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만약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한테 어린 자녀가 있다면 삼성전자 사업장 내에 어린이집에 보낼 수 있을까. 결론은 안된다. 이 부회장이 삼성 총수라도 남성이기 때문이다.
전국 사업장에 어린이집을 갖추고 있는 삼성전자지만 남자 임직원에게는 그림의 떡이다. 만 0~3세 자녀를 어린이집에 넣을 수 있는 자격 요건은 '여성'으로 한정된다. 여성의 경제활동을 지원한다는 취지에 맞춰 남자 직원의 신청을 아예 배제했다.
다른 주요 기업들도 대개 여성에게 우선순위를 주지만 자격을 여성으로만 못 박지는 않는다. 이 때문에 삼성전자 직원들 사이에서는 홀로 아이를 키워야 하는 아버지들의 안타까운 사연이 간간이 들린다.
#"솔직히 꼴 사납다. 내가 이 정도인데 나이 더 많은 임원들이 보기에는 어떻겠는가. 삼성이 변하고 있다는 의미 있는 증거다"
올 여름부터 시작된 평일 반바지 차림을 2주간 지켜본 한 40대 삼성전자 간부의 관전평이다. 꽤 오랜 내부 논쟁을 거쳐 '드디어' 반바지가 허용되자 실제 사업장에서는 곳곳에서 맨 다리를 드러낸 남자 직원들을 볼 수 있다. 여전히 곱지 않은 시선이 만만치 않지만 상징적 변화가 시작됐다.
그러나 반바지라고 다 입을 수는 없다. 본사 차원의 가이드라인은 없어도 사업부에 따라 '권장'·'비권장'이 존재한다. 무릎까지 내려오는 적당한 길이의 '단정한' 면 반바지는 권장한다. 무릎 위로 올라가거나 운동복 소재(속칭 츄리닝) 반바지는 안된다. 장식이나 주머니가 너무 많이 달려도 곤란하다. 꽃무늬나 알록달록한 색깔도 안된다. 여름철 복장을 입을 수 있는 기간도 하절기(6~9월)로 정해져 있다.
#"하루 아침에 구글이 될 수 없다. 문화를 바꾸기란 너무 어렵다"
삼성전자의 문화혁신을 추진해온 고위관계자의 토로다. 미국 실리콘밸리의 유연함과 자율, 창의를 지향하지만 10만명(한국 본사 기준) 조직 곳곳에는 여전히 불합리한 획일적 제도와 경직된 문화가 적지 않다. '위로부터의 개혁'을 주도하는 경영진조차 조심스러운 부분이 많다.
아래에선 직원들대로 '피로감'을 호소한다. "혁신을 외치지만 특별히 뭐가 바뀌겠는가"라는 푸념이 아직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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옆에서 지켜보는 출입기자 입장에선 이럴 때일수록 선대 이병철 창업 회장의 '보보시도량'(步步是道場) 정신이 필요하다는 생각이다. 힘들어도 직원들과 소통하며 한 걸음씩 끊임없이 나아가야 한다는 말이다. 직원들의 피부에 와 닿는 것부터 불합리한 건 고치고 굳이 불필요한 간섭은 하나하나 없애도 좋을 것이다.
삼성은 변화보다 멈추는 것을 두려워할 시점에 서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