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20년간 금융정책은 없었다

[광화문]20년간 금융정책은 없었다

박재범 증권부장
2022.03.28 04:25

혁신은 미래를 만든다. 미래를 위한 혁신이 갑자기 하늘에서 뚝 떨어지진 않는다. 과거의 어느 순간, 잉태된다. 마치 씨앗과 같다. 씨앗을 뿌리지 않은 채 아름다운 꽃, 풍성한 열매를 기대하는 것은 도둑 심보다.

우리가 누리는 당연한 현실은 오래전 잉태된 혁신의 산물이다. 정보통신(IT) 혁명, 플랫폼 산업 등이 단적인 예다. 역으로 현실의 정체는 과거 무능의 결과다.

금융의 혁신을 보자. 숱하게 외쳤건만 혁신을 수식어로 붙일 만한 금융은 없다. 그나마 혁신이 허용됐거나 혁신의 흉내를 낸 곳은 자본시장 정도다. 그 토대가 된 게 자본시장법(자본시장과 금융투자업에 관한 법률)이다.

지금은 당연한, 이 법의 역사는 20여년전에서 출발한다. 20세기말 '금융통합법' 아이디어가 나올 시점엔 반대가 적잖았다. '실현 불가능하다' '무의미하다' 등의 반론이 쏟아졌다.

'금융통합법'이란 원대한 꿈은 축소됐다. 자본시장에 국한된, 소통합을 만드는 데 만족했다. 그 작업만 해도 방대했다. 조문만 449개조항에 달할 정도였다. 증권법, 간접투자상품법 등을 통합하며 기능별로 분류했다.

통합의 핵심은 미래를 염두에 둔 '포괄주의'였다. 다가오지 않은 미래, 아직 등장하지 않았지만 불현 듯 등장할 수 있는 다양한 상품 등을 고려한 씨앗 뿌리기 작업이었다. PEF의 출현과 성장 등은 열매의 하나다. 자본시장에서 금융투자 상품이 끊임없이 개발되고 있는 것도 포괄주의 정신을 토대로 한 이 법 덕분이다.

물론 '다양한' 상품보다 '획일적' 상품이 많은 게 현실이다. 혁신의 발목을 잡는 규제가 가득한 것도 부인할 수 없다. 이는 법 취지를 퇴색시킨 운용상 보신주의(補身主義)의 산물이다. 그렇다고 보신주의 탓만 할 수 없다. 혁신과 보신의 갈림길에서 후자를 택하게 하는 결정적 제도가 존재하는 한.

감사원의 이른바 '정책 감사'는 멋진 표현같지만 실제 의미는 '사후적 통제'다. 그 안에 담긴 위험성은 치명적이다. 혁신의 노력을 사후적 잣대로 재단한다면 보신 외에 갈 길이 없다. 모법 답안을 만들고 그 안에서 벗어나지 않으면 된다.

혁신의 토대인 포괄주의는 정책 감사의 먹잇감에 불과하다. 사후적 통제의 고약함은 새로운 발제를 제약하는 데 있다. 하나의 작업이 마무리되면 '넥스트 스텝'이 기본인데 금융 혁신의 제도적 정비는 자본시장법 이후 뚝 끊겼다.

예컨대 은행 관련 법통합 작업은 시도조차 없었다. 오히려 인터넷은행특별법 등의 우회로만 택했다. 개별법의 신설은 규제 차익을 만든다. 시중은행과 저축은행, 카카오뱅크 등 비슷한 선수들은 각각 은행법, 상호저축은행법, 인터넷은행법 등에 따라 상이한 대우를 받는다.

보험과 공제, 새마을금고와 우체국 예금·보험 등도 '같지만 다르지 않은' 행위를 하며 각 다른 법에 따라 '때론 다르고 때론 같은' 규제를 받는다.

행위 규제, 기능 규제 등의 이슈가 불거지면 우왕좌왕이다. 별도의 법으로 대응한다. 법 통합은커녕 금융지주회사법, 금융회사 지배구조에 관한 법 등이 신설된다. 그렇게 칸막이만 더 높아지고 쌓여간다.

은행·증권·보험 등을 아우르는 작업이 없다보니 P2P, 핀테크, 테크핀, 가상자산 등 당연한 금융의 현실을 접할 때면 '멘붕'에 빠진다. 금융의 정체(停滯), 혁신의 부재는 전적으로 금융당국의 책임이다. 금

융정책은 밑그림을 그리는 작업, 씨앗을 뿌리는 작업이다. 그런 면에서 지난 20년간 우린 금융정책을 접하지 못했다. 현안 대응은 해야만 하는 '과제'지만 그게 금융정책의 전부일 수는 없다. 가계대출 관리 등을 금융정책이 아닌 부동산 정책의 한 수단으로 전락(?)시킨 것도 금융당국의 책임이다.

2000년대 초반 금융정책 르네상스 시기를 보낸 인물들이 대통령직 인수위원회에 대거 포진했다. 공매도, 물적분할, LTV(담보인정비율) 규제 등이 아니라 금융시장 비전을 주문하고 논의하며 새 정부를 준비했으면 한다. 학교 숙제 몇 개 해 놓고 공부한 것으로 착각하는 학생이 되지 않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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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재범 편집국장

박재범 기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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