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용 치적쌓기 사업이 아니길...도시 재구성에 진정한 철학과 방향서 보여야
#'육미'라는 집이 있었다. 돈 없는 대학생들부터 회사에서 시달린 직장인의 술로 애환을 달래는 곳. '무한리필' 공짜 어묵탕과 염통, 은행, 삶은 꼬막까지 저렴한 안주만 족히 30여가지가 됐던 것 같다. 기묘하게 연결된 1층, 반2층, 2층 등 촘촘하게 이어진 수백석의 자리는 항상 만석.
그러나 그 골목은 항상 왠지 모를 불안감을 조성했다. 빽빽한 선술집 사이로 뒤엉킨 실타래처럼 연결돼 있는 가스통은 반쯤 취한 상태서도 늘 선명했다. 우려는 현실로 됐다. 2013년 2월 17일 육미가 있는 인사동 255번지는 한 방화범에 의해 잿더미가 됐다. 곳곳에 있던 가스통은 불을 더 키웠다. 추억을 곱씹기 위해 안전을 위한 일대 정비가 먼저였다는 아쉬움이 들었다.
#종로구 청진동에 있는 해장국집인 '청진옥'. 가벼운 주머니로 해장국 하나 시켜 놓고 소주를 마실 수 있는 친구들의 근거지. 고인이 되신 할아버지 때부터 다닌 곳이다. 주인은 3대째 이어지고 우리집은 3대째 그곳에서 술을 마셨다.
한세기 가까운 역사의 청진옥은 청진동 재개발과 함께 2008년 고층빌딩의 1층에 자리잡고, 2016년에는 인근 조그만 건물을 통째로 얻어 다시 이전을 했다. 오래된 청진옥의 운치는 없었지만 해장국은 하루의 피곤함을 풀기에 충분했다.
노포(老鋪)로 시끄러운 며칠 전 청진옥을 들렀다. 괜시리 맛이 달라졌나 음미해본다. 박 시장은 '맛 잃은 식당'으로 평가한 적이 있는데 차이를 잘 모르겠다. 학생 때 같은 간절함이 적어 맛이 달리 느껴질 수도 있는데 미각이 무딘건지 그냥 그대로다.
"이모 요즘 말 많은데 여기는 어때요? ". "오히려 깔끔한 건물로 들어오니 젊은 사람들도 많이 찾고 더 바빠져 정신 없어요"라면서 웃으신다. 이전 이후 다양한 연령층 포섭이라는 반사이익이 생긴 셈이다.
이 종로와 인사동 등 일대를 올 곧이 기억하는 건 40여년을 종로에서 살아온 이른바 '종로 토박이'이기 때문이다. 광화문광장의 수난사와 동대문운동장과 청계고가도로의 철거, 종로의 피맛골과 인사동 골목 구석의 '간판없는 집'의 세수대 막걸리까지 기억할 수 있는 이유다.
장황하게 기억을 되짚은 건 정답이 없다는 얘기를 하고 싶었다. 추억이라는 남루한 풍경이 맛에도 영향을 준다는 사람도 있고, 그 맛은 어디 가지 않는다는 사람도 있다. 재정비로 안전하고 깔끔한 곳에서 그 맛을 느끼고 싶은 사람도 있고, 과거 그대로를 고집하는 이도 있다.
세운재정비촉진지구를 둘러싼 이야기는 누구나 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박원순 시장 발언은 시민들이 쏟아내는 의견과 결을 달리해야 한다. 도시재생을 하겠다면 노포를 살리고 주변을 정리할 지, 완전히 새로운 공간을 만들지 처음부터 고민해야 했다. 꼼꼼함이 부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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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박 시장은 을지면옥이 철거대상인지 잘 몰랐고, 서울시 일이 많고 복잡하다는 하소연까지 했다. 지난해 3월 2020년까지 도시재생 10년 혁명을 완성하겠다고 외친 패기는 찾을 수 없었다. 여론에 금방 꼬리부터 내렸다. 10여년 추진한 사업은 찰나에 '보류'라는 딱지가 붙여졌다.
여의도, 용산개발 발언부터 광화문광장, 노포 논란까지 박 시장 한 마디에 갈등이 끊이질 않는다. 지금 서울시의 수장으로서 보이는 행동은 오답에 가깝다. 뚝심도, 정책추진의 방향성도 명확하지 않기 때문이다.
일각에서 나오는 지적처럼 지금의 정책혼선이 대선용 치적쌓기라는 조바심에서 기인한 것만 아니길 바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