼 포스트 지역의 사무실 임대계약을 해지하고 있다.

에스티로더는 앞서 최대 1만명을 감원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한 바 있다.

그렇지만 미국 화장품 산업 전체가 불황은 아니다. 10~20대 소비자로 북새통을 이루는 업체도 많다. 합리적인 소비를 중시하는 MZ 세대는 듀프(dupe·명품 대체품)에 민감하다는 특성이 있는데, 명품과 같은 품질에 가격이 싼 제품일수록 이들에게 인기를 얻는다. "비쌀수록 잘 팔린다"는 고가 마케팅의 정 반대 트렌드가 시장을 장악하는 중이다.

미국 화장품 기업 이엘에프뷰티(e.l.f. Beauty, ELF)는 이런 시장변화의 최대수혜주로 꼽히는 기업이다. 사명은 눈·입술·얼굴(eyes lips face)의 머리글자다. 시총은 약 10조원(71억달러, 환율 1400원, 8월말 기준)으로 한때 화장품 산업의 절대 강자였던 에스티로더의 4분의 1을 넘어섰다.

3초에 하나씩 팔리는 프라이머…미국에서 가장 많이 팔리는 색조 브랜드

이엘에프는 듀프 제품으로 무장한 업체다. 프레스티지 화장품과 같은 품질을 만족시키면서도 가격은 파격적으로 낮춘 제품이 수두룩 하다. 회사에서는 이를 홀리그레일(성배) 제품군이라 지칭한다. 대표적으로 파워그립 프라이머는 화장 전에 발라 메이크업을 피부에 붙잡아두는 기능을 하는 젤 타입 제품인데 가격이 1만5000원(11달러)에 불과하다. 비교대상인 프레스티지 경쟁품은 5만3000원(38달러)이다. 파워그립 프라이머는 3초에 하나씩 팔리는 중이다.

글로우리바이버 립오일은 1만3000원(9달러)인데 경쟁품의 가격은 5만9000원(42달러)에 달한다. 5만원(36달러)짜리 세럼의 대체품인 서스트버스트 드롭스 가격은 1만8000원(13달러)에 불과하다. 과거에는 이런 저가 화장품이 싸구려 모방품에 불과하다는 인식이 많았지만 이엘에프는 품질을 끌어올리면서 가격거품을 뺀 합리적인 제품으로 인정받고 있다. 듀프에 열광하는 MZ 소비자들은 실제 화장품을 써보고 품질을 검증하는 동영상을 올리는데, 이게 입소문 효과로 이어진다.

경쟁제품을 나란히 발라보고 발색·지속력·제형을 대조하는 영상이 수억 회 재생되는데, 품질이 못 따라가면 그 자리에서 조롱거리가 되고 브랜드는 끝난다. 이엘에프는 이런 치열한 경쟁에서 살아남은 제품 라인업을 지니고 있다. 2025년 닐슨이 조사한 미국 매스(대중가격) 색조 신제품 톱10에서 이엘에프는 4개 제품의 이름을 올렸다. 그 전년에는 10개 중 6개를 차지했다 이엘에프가 현재 미국 색조 시장에서 판매수량 기준 1위, 금액 기준 2위에 오른 배경이다. 스킨케어 브랜드 순위도 2021회계연도 25위에서 11위로 뛰었다. 전 제품이 비건이고 동물실험을 하지 않으며 관련 국제 인증을 이중으로 받았다. 젊은 소비자 입장에서는 죄책감 없는 소비와 죄책감 없는 가격이 한 병에 담긴 셈이다.

벤츠를 타고 와서 1달러 화장품을 사는 소비자 보고 떠올린 제품
/사진=이엘에프뷰티 홈페이지
/사진=이엘에프뷰티 홈페이지

이엘에프의 출발점은 2004년 로스앤젤레스의 99센트 균일가 매장이다. 화장품 브랜드 하드캔디를 만들었던 업계 베테랑 스콧 빈센트 보바는 이 매장에서 기묘한 장면을 목격했다. 벤츠와 BMW를 타고 온 여성들이 1달러짜리 화장품을 집어가고 있었던 것이다. 명품 백을 든 손님이 초저가 화장품을 사는 모순. 보바는 여기서 품질만 받쳐주면 가격이 낮을수록 성공확률이 높다는 확신을 얻고 2004년 6월 회사를 세웠다. 첫 제품은 13종, 가격은 전부 1400원(1달러)이었다.

돈도 인지도도 없던 신생 브랜드였기 때문에 매장도 TV광고도 하지 못했다. 대신 자사 쇼핑몰에 회원들이 후기와 화장법을 자유롭게 주고 받을 수 있도록 커뮤니티를 활성화했다. 이렇게 늘어난 회원이 200만명이다. 2007년부터는 이메일 마케팅에 집중해 매주 프로모션을 뿌렸고, 친구를 데려오면 포인트를 주는 추천 제도를 돌렸다. 2009년까지 친구 추천으로 이어진 구매만 50만건이 넘었다. D2C(소비자 직접 판매)와 커뮤니티 커머스, 그로스해킹 같은 마케팅 용어가 만들어지기 전에 실행한 것들이다. 첫해 매출 21억원(150만달러)의 절반 이상이 자사몰에서 나왔고, 이를 발판으로 타깃 같은 전국 대형 유통업체들의 주목을 받았따.

성장성에 주목한 사모펀드 사모펀드 TPG그로스가 2014년 이엘에프 경영권을 인수하면서 전문경영인 타랑 아민이 영입됐고 이후 회사는 폭발적으로 성장했다. 아민은 P&G에서 팬틴샴푸를 세계적인 브랜드로 키워 유명해진 인물이다. 건강기능식품 회사 쉬프뉴트리션 CEO로 부임해 기업가치를 2660억원(1억9000만달러)에서 2조1000억원(15억달러)으로 불린 뒤 매각하기도 했다. 그는 2016년 9월 이엘에프를 공모가 2만4000원(17달러)에 뉴욕증시에 상장시켰다.

상장 후 순항하던 회사는 2018년 성장이 멈췄다. 매출이 정체되자 아민은 직영 매장 22개를 전면폐쇄하면서 오프라인 사업을 없애다시피 했다. 여기에 신생 플랫폼회사로 이름을 막 알리던 틱톡을 활용한 마케팅을 시작했는데, 이게 대박이 났다. 이엘에프는 그래미상을 받은 프로듀서 일웨이노에게 음악을 의뢰했다. CF 광고 음악을 만든 게 아니라 "아이즈 립스 페이스"라는 진짜 힙합 곡을 만들어 틱톡에 올렸다.

이 노래에 맞춰 자기 얼굴을 찍어 올리는 해시태그 챌린지를 걸자 이용자 제작 영상 500만개, 누적 조회 70억회가 쏟아졌다. 틱톡 미국 역사상 가장 바이럴한 캠페인 기록이다. 가수 리조, 방송인 엘런 디제너러스, 배우 리스 위더스푼이 돈을 받지 않고 자발적으로 챌린지에 참여했고, 노래는 스포티파이 차트에 올랐다. 미국 투자은행 파이퍼샌들러의 10대 선호 브랜드 조사에서 이엘에프는 8위에서 2위로 뛰었다. 마침 같은 해 내놓은 1만1000원(8달러)짜리 포어리스 퍼티 프라이머가 미국 1위 프라이머에 오르며 품질이 뒷받침되는 화장품이라는 이미지까지 갖추게 됐다. 정체됐던 매출은 이때부터 다시 뛰기 시작해 지금까지 30분기 연속 성장 중이다.

생산은 아웃소싱하고 마케팅에 집중…30분기 연속성장 대박

이엘에프는 자체 공장이 없다. 중국을 중심으로 한 외부 협력 제조사 네트워크에서 소싱·생산되며 미국·이탈리아·한국 등에서도 일부 조달한다. 소싱·품질·혁신 전담팀이 협력사들과 신제품 개발 단계부터 함께 움직이는 구조다. 개발의 출발점은 글로벌 트렌드 평가, 협력 제조사·업계 리서치, 핵심 유통사의 입력, 그리고 소비자 인사이트 분석으로 이뤄진다. 특히 멤버십 뷰티스쿼드와 소셜미디어에서 "어떤 명품이 뜨는지, 소비자가 어떤 대체품을 원하는지"를 상시 청취해 매년 매대 구성 일부를 갈아치운다.

이엘에프는 색조 브랜드 가운데 자체 이커머스몰을 가진 드문 업체다. 소비자 빅 데이터를 실시간으로 볼 수 있다는 뜻이다. 경쟁사는 신제품 하나를 매대에 올리기까지 1년 안팎이 걸리지만 이엘에프는 컨셉트 설계부터 출시까지 평균 20주, 빠르면 13주에도 끝난다. 틱톡에서 유행이 생기면 한 분기 안에 제품이 나오고, 그 뒤에 1년이 지나서 경쟁사 제품이 나온다는 얘기다. 특히 마케팅에 집중하는데 매출의 24% 정도를 마케팅·디지털 비용에 투입한다. 이는 업계평균의 2배 수준이다.

타깃·월마트·아마존·세포라가 매출 절반

이엘애에프의 매출은 △2023회계연도(3월 결산) 8104억원(5억7884만달러) △2024년 1조4335억원(10억2390만달러) △2025년 1조8389억원(13억1350만달러) △2026년 2조2911억원(16억3650만달러)으로 급속성장했다. 올해 4~6월 분기 매출은 6712억원(4억7940만달러)으로 전년 동기 대비 36% 증가했고, 회사는 2027회계연도 매출 성장률 전망을 종전 12~14%에서 18~20%로 올렸다. 연매출 약 2조7000억원에 해당한다.

매출 구성을 보면 유통 매대가 76%, 자사몰·아마존·틱톡숍 등 이커머스가 24%다. 지역별로는 미국이 79%, 해외가 21%인데 해외(영국·캐나다·독일 중심)가 최근 분기 61% 성장하며 새로운 가능성을 보이고 있다. 주요 거래처는 타깃(매출의 18%), 월마트(13%), 아마존(11%), 세포라(10%)로, 4대 고객이 매출의 절반을 넘는다. 유통 파트너들이 이엘에프를 밀어주는 이유는 단순하다. 매대 1피트당 매출이 매스 색조 브랜드 가운데 최상위권이다. 유통사 입장에서 가장 돈이 되는 브랜드다.

브랜드 포트폴리오도 두꺼워졌다. 2023년 4970억원(3억5500만달러)에 인수한 스킨케어 나투리움, 2025년 5월 1조4000억원(10억달러)을 들여 인수한 로드(rhode)가 있다. 로드는 모델 헤일리 비버가 만든 브랜드로, 세포라 입점 당시 세포라 역사상 최대 규모의 브랜드 론칭 기록을 세웠고 올해 패스트컴퍼니의 세계 최고 혁신기업 명단에 올랐다. 최근 분기 로드가 보탠 매출만 2240억원(약 1억6000만달러)이다.

조직 효율도 뛰어나다. 2026년 3월 말 기준 정직원 849명이다. 1000명이 안 되는 인원으로 연매출 2조원대 회사를 돌린다. 직원 1인당 매출 27억원을 올리는 셈이다 제조는 전량 외주에 맡기고 본사는 기획·마케팅·데이터에 집중한 결과다.

다만 최근 주가는 조정을 받는 중이다. 이엘에프는 유연한 조직체제와 비용절감을 위해 생산 대부분을 아웃소싱하고 있는데, 중국의 제조비중이 높다. 미중 무역분쟁이 확산되면서 2019년 5월부터 25% 관세를 적용받아왔다. 미·중 관세 정책이 흔들릴 때마다 주가가 함께 흔들렸다. 올해 2월 미 연방대법원이 비상경제권한법(IEEPA)에 근거한 관세를 무효로 판결하면서 회사는 환급금 700억원(5000만달러)을 돌려받았지만, 행정부는 다른 법적 근거로 새 관세를 매기기 시작했다.

이엘에프는 최근 중국에서 벗어나 미국·이탈리아와 한국 등의 생산비중을 늘리는 중이다. 특히 한국은 세계 화장품 위탁생산의 최강자로 ODM(제조자개발생산) 노하우도 뛰어나다. 매출은 꾸준히 늘고 있지만 수익성이 다소 둔화되고 있다는 지적도 있다. 2026회계연도 GAAP 순이익은 368억원(2630만달러)으로 전년(1569억원)의 4분의 1 토막이 났다.

글로벌 투자정보업체 원리포트 관계자는 "이엘에프 실적둔화는 로드 인수 성과가 계약 기준을 초과하며 추가 지급 예상액 807억원(5760만달러)을 비용으로 반영한 영향이 컸다"며 "뒤집어 보면 인수한 브랜드가 기대보다 잘 팔린다는 증거이며, 이를 걷어낸 조정 순이익은 2603억원(1억8590만달러)에 달한다"고 분석했다.

그는 이어 "다만 12개월 선행 주가수익비율(PER)이 43배 수준으로 미국 퍼스널케어 업종 평균(16배)의 세 배 가까이 된다는 점이 주가에 부담이 되는 중"이라며 "월가 투자의견과 목표주가는 꾸준히 상향조정되고 있으며 품질과 브랜드에 대한 MZ 소비자들의 신뢰가 두텁기 때문에 실적은 계속 우상향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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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준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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