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헝가리 경제에 기여하고 헝가리와 유럽연합(EU) 기준을 충족한다면 아시아 기업 투자도 환영합니다."
최근 헝가리 총선을 승리로 이끈 페테르 마자르 티서당 대표가 지난 14일(현지시간) 한 말이다. 16년 만의 정권 교체를 이뤄낸 그는 전 정부가 유치한 한국과 중국 배터리 공장에 대해 선거 기간 내내 비판적 입장을 유지해왔다. 그러나 당선 직후 마자르 대표는 "투자를 약화시키기 위한 재검토가 아니라 노동·보건·환경 규정 준수 여부를 점검하기 위한 것"이라고 밝히며 기조 변화를 시사했다.
헝가리 투자청(HIPA)에 따르면 헝가리는 최근 10년도 채 되지 않는 기간 동안 배터리 분야에서 40개 이상의 글로벌 기업으로부터 60건이 넘는 프로젝트를 유치했다. 누적 투자액은 약 265억 유로(약 45조 원)에 달한다. 현재 헝가리를 생산기지로 삼은 주요 배터리 기업은 SK온, 삼성SDI, CATL, EVE에너지, 신왕다 등 5곳이다.

이 기간 배터리 산업은 헝가리를 지탱하는 주력 산업으로 성장했다. 2024년 기준 배터리 산업이 국내총생산(GDP)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5.5%로 추산되며 헝가리는 이미 동유럽 최대 배터리 생산 거점으로 평가받고 있다. 업계에서는 2030년 헝가리 배터리 총생산 규모가 210GWh(기가와트시) 수준까지 확대될 것으로 보고 있다. 이 경우 헝가리는 중국·미국·독일에 이어 세계 4위권 생산 거점으로 올라서게 된다.
새 정부 역시 이 같은 산업 구조를 외면하기는 어려웠던 것으로 보인다. 특히 다른 제조업이 흔들리는 가운데서도 배터리 산업은 성장세를 이어가며 중요성이 더욱 커진 상황이다. 헝가리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 2월 전체 산업 생산량은 전년 동기 대비 1.8% 감소했으며 산업의 97%를 차지하는 제조업 생산도 전반적으로 위축됐다. 반면 같은 기간 배터리 생산은 28% 증가했다.
헝가리에 진출한 한국 배터리 기업들은 마자르 대표의 기조 변화에 한숨 돌린 모습이다. SK온은 2018년 헝가리에 진출한 이후 2020년 코마롬 1공장, 2022년 코마롬 2공장, 2024년 이반차 공장을 잇달아 가동하며 생산능력을 확대해왔다. 삼성SDI는 2017년부터 헝가리 괴드에서 공장을 운영 중이다.

새 정부의 친(親) EU 기조 역시 국내 배터리 업계에는 긍정적이다. 마자르 대표는 줄곧 EU와 대립해온 직전 오르반 정부의 노선과 선을 긋고 헝가리가 EU·북대서양조약기구(NATO)의 강력한 동맹이 될 것이라고 강조하고 있다. 최근 산업가속화법안(IAA)을 시행하는 등 중국 의존도를 낮추려는 움직임을 보이는 EU와 발을 맞출 것으로 보이는 대목이다. 해당 법안은 배터리셀을 포함해 3가지 이상의 배터리 소재를 역내에서 생산·조달해야 전기차 구매 시 보조금을 지급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한국과 중국 기업이 유럽 현지 생산을 기반으로 경쟁할 경우, 한국 기업에도 승산이 충분하다는 평가다. SNE리서치에 따르면 현재 삼원계 배터리 기준 한국 기업의 배터리 가격은 중국 기업 대비 약 20% 높은 수준이다. 하지만 중국 기업이 유럽으로 생산 거점을 이전할 경우 인건비와 유틸리티 비용 상승으로 총원가가 10~20%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한국 기업이 만든 배터리와 가격 차이가 거의 없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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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중국 업체들이 현지 진출 과정에서 초기 투자 비용과 수율 관리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점을 고려하면 경쟁 여지가 충분하다. 업계 관계자는 "유럽 기준에 맞춰 공장을 운영해온 한국 기업들에게 헝가리 새 정부 출범은 오히려 불확실성을 줄이는 계기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