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보세]'주총거수기' 거부한 국민연금에게

[우보세]'주총거수기' 거부한 국민연금에게

송지유 기자
2019.02.12 05:43
[편집자주] 뉴스현장에는 희로애락이 있습니다. 그 가운데 기사로 쓰기에 쉽지 않은 것도 있고, 곰곰이 생각해 봐야 할 일도 많습니다. ‘우리가 보는 세상(우보세)’은 머니투데이 시니어 기자들이 속보 기사에서 자칫 놓치기 쉬운 ‘뉴스 속의 뉴스’, ‘뉴스 속의 스토리’를 전하는 코너입니다.

"수익률이 1%포인트 떨어질 때마다 기금고갈 시점이 5년 당겨진다", "600조원 넘는 기금으로 마이너스 수익률을 내다니 한심하다", "(한진그룹)총수 일가의 갑질을 견제하지 않는 대주주에도 책임이 있다"….

대한민국 정부가 직접 운영하는 세계 3대 규모 공적연기금인 국민연금은 늘 여론의 뭇매 대상이다. 국민 2000만명 이상이 노후자금을 맡긴 곳이다 보니 사안 사안마다 의견이 분분하다. 잘해야 본전, 조금만 삐끗하면 곳곳에서 질타가 쏟아지는 이유다.

최근 자본시장과 산업계를 뜨겁게 달구고 있는 국민연금 이슈는 스튜어드십 코드(주주권 행사)다. 지난해 7월 스튜어드십 코드를 도입하기로 한 뒤 처음으로 3월 주주총회 시즌을 맞은 만큼 국민연금 행보에 관심이 집중돼 있다.

그동안 적극적인 주주권을 행사하지 않아 '주총 거수기', '종이호랑이' 등 조롱을 받아 왔던 국민연금은 이번에 노선을 확실히 갈아탔다. 한진칼과 남양유업 등에 주주제안 형태로 압박 수위를 높인데 이어 올해부터는 주총 이전에 의결권 행사 방향을 사전 공개한다는 방침을 내놨다.

의결권 사전 공개 대상은 국민연금 지분율이 10% 이상이거나 국내 주식 투자 포트폴리오 중 보유비중이 1% 이상인 기업이다. 이 기준에 해당하는 기업은 2018년말 기준 100개 안팎에 달한다. 삼성전자 SK하이닉스 현대차 포스코 등 유가증권시장 시가총액 상위 대기업도 상당수 포함된다.

시장과 기업에 미칠 파장을 감안 해 주총이 끝난 뒤(14일 이내) 의결권 행사 결과를 공개해 왔던 종전 방식에서 완전히 탈피한 것이다. 지금까지는 국민연금이 반대한 안건이 실제 부결로 이어진 사례가 드물었지만, 앞으로는 국민연금의 입김이 세질 것이라는 관측이다. 특히 재벌 총수일가의 검증 없는 경영권 승계나 물의를 일으킨 경영진의 미퇴출, 주주가치를 훼손하는 쥐꼬리 배당 등 문제기업에 대한 국민연금의 적극 대응이 이뤄질 것이라는 기대가 크다.

하지만 일각에선 '기업 길들이기', '연금 사회주의' 등 국민연금이 정치권의 노리개로 전락했다는 지적도 만만치 않다. 의결권 행사 방향을 미리 공시하면 여론전 선봉에 설 것이라는 우려도 있다.

국민연금이 이 같은 비판에서 자유로워 지려면 독립성과 공정성 원칙을 확실히 세워야 한다. 기금 운영과 수익성 제고는 물론 기업지배구조 개선 등 공공 목적의 사회적 책임도 철저히 지켜야 한다.

무엇보다 정치적 입김에 따라 운영 원칙이 흔들리거나 기업을 지나치게 옥죄는 행위는 절대 지양해야 한다. 엘리엇·칼 아이칸 등이 스스로를 '주주 행동주의'라고 칭하지만 시장에선 '기업 사냥꾼'으로 불리는 배경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들과 달리 투자기업 경영에 개입하지 않기로 유명한 세계 최대 자산운용사 블랙록의 래리 핑크 회장은 "단기적인 주주 환원이 근로자에 대한 투자, 장기 성장에 꼭 필요한 자본 지출을 줄이고 있다"고 지적한 바 있다.

기업은 주주의 전유물이 아니라 경영진과 임직원, 채권단, 협력사, 소비자, 지역사회 등의 공동 자산이다. 국민연금이 단기 수익에 연연하기보다 기업들의 장기 발전 모델 구축에 힘을 합쳐야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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