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무역서 경제안보로 통상질서 전환…제조기반 유지가 관건

미국과 유럽연합(EU)이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관세와 보조금, 투자심사 장벽을 높이고 있는 가운데 한국 자동차산업이 이 틈을 전략적으로 활용해야 한다는 제언이 나왔다. 글로벌 통상질서가 자유무역 중심에서 경제안보와 산업정책 중심으로 바뀌는 만큼 한국도 중국을 배제하려는 주요국의 공급망 재편 과정에서 새로운 기회를 찾아야 한다는 진단이다.
자동차모빌리티산업연합회(KAIA)는 28일 서울 서초구 자동차회관에서 이같은 주제가 중심이 된 '글로벌 통상 패러다임 전환과 K-모빌리티 경쟁력 강화 방안' 포럼을 열었다.
이날 참석자들은 미국과 EU의 보호주의 강화가 한국 자동차산업에 위기이자 기회가 될 수 있다는 의견을 내놨다. 실제로 미국은 232조 자동차 관세와 IRA(인플레이션감축법) 생산세액공제, 커넥티드카 규제 등을 통해 중국산 자동차와 부품의 유입을 견제하고 있다. EU 역시 중국산 전기차 상계관세와 산업가속화법 등을 앞세워 생산기반 강화에 나서고 있다.
조수정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과거 통상 룰이 WTO(세계무역기구)와 FTA(자유무역협정) 중심이었다면 지금은 각국이 서로 다른 규제를 통해 중국을 공급망에서 배제하는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다"며 "이를 우리나라가 어떻게 활용할 수 있을지 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중국산 자동차와 부품에 대한 규제가 강화될수록 한국 기업이 대체 공급망으로 부상할 여지가 있다는 설명이다.
중국 기업들이 규제를 피하기 위해 해외 생산거점을 넓히고 있는 점도 한국이 주목해야 할 변수로 꼽혔다. 정지현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중국의 해외 진출은 생산, 공급, 인프라 기능이 결합된 거점 네트워크로 전환되고 있다"며 "EU에서는 중국 기업들의 현지 생산거점 확대가 단순한 가격 경쟁을 넘어 공급망과 원산지, 탄소규범 대응 경쟁으로 확대되고 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한국이 미국과 중국 어느 한쪽에만 의존하기 어려운 만큼 산업별로 활용 가능한 공간을 정교하게 찾아야 한다고 조언했다. 조성대 한국무역협회 통상연구실장은 "지금의 통상 환경은 1970~80년대와 상당히 유사하다"며 "당시 미국이 공격적인 통상정책을 폈다면 지금은 폐쇄적이고 방어적인 보호주의를 취하고 있다"고 밝혔다.
한국 자동차산업의 기본 전제는 국내 생산기반 유지라는 지적도 나왔다. 통상규제의 빈틈을 활용하려면 한국이 대체 공급망으로 인정받을 수 있는 제조 기반을 국내에 갖추고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박성규 HMG경영연구원 상무는 "우리가 변화 속에서 사용할 수 있는 가장 큰 무기는 결국 제조경쟁력"이라며 "모든 작전의 출발점은 국내 생산기반을 온전하게 유지하는 것"이라고 전제했다. 이어 "경제안보가 일상 용어가 된 시대"라며 "내수 시장과 국내 산업기반이 경제안보와 경제발전 전략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더 커졌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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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유 산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중국 자동차산업이 가격 경쟁을 넘어 품질과 기술, 고급화 영역까지 빠르게 올라오고 있다고도 했다. 그러면서 "숫자상으로는 한국 자동차산업이 400만대 생산 체제를 유지하고 있어 큰 위기가 없어 보이지만 실제로는 더 큰 위험 요인이 다가오고 있다"며 "이런 환경 변화는 기업만 대응하기 어렵기 때문에 적극적인 산업정책이 필요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다만 중국 규제를 활용하는 과정에서 한국이 중국산 제품의 우회수출 기지로 인식되는 것은 경계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왔다. 조 교수는 "우회수출 기지라는 오명을 받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며 "중국을 배제하는 정책이 나올 때 우리나라가 어떻게 기회를 탈 수 있을지 봐야 한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