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승진이 두려운 2030…옮기면 되는 임원들

[기자수첩]승진이 두려운 2030…옮기면 되는 임원들

강기준 기자
2016.07.15 06:09

"며칠전 과장 진급 하자마자 회사에서 희망퇴직 면담을 받고 결국 퇴사하게 됐습니다. 집도 못 구했는데 사원 아파트서 나오면 당장 어디로 가야할까요."

조선업계에 근무하고 있는 한 직원의 이야기다. 몇 주전부터 들었던 위험하겠다는 예감은 틀리지 않았다. 11일자로 과장 진급을 하자마자 회사 요구로 조만간 희망퇴직을 신청하게 됐다. 조선업계는 한때 정년과 높은 임금이 보장되는 최고 직장이었다. 하지만 이제 직원들은 승진이 제일 무섭다고 토로한다.

과거 부장급 이상이 희망퇴직의 주요대상이었다면 요즘은 20~30대 사원까지 안심할 수 없는 처지다. 상황이 이러자 현대중공업 노조는 지난 5월 회사에 과장급으로 승진을 거부할 수 있는 '승진거부권'을 달라고까지 요구하기도 했다. 최근에는 현대중공업이 사원·대리급까지 희망퇴직 확대를 검토하는 것으로 알려지면서 현장에 부는 바람은 더욱 차고 날카롭다.

남은 인력이라고 마음이 편한 것은 아니다. 입사한지 5년차인 한 직원은 "회사가 조직을 통폐합하는 개편을 진행하면서 한순간에 팀과 인력 모두 줄어들어 적응하기 힘들다"며 "살아남았다는 안도보다는 다음번엔 내 차례가 되는 것은 아닌지 불안하다"고 털어놨다.

구조조정 한파 속에서도 여전히 '양지'를 찾아 옮겨 다니고 있는 일부 임원들은 젊은 후배들의 박탈감을 더욱 크게 만들고 있다.

과거 대우조선해양에 근무하며 경영 부실의 책임이 크다고 평가받는 일부 임원들은 '업계 전문가'라는 이름 아래 다른 회사로 옮겨 구조조정 과정을 지휘하며 경력을 더욱 탄탄히 쌓아가고 있다.

특히 이들은 2010~2013년사이 무리한 신사업이나 저가수주 등을 현장에서 지휘했지만 책임 공방이 CEO(최고경영자)에 머물러 있는 사이 책임론에서 벗어나 업계를 활보하고 있다.

한 조선사 직원은 "회사로 이직해온 임원이 대우조선 대규모 부실 주범 중 한명이란 소문이 파다하다"며 "회사를 망친 사람들이 왜 '전문가'로 추앙받는지 모르겠다"고 말하기도 했다.

구조조정 한파 속에 조선업계 종사자들은 다들 '인생 2모작'을 준비하고 있다.

그런데 왜 농사를 망친 사람들은 벼가 자라고 있는 다른 논으로 옮기면 그만이고, 누구는 씨앗부터 다시 뿌려야 하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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