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국가의 실력

[광화문]국가의 실력

강기택 산업2부장
2022.03.23 04:06

워런 버핏은 '수영장 물이 빠졌을 때 누가 발가벗고 헤엄쳤는지를 알 수 있다'고 했다. 돈을 굴리는 일뿐 아니라 세상의 모든 일은 위기가 닥쳐야 누가 실력이 있는지 낱낱이 드러난다.

미국과 중국의 패권전쟁은 달러, 석유, 식량, 반도체 등이 자급자족이 되는 나라와 아닌 나라의 싸움이라고 누누이 써 왔다. 중국은 지난해 반도체 수입에 가장 많은 외환보유액을 썼다. 그 다음이 석유였고, 식량이 뒤를 잇는다. 반도체, 석유, 곡물 등의 가격이 뛰면 중국은 물가 못지 않게 달러 소모를 걱정한다. 반면 미국은 달러가 자국 화폐라 무한정 찍어낼 수 있다. 세계 최대의 산유국이자 농업국이다. 반도체도 직접 만들지만 반도체 관련 소프트웨어나 장비로 반도체 생산국을 통제할 수 있다. 이게 현재의 세계 질서를 관통하는 '게임의 법칙'이다. 이 기본적인 룰에 대한 이해가 없다면 국제정세에 까막눈이나 마찬가지다.

한국도 중국의 처지와 별반 다를 바 없다. 스스로 수요를 충족시키면서 수출도 할 수 있는 건 반도체가 유일한데 그나마 미국의 영향력 아래에 있다. 미국이 반도체를 비롯한 하이테크 제품에 대한 제재안(해외직접제품규칙, FDPR)을 꺼내 들면 수출도 못 한다. 석유와 식량은 자립이 불가능하다. '국가부도의 날'에서 한국은행 통화팀장(김혜수 분)이 모라토리엄을 왜 선언하지 않느냐고 재정국 차관을 몰아붙이는 장면이 있는데 무지의 소치다. 아니 극치다. 러시아, 아르헨티나, 브라질, 멕시코 등 모라토리엄을 행했던 국가는 산유국이면서 농업강국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최소한 자국이 쓸 석유와 식량이 있으니 '벼랑 끝 전술'을 구사하는 것이다. 그런데 한국은 석유를 전량 들여온다. 식량자급률은 50%가 안 되고 곡물자급률은 20%대다. 에너지가 부족해 국가기능이 마비되거나 식량이 모자라 굶어 죽는 것을 각오해야 한다.

패권의 기반이 되는 요소가 달러, 석유, 식량, 반도체 등이라면 그것을 자력으로 확보할 수 없는 나라는 힘이 없는 나라고, 패권국가일 수도 없다. '시진핑은 늘공이고 트럼프는 어공'이라며 바이든행정부가 들어서면 미중관계가 달라질 것이라던 얼치기들은 자기가 무엇을 모르는지조차 모르는 이들이다. 핵심이익을 지키기 위한 미국의 대외정책은 공화당이든 민주당이든 상관 없이 일관성 있게 지속된다. 오바마 집권 2기의 '아시아 회귀'는 트럼프의 인도-태평양 전략으로 이어졌고 바이든행정부도 그 기조를 잇고 있다. 정도나 강도의 차이만 있을 뿐이다.

이런 구도 속에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면서 국제유가는 더 뛰었고, 곡물가격도 급등했다. 이는 국내 달러 수급과 물가에 충격을 준다. 1970년대 두 차례에 걸친 석유 파동을 겪고 석유를 조금이라도 대체할 요량으로 육성했던 원전은 5년 내내 걷어 찼다. 해외 자원개발은 금기시 했고 이미 가진 것도 팔고 또 팔았다. 러시아의 곡물수출 금지령은 그 배경과 전개방식이 전혀 다르지만 과거 소련발 곡물파동과 같은 파급효과를 야기할 수 있다. 그럼에도 식량주권을 위한 제대로 된 예산배정은커녕 구호도 들먹인 적이 없 다.쌀에 이어 제2의 주식이 되다시피 한 밀의 자급률은 1%가 채 안 된다. 환율은 치솟았는데 밀값이 폭등하니 과자, 국수, 라면 등 식품가격이 오르고 외식물가도 뜀박질한다. 애그플레이션은 그 자체로 한국경제의 최대 위협요소가 됐다.

기획재정부가 '외식가격 공표제'를 실시해 물가를 잡으려 한다지만 식음료 기업의 팔을 비튼다고 지정학적 원인을 제거할 수 없다. 관료들은 기업을 탓하고 이들 기업은 소비자에게 가격을 전가하는 현상이 반복될 것이다. 부담은 '소비자인 국민'의 몫이다. 국가가 힘이 없다는 것의 의미를 절절히 깨닫게 될 것이다. 온갖 비용을 국민이 지불하게 한 정부의 무능도 절감할 것이다. 자업자득이고, 인인유책이다.

<저작권자 © ‘돈이 보이는 리얼타임 뉴스’ 머니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AI학습 이용 금지>

강기택 논설위원

비즈니스 저널리즘의 최고 경지, 머니투데이의 일원임을 자랑스레 여깁니다. 독창적이고, 통찰력 넘치는 기사로 독자들과 마주하고자 합니다. 감사합니다.

공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