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깜빡 잊은 게 있습니다. 기사에 절대 '특정 대기업' 이름을 넣으시면 안 됩니다. 꼭 빼주세요."
얼마 전 한 중소기업의 홍보 담당자 전화를 끊자마자 1분이 채 지나지 않아 다시 전화를 걸어 이렇게 말했다.
애널리스트 보고서를 통해 이 회사가 특정 대기업에 제품을 공급하고 있다는 사실을 새롭게 알게 돼 취재 중이었는데 기사에 '그 대기업 이름'이 들어가면 안 된다는 것이었다.
통상 거래에는 공급하는 자와 공급받는 자가 있기 마련이다. 그러나 국내 주요 대기업들과 거래하는 중소기업들 관련 기사에는 대부분 이들 대기업의 회사명이 빠지는 것이 일종의 불문율로 통한다.
대신 대명사인 '국내 대기업'이 공급 상대방으로 등장한다. '국내 유수 전자기업'나 '국내 대표 자동차' 업체 등으로 소개되기도 한다.
때문에 경우에 따라서는 기사를 읽는 독자나 투자자가 해당 중소기업의 제품을 공급받는 상대방이 어디인지를 쉽게 파악할 수 없는 경우도 종종 발생한다.
"'기사 잘 읽었습니다 기자님'으로 시작해 '근데 그 대기업이 어디인가요'"라는 질문으로 끝나는 이메일을 독자들로부터 이따금씩 받는다.
물론 수요자와 공급자 사이에 특정 프로젝트에 대해 기밀유지협약(NDA, Non Disclosure Agreement)을 맺은 경우는 예외일 수 있다. 중요한 정보가 사전에 유출됨으로써 경쟁사, 특히 해외 기업들에 국내 기업들의 전략이 노출되는 불상사가 초래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단순 공급협상에서도 대기업의 회사명이 거론될 경우 대기업에서 중소기업에 전화해 '입단속'하는 관행은 문제라는 게 업계 관계자들의 지적이다.
중소기업으로서는 글로벌 휴대폰, 액정표시장치(LCD), 자동차, 조선 등의 시장을 주도하고 있는 대표적인 기업과 거래한다는 게 큰 자랑거리임에도 홍보할 길이 막혀 있기 때문이다.
"좋은 소식도 홍보할 수 있는 방법이 별로 없다"며 "단순 공급협상이라도 속 시원히 공개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한 중견기업 홍보 담당자의 푸념에 대기업들이 귀기울여주는 날이 빨리 오길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