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감주꽃 지고 배롱꽃이 피다

모감주꽃 지고 배롱꽃이 피다

양영권 기자
2014.07.14 06:36

[우리가보는세상]

[편집자주] 뉴스현장에는 희로애락이 있습니다. 그 가운데 기사로 쓰기에 쉽지 않은 것도 있고, 곰곰이 생각해 봐야 할 일도 많습니다. ‘우리들이 보는 세상(우보세)’은 머니투데이 시니어 기자들이 속보 기사에서 자칫 놓치기 쉬운 ‘뉴스 속의 뉴스’, ‘뉴스 속의 스토리’를 전하는 코너 입니다.

삼촌은 한참 맛있는 시금치가 나오는 한겨울에 돌아가셨다. 저녁 무렵 아버지의 전화를 받고 눈 오는 밤 고속도로를 달려 고향 집에 도착했다.

시금치 밭 귀퉁이에 삼촌을 묻고 온 밤이었다. 그 때 나는 심한 코감기 때문에 고생하고 있었다. 피곤한 눈을 잠시 붙였을 때였다. 하얀 옷을 입은 어떤 할머니 한 분과 함께 삼촌이 나타났다.

할머니는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해대면서 내 코를 만지는 것이었다. 삼촌은 멀찍이 앉은 채 바라볼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나는 잠에서 깼다. 신기하게도 코는 말짱하게 나아 있었다.

과학적으로 설명이 되지 않는 얘기다. 사후 세계가 있다 없다 말이 많다. 누군가는 어떤 이유로 뇌파가 활성화돼 어떤 호르몬이 분비됐고, 감기 바이러스를 쫓아낸 것이라고도 설명할 수 있겠다. 하지만 나는 삼촌이 죽어서 나에게 마지막 선물을 주고 간 것이라고 믿고 있다.

한겨레신문이 쓰고, 네이버에도 연재되는 세월호 희생자 한 명 한 명의 이야기 '잊지 않겠습니다'를 읽고 떠올린 십몇년 전 기억이다. 활짝 웃고 있는 그림으로 남은 아이들에 대한 가족들의 사연을 읽을 때마다 눈시울이 다시 붉어진다. 엄마, 아빠의 꿈에라도 아이들이 자주 찾아와 주길 기도한다.

'잊지 않겠다'고 했지만 3개월이 채 되지 않은 상황에서 우리는 잊어가고 있다. 처음엔 1000개가 넘던 포털 기사 댓글이 지금은 채 10개도 달리지 않는다. 유병언을 못 잡는 것이냐, 안 잡는 것이냐 하는 얘기도 이제 식상해졌다.

국회의 국정조사는 오히려 희생자 가족을 분노하게 했고, 진상조사를 위한 특별법은 이제야 발의 단계다. 고양시 종합터미널 사고, 부산 수영장 사고 등 안전 불감증으로 인한 사고도 여전하다.

잊지 않는 것이 극복하는 것이다. 기억력이 없는 사회는 사회 전체가 인지증 환자나 다름없다. 인지능력이 저하된 사람은 감정에 지배돼 자신에게 유리한 정보를 선택하고 그것을 믿어버리는 것처럼 사회도 그렇다.

그런 사회에서는 정치권에서도 치욕과 분노, 공포 등 감정에 호소하는 커뮤니케이션이 통한다.('치매노인은 무엇을 보고 있는가', 오이 겐 지음 안상현 옮김 참고) 나치의 만행을 잊지 않은 독일은 경제적으로도 번영을 누리고 주변국에도 지도력을 발휘하고 있다. 하지만 침략의 기억을 지워버린 일본의 경우는 어떠한가.

청계천 옆 모감주나무는 사람의 일을 알았는지 노란 리본 같은 꽃을 오랫동안 가지 끝에 달고 있었다. 이제 그 꽃이 지자 배롱나무에 꽃이 도처에 피기 시작했다. '떠나간 님을 그리워한다'라는 꽃말을 가진 꽃은 오랫동안 붉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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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영권 기자

머니투데이 논설위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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