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우용 특별문 대신 임직원용 출입문 이용..첫 출근부터 소통 실천

서울 서초동 삼성전자 본관에서 사무실로 들어가려면 엘리베이터 앞 스피드게이트를 통과해야 한다. 평사원은 물론 사장들도 대부분 집적회로(IC)칩이 내장된 신분증 카드를 대고 이를 드나든다.
그런데 스피드게이트 옆에는 '특별한' 유리문이 있다. 이 문은 서초동뿐 아니라 30년간 삼성의 본산 역할을 한 태평로 옛 삼성 본관에도 있었고 그동안 제한적으로만 열렸다.
이 문은 삼성 그룹조직을 책임지는 전략기획실장이나 삼성의 대표 계열사인 삼성전자의 책임자(CEO나 이사회 의장)가 출퇴근할 때 예우 차원에서 열렸다. 가로 1.5m 정도에 높이 1m 남짓한 낮은 유리문이지만 '권위'를 지닌 셈이다.
실제 이학수 삼성물산 건설부문 고문이 전략기획실장 시절 이 문을 이용했다. 지금은 이윤우 삼성전자 이사회 의장이 출퇴근할 때, 앞서 윤종용 삼성전자 상임고문이 삼성전자 CEO일 때 이 문을 활용했다. 수십년간 삼성의 성장에 기여한 경영자들에 대한 예우로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반면 이건희 회장의 장남 이재용 삼성전자 부사장은 여느 직원과 마찬가지로 스피드게이트를 거친다. 최근 삼성 그룹조직의 총책임자로 임명된 김순택 부회장의 첫 출근일인 지난 22일 '예우'의 문이 열렸다.
그러나 김 부회장은 미리 열어놓은 유리문 대신 통상대로 스피드게이트를 통과했다. 출근 이튿날, 그리고 사흘째 역시 김 부회장은 로비에 도착하기 직전 열려진 넓고 편안한 문 대신 좁고 직원들과 부딪힐 수 있는 스피드게이트를 택했다. 외부에선 큰 의미를 두지 않겠지만 삼성 내부에서는 김 부회장의 작은 변화를 새롭게 받아들인다.
김 부회장은 첫 출근길에 상생과 소통을 언급했다. 그룹조직의 역할도 군림하는 것이 아니라 계열사가 각자 일을 잘하도록 돕는 것이라고 했다. 이를 위해선 직원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눈높이를 맞춰 함께 걸어야 한다는 게 그의 판단인 듯하다.
그의 '몸낮추기'는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삼성SDI에선 그가 CEO로 있던 2006년 PDP 3라인 건설 도중 작은 화재가 발생했다. 그 분기 실적이 좋지 않았는데 김 부회장은 투자설명회에서 "내가 공사기간을 앞당기라고 직원들을 너무 다그치는 바람에 실수로 작은 화재가 나 실적에 악영향을 미쳤다"며 모든 책임을 자신에게 돌렸다. 직원의 실수를 떠안고 예우의 상징인 유리문을 버린 그가 삼성그룹에 어떤 변화를 몰고 올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