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화해할 때다

이제는 화해할 때다

오동희 기자
2024.12.18 05:51

[오동희의 사견(思見)]LG 모자의 천륜을 이어준 상남 구자경 명예회장 5주기를 맞아

1999년 8월 상남 구자경 명예회장(왼쪽)과 화담 구본무 LG 선대 회장이 천안의 농장에서 담소를 나누고 있는 모습./사진제공=LG
1999년 8월 상남 구자경 명예회장(왼쪽)과 화담 구본무 LG 선대 회장이 천안의 농장에서 담소를 나누고 있는 모습./사진제공=LG

지난 17일 서울서부지방법원에서는 고 구본무 LG선대 회장의 부인인 김영식 여사가 아들인 구광모 LG 회장을 상대로 제기한 '상속회복청구 소송'의 변론준비기일이 비공개로 진행됐다. 2023년 2월 28일 소송을 제기한 지 이날로 659일째다. 이날 재판도 채 10분도 되지 않아 끝났다. 민사소송법(제199조)에서는 소가 제기된 날로부터 5개월 이내에 선고하도록 정해놨으나 무용지물이다.

2024년 사법연감을 보면 민사 합의부의 1심 선고 평균기간이 약 473일인데 LG상속 소송은 이보다도 40% 가량 더 시간이 걸렸고 여전히 진행형이다. 원고 측 증인 1명의 신문 외에 아직 제대로 된 재판도 못했는데 또 해를 넘기게 됐다.

2년 동안 '변론준비기일' 여섯차례에 변론기일은 두차례밖에 열지 못한 '완행 재판'이다. 올초엔 법원 인사로 재판장이 교체되면서 새 재판부가 다시 사건기록을 검토하느라 재판은 또 늘어졌다. 이번 상속소송은 가족 내 다툼이지만 장기화되면서 LG라는 기업의 경영이나 브랜드 가치에 적잖은 영향을 주고 있다. 불화의 장기화는 모두에게 상처의 깊이만 더할 뿐이다.

가족 불화의 장기화 속에 지난 14일은 LG그룹의 2대 회장이었던 상남(上南) 구자경 명예회장의 5주기 추도식이 조용히 열렸다. 상남은 구광모 회장이나 소송당사자인 구연경 LG복지재단 대표와 구연수씨의 할아버지다. 탄핵으로 떠들썩했던 이날, 경기도 이천 LG인화원 인근 LG가족추모공원에는 상남을 기리기 위해 LG가(家) 가족들이 모였지만 아직 해결되지 못한 상속재판으로 분위기는 무거웠던 것으로 전해진다.

유난히 가족 구성원이 많았던 LG는 재산을 두고 서로 다투지 않게 하기 위해 나름의 장자승계 '룰(Rule)'을 가풍으로 이어와 지난해 소송이 있기 전까지 75년간 안정적으로 유지돼왔다. 이는 LG 창업자인 연암(蓮庵) 구인회 회장에 이어 2대인 구 명예회장, 3대인 화담(和談) 구본무 선대 회장까지의 전통이었다.

특히 상남은 1970년부터 25년간 창업보다 힘든 수성에 성공하고, 70세에 국내 대기업으로는 처음으로 무고(無故: 아무런 사고나 이유가 없는) 승계를 통해 가족간 갈등 없이 경영권을 넘긴 모범사례를 만들었다. 통상 갑작스러운 선대 회장의 유고로 형제나 남매간 경영권 분쟁을 벌이는 게 다반사였던 한국 재계에선 보기 드문 일이었다.

파트너십도 마찬가지였다. LG와 GS가 57년 공동경영 후 '아름다운 이별'로 불렸던 계열분리에 성공한 데는 상남의 역할이 컸다. '욕심이 화를 부른다'며 상남은 계열분리 과정에서의 잡음이 나올라치면 "손해보더라도 양보하라"고 했다. LG 그룹이 다른 기업들과 달리 소탈한 이미지와 '인화'의 상징으로 불렸던 것은 상남의 공이었다.

어린 아들을 잃은 김영식 여사와 어린 나이에 어머니를 잃은 구광모 회장을 '모자의 천륜'으로 이은 것도 상남이다. 장손을 잃은 후 그 다음 큰 손자인 구광모 회장을 장남의 양자로 입적해 LG 가족을 묶는 실타래이자 중심 축으로 삼도록 한 게 상남의 뜻이었고, 그 뜻을 아들인 화담이 받든 것이다.

아들을 먼저 보내는 참척지변의 아픔을 지닌 화담과 마찬가지로 그 자신도 아들을 1년여 먼저 앞세웠던 상남이 떠난지 5년. 지금 LG에 필요한 것은 서로를 향한 양보와 화해다. 상남과 화담이 생전에 바랐던 것도 다름 아닌 화합이었다. 가정 내 화합은 곧 기업의 안정으로 이어진다. 반대로 가족 간 갈등이 계속된다면 이는 LG라는 기업의 경영 안정성을 위협하는 위험 요소로 작용할 것이다.

어머니와 아들이 서로 조금씩 양보해 소송을 취하하고 손을 맞잡을 때 상남과 화담이 꿈꾸던 '인화'의 정신은 다시금 LG를 밝힐 것이다. 상남의 무욕(無慾)을 기억하고 화해의 길을 서둘러야 한다. 그것이 LG를 사랑했던 상남과 화담의 뜻을 잇는 길이며 LG의 미래를 위한 걸음이다.

오동희 산업1부 선임기자(국장대우)
오동희 산업1부 선임기자(국장대우)

<저작권자 © ‘돈이 보이는 리얼타임 뉴스’ 머니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AI학습 이용 금지>

관련 기사

오동희 기자

'기자의 생명은 현장에 있다' 머니투데이 산업1부 선임기자(국장대우)입니다. 추천도서 John Rawls의 'A Theory of Justice'

공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