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 88만원이 아닌 88억원 세대라야 하는 이유

[광화문] 88만원이 아닌 88억원 세대라야 하는 이유

유병률 기획취재부장
2011.06.24 06:00

우리나라에서 가장 불행한 세대는 누구일까. 50대? 20대? 아니면 10대?

공인된 정답이 없는 걸 보면 불행하지 않은 세대는 없는 것 같다. 정도의 차이일 뿐이다.

50~60대는 13년 전 IMF 위기를 전면에서 겪었다. 37~56세였을 적이다. '오륙도(56세까지 직장에 있으면 도둑)'라 해서 처음엔 50대 선배들이 먼저 눈물의 비디오를 찍어야 했다. 뒤이어 많은 40대 후배들이 회사를 떠났다. '사오정(45세 정년)' 세대들이다. 당시 등 돌려서 애처롭게 담배 한대씩 물고 있던 신문 사진의 주인공들이 바로 지금의 50~60대이다.

불행하기는 40대도 만만찮다. 이들이 30대이던 2000~2006년 아파트값 폭등이 불행의 씨앗이었다. 하늘 높은 줄 모르게 집값이 오르자 당시 많은 30대들이 내 집 마련을 포기해야 했다. 안 그래도 아이들 사교육비 대기도 벅찬데 말이다. 지금 40대끼리 만나면 어디 살고 있는 지부터 묻는다는 우스개 소리가 있는 걸 보면, 세대 내 격차가 극적으로 벌어지기 시작한 첫 세대가 이들이 아닌가 싶다.

힘들게 생존해온 걸로 치면 30대도 할말이 많다. 바늘구멍 취업의 원조가 바로 이들이다. IMF 한파가 한창일 때 대학을 졸업한 이들은 잘릴 때 잘리더라도 직장 한번 들어가보는 게 소원이었다. 그래서 언론들은 이들을 '버림받은 학번들'이라고 했다. 신입사원 때부터 '안정적인 일자리는 어디에도 없다'는 걸 명심하고 살아야 했던 세대이기도 하다.

따지고 보면 20대가 가장 불행한 세대일지도 모른다. 앞 세대의 불행은 다 물려받았으니 말이다. 그것도 고농축으로. 취업은 자신의 능력을 넘어선지 오래됐다. 미래는 더 어둡다. 내 집 마련이 가장 힘들 세대도, 자식 교육이 가장 걱정될 세대도, 노후가 가장 불안할 세대도 사실은 바로 이들이다. 88만원 세대는 미래도 88만원 세대일 수밖에 없다.

그러면서 우리는 또 하나의 불행한 세대를 키우고 있다. 10대이다. 외국의 10대들이 스포츠로 팀워크를 배우는 동안 이들은 옆자리 친구조차 경쟁자로 여기며 성적에 인생을 걸고 있다. 무능력과 실패는 자신의 탓이라고 끊임없이 스스로를 세뇌하고 있다. 과연 이들이 자라면 마음 속에 행복이라는 단어가 자리할 공간이라도 있을까.

이렇게 보면 사오정, 오륙도, 버림받은 세대, 88만원 세대, 고령화 폭탄과 같은 조어(造語) 들은 분명 역사성을 가지고 있다. 그렇게 만들어질 만한 이유가 있었다. IMF 사태 이후 대한민국의 암울한 진실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그런데 한번 생각해볼 문제가 있다. 이런 조어들 때문에 지레 겁부터 먹고 희망을 상실하고 있는 건 아닌지. 안 그래도 우울한 대한민국을 더 우울하게 만들고 있는 건 아닌지.

88만원 세대만 해도 그렇다. 언제부턴가 88만원 세대는 당사자들에게도, 기성세대에게도 주홍글씨가 돼버렸다. 대학 3학년이 되면 빚을 내서라도 어학연수 다녀오고 수십, 수백 번씩 자기소개서 쓰는 것도 당연한 일이 돼버렸다. 왜냐하면 88만원 세대이기 때문이다. 자식이 공기업, 대기업이라도 취업하면 집안의 경사이고, 대학 나와서 노는 것도 여사가 됐다. 왜냐하면 어차피 88만원 세대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88만원 세대라는 조어는 아예 그 너머를 꿈꾸지 못하도록 하는 죽음의 늪이 돼버렸다. '이게 아닌데' '이 길 말고 다른 길도 있는데'라는 의심하는 기능을 마비시켰다. 저항도 없고, 도전도 없다.

그런데 꽃도 예쁘다 예쁘다 하면 예쁘게 피고, 자식도 잘한다 잘한다 하면 더 잘하는 법. '너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너는 내게 와 꽃이 되는 것'처럼 말이다. 머니투데이가 88만원 세대를 88억원 세대로 부르고자 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그렇게 불리는 이들도 이름에 걸맞게 도전을 할 것이고, 그렇게 불러주는 이들도 책임감 느끼며 도와줄 대안을 만들 것이다. 진실을 가리자는 것이 아니다. 진실을 새로 쓰자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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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병률 부국장겸 티타임즈 에디터

안녕하세요. 티타임즈 유병률 부국장겸 티타임즈 에디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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