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대기업의 베끼기'에 발목 잡힌 창업 생태계의 슬픈 현주소

[기자수첩]'대기업의 베끼기'에 발목 잡힌 창업 생태계의 슬픈 현주소

방윤영 기자
2016.07.11 16:42

"대기업이 중소기업, 스타트업(초기기업) 아이디어를 가져다 쓰는 게 한국의 창업 문화로 자리 잡은 것 같아 안타깝다."

최근 네이버가 내놓은 번역 서비스가 집단지성 번역 플랫폼 스타트업인 '플리토'를 표절한 것 아니냐는 논란에 이정수 플리토 대표가 한 말이다.

네이버가 지난달 출시한 '참여번역Q'는 이용자가 번역을 요청하면 다른 사용자들이 직접 번역문을 제공하는 서비스다. 하지만 스타트업 '플리토'가 2013년부터 이와 비슷한 서비스를 제공해온 사실이 드러나면서 네이버의 표절 시비가 불거졌다.

네이버의 스타트업 표절 논란은 지난 8일 김상헌 네이버 대표가 사과의 뜻을 밝히며 해당 서비스를 종료하겠다고 밝히며 마무리되는 듯했으나 개운하지는 않다. M&A(인수·합병)보다는 작은 기업의 아이디어를 문제의식 없이 가져다 쓰는 일부 대기업의 행태가 국내 벤처기업 문화에 뿌리깊이 박혀 있음을 보여주는 또 하나의 사례로 보여지기 때문이다.

이 대표는 네이버의 표절 논란에도 마땅한 대응책이 없다는 게 가장 답답하다고 말했다. 그는 "스타트업이 대기업을 상대로 법적 소송을 제기하기엔 자금과 시간을 투자할 여력이 없고 정부가 법이나 제도를 만들어 규제해주길 기대할 수도 없는 노릇"이라며 "결국 국내 기업 문화가 바뀌어야 하는데 하루아침에 변화할 수 없으니 대응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는 것"이라고 토로했다.

이는 국내 창업 생태계의 열악한 현주소를 보여주기도 한다. 미국 실리콘밸리가 창업의 요람이 된 배경에는 '스타트업 성장→대기업 인수→엑시트(자금회수)→창업에 재투자'라는 선순환 구조 구축이 자리잡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국내에는 '대기업 인수'가 활발하지 않다. 창업 생태계의 연결고리가 빠져 있는 셈이다.

실제로 네이버는 M&A를 통한 신규 사업 확장보다는 자체 개발하는 방식을 주로 취해왔다. 네이버는 2006년 경쟁사 검색엔진 '첫눈'을 350억원에 인수한 이후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 '미투데이', 여행 정보 사이트 '윙버스' 등을 인수해왔으나 카카오에 비하면 사례가 많지 않다. 그나마 최근 2년 내 발생한 인수 사례도 자회사 '라인'이 일본 현지 업체를 대상으로 한 것이다.

기업혁신의 사례로 꼽히는 구글은 공격적인 M&A로 빠르게 경쟁력을 확보했다. '인공지능 대 인간'이란 세기의 바둑대결로 화제가 된 구글의 '알파고'는 자체 개발이 아니라 영국 개발사 '딥마인드'를 인수해 만든 결과다. '안드로이드', '유튜브' 등도 인수한 서비스다.

국내 대기업의 방식은 다르다. '자체 인력으로 금방 개발할 수 있는데 굳이 왜 돈 주고 인수해야 하지?'라는 인식이 깔려 있다. 작은 기업의 아이디어를 가져다 쓰는 데도 거리낌이 없다. 아이디어의 가치를 인정하고 그에 맞는 가격을 매기는 미국의 기업 문화와는 현격한 차이가 존재한다.

올바른 창업 생태계를 구축하려면 활발한 M&A가 필수다. 하지만 M&A나 아이디어에 제값을 매기는 기업문화 모두, 기업이 스스로 하지 않으면 정부가 나서서 강제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 '대기업의 아이디어 베끼기'에 발목이 잡힌 한국 창업 생태계의 슬픈 현주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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