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동희의 思見]기업을 '선거판의 볼모'로 삼지 말라

[오동희의 思見]기업을 '선거판의 볼모'로 삼지 말라

오동희 기자
2016.04.06 13:02
[편집자주] 재계 전반에 일어나는 일에 대한 사견(私見)일 수도 있지만, 이보다는 '생각 좀 하며 세상을 보자'라는 취지의 사견(思見)을 담으려고 노력했습니다.

"경제는 살아날 기미도 안 보이는데, 죽었던 경제민주화는 부활했다."

친기업적인 학자나 경제단체에서 나온 말이 아니다. 대표적인 재벌 저격수로 꼽히는 김상조 한성대 교수가 지난 2월 두차례에 걸쳐 경향신문에 쓴 '뉴노멀 시대의 경제민주화'라는 칼럼에서 한 말이다.

김 교수는 이 칼럼에서 최근 선거철이 다시 돌아오면서 정치슬로건으로 오염된 경제민주화의 문제가 다시 정치권을 중심으로 일어나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는 저성장과 불확실성의 뉴노멀 시대가 끝도 없이 이어지고 있고, 한국의 경쟁우위가 사라지고, 유례없는 고령화 추세로 소비절벽과 세대 갈등이 증폭되는 최악의 상황에도 선거만 되면 '표심'을 얻기 위한 오염된 정치슬로건이 난무하고 있음을 지적했다. 그는 세상이 변했고, 익숙한 과거와 결별하는 고통이 따르겠지만, 보수도 진보도 생각을 바꿔야 한다고 말했다.

이런 우려에도 불구하고, 20대 총선 레이스가 본격화되면서 구태가 또 다시 살아나고 있다. 선거에서 표심을 얻기 위해 기업을 선거판 한 가운데 몰아넣고, 볼모로 활용하는 일이다.

6일에는 한 출마 후보자가 국내 최대기업의 투자를 지역구에 유치하기로 협의했다는 선심성 공약으로 표심잡기에 나서 해당 기업과 재계가 당혹해 하고 있다.

정치인들은 공약(公約: 공적인 약속)이든 공약(空約: 빈 약속)이든 마음대로 할 수 있지만, 기업은 그렇지 않다. 그동안 수많은 정치인들이 그럴듯한 공약(公約)을 내놓고, 표를 얻은 후에는 공약(空約)으로 만들었지만 어떤 처벌도 받지 않았다.

하지만 기업은 한번 내뱉은 말에는 책임을 져야 하는 숙명 갖고 있다. 책임을 지지 않으면 각종 비난은 물론 규제 당국의 처벌과 주주들로부터의 소송에 자유로울 수 없다.

정치인이 자신의 의지를 이야기하는 것은 자유다. "저를 뽑아주시면 열심히 해서 어떤 기업을 우리 지역에 유치하도록 노력하겠다"는 것은 상대방과 상관없는 자유의지다.

하지만 "수 조원을 투자하는 것을 해당 기업과 협의했다"는 주장으로 표를 얻기 바란다면, 이는 실현되지 않았을 경우 그 말에 책임을 져야 할 부분이다. 실현되지 않을 공약(空約)을 믿고 찍어준 유권자들에 대한 도리이기도 하다.

선거는 정치인의 실력으로 승부해야 한다. 기업과 기업인을 선거판의 '말(馬)'로 끌어들여 실현 가능성이 적은 공약(空約)을 하는 것은 오염된 정치슬로건에 다름 아니다.

만약 기업을 유치하고 싶다면, 그 기업에 매력적인 조건을 제시해 경쟁력 있는 기업이 현지에서 영속성을 갖도록 하는 게 우선이다.

미국 알라바마주는 현대자동차 공장을 유치하기 위해 주민투표까지 실시해 외국인의 토지 소유를 금지하던 주헌법을 고쳤고, 210만평의 공장부지는 단 1달러에 현대차 매각했다.

중국 쑤저우 공업원구는 삼성전자 LCD 공장 유치를 위해 평당 2만원이라는 헐값에 수만평을 불하했고, 멕시코 몬테레이 정부는 LG전자 공장유치를 위해 공장 앞마당까지 철도를 연결시켜 줬다. 우리나라에서 이런 일이 벌어졌다면 '재벌특혜' 시비로 나라 전체가 난리가 날 일이다.

기업유치는 단순히 선거용 표심을 얻기 위해 내놓는 공약이 아니라, 외국의 사례처럼 '해당 기업이 현지에서 영속적으로 생존할 수 있도록 조건을 제시하는 것'이다.

진정 지역민의 일자리 창출과 생활수준의 향상을 바란다면, 정치적 목적으로 기업활동의 발목을 잡아서는 안된다. 진정한 정치는 기업을 선거판 중심의 볼모로 삼는 것이 아니라 기업이 일자리를 창출할 수 있도록 활로를 열어주는 것이다. 기업 경영은 그냥 기업에 맡겨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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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동희 기자

'기자의 생명은 현장에 있다' 머니투데이 산업1부 선임기자(국장대우)입니다. 추천도서 John Rawls의 'A Theory of Justi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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