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고(上告), 하지 않을 용기

상고(上告), 하지 않을 용기

오동희 기자
2025.02.07 05:30

[오동희의 사견(思見)]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 모습. 2025.01.27/사진=뉴시스 제공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 모습. 2025.01.27/사진=뉴시스 제공

삼성물산 합병 관련 항소심에서도 검찰이 공소를 제기한 19개 혐의 모두에 대해 무죄가 선고됨에 따라, 대한민국 대표 기업인 삼성을 둘러싼 사법 리스크가 3010여 일 만에 큰 틀에서 마무리됐다. 그러나 검찰이 오는 10일까지 이 사건을 대법원에 상고할지 여부를 두고 고심하면서, 삼성과 재계는 긴장하고 있다.

정치권에서도 관련 반응이 나왔다. 지난 5일, 박지원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1심에 이어 2심에서도 이재용 회장의 무죄 선고는 침체된 우리에게 (중략) 희망을 안겨준다"며 "검찰이 신중한 판단으로 상고를 하지 말아야 한다"고 말했다. 6일에는 검사 시절 이재용 회장을 기소했던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이 기자들의 질문에 "사법부의 판단을 존중하며 (중략) 공소 제기자로서 국민께 사과드린다"고 밝혔다. 야당 중진 의원이나 기소 당사자였던 당국자의 이러한 발언은 이례적이다.

이 사건의 기소 초기부터 검찰 수사심의위원회는 수사 중단 및 불기소를 권고했으나, 당시 검찰은 이례적으로 수심위의 권고를 무시하고 기소를 강행했다.

경제개혁연대 등 일부 단체는 "재판부가 실체적 진실을 외면했다"며 검찰이 상고해야 한다는 성명을 발표하기도 했다. 이 단체의 주장은 논리적으로 그럴듯해 보이지만, 추정과 확증 편향에 기반해 법률(자본시장법)에 맞지 않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다. 예를 들어, 합병 비율을 조작했다거나 이익을 부풀리는 분식회계를 했다는 주장인데, 재판 과정을 장기간 지켜본 입장에서 보면 증거에 기반하지 않은 주장이라는 점이 드러난다.

1심에 이어 2심에서도 검찰의 치밀한 공세에 맞서 변호인단은 검찰이 제시한 증거를 하나씩 탄핵해 나갔다. 대체적인 흐름은 이렇다.

"검사님이 인용하신 그다음 줄을 보시면..." 혹은 "검사님이 증거로 제출하신 그 앞부분에..."라는 반박이 나오면, 검찰 측 주장이 또 다른 증거에 의해 반박되곤 했다.

우리 형사사법 체계는 증거주의를 따른다. 증거를 통해서만 사실관계를 판단하는 것이다. 1·2심 과정에서 피고인 측은 "검찰이 확보한 증거가 선별 과정을 거치지 않은 위법 수집 증거이므로 재판에서 사용하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했으나, 재판부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대신, 재판이 끝난 후 판결 선고 시 위법 여부를 판단하겠다는 입장을 유지했다.

2심 재판부 역시 마찬가지였다. 위법 증거 여부를 떠나, 검찰이 제출한 증거를 바탕으로 사실관계를 따졌으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검찰이 입증에 실패했다고 판단했다. 즉, 재판부는 '위법하게 수집한 증거' 여부를 떠나 검찰이 혐의 입증에 실패했기 때문에 19개 혐의 전부 무죄 판결을 내렸다. 검찰이 제시한 증거가 위법했기 때문에 무죄가 나온 것이 아니라, 그 증거를 고려하더라도 무죄라는 뜻이다.

검찰이 항소심에서 제출한 1360쪽 분량의 항소이유서와 2000여 건의 추가 증거 역시 판결을 뒤집는 데 소용이 없었다. 삼성물산 합병 재판은 기업의 경영 활동을 명확하지 않은 법적 잣대로 재단하면서, '양자역학'만큼 복잡한 논리가 얽힌 사건이었다. 삼성바이오로직스 분식 논란에서는 주위적 공소사실로 '공동경영'을 주장하면서도, 예비적 공소사실로 '단독경영'을 추가해 상반된 논리를 폈지만, 재판부를 설득하는 데 실패했다.

1·2심에서 전부 무죄가 선고된 상황에서 이제 공은 검찰로 넘어갔다. 이복현 원장조차 "제도적 보완이 필요하다"며 사과한 상황에서, 또다시 이재용 회장과 삼성에 사법적 족쇄를 채우는 것이 옳은지 따져봐야 한다. 검찰청법에 따르면 검사는 국민 전체에 대한 봉사자로서 헌법과 법률에 따라 국민의 인권을 보호하고 적법 절차를 준수해야 한다.

검찰이 상고하지 않는다면 "삼성을 봐준 것 아니냐"는 비판을 받을 수 있다. 그러나 기계적으로 상고하는 것이 곧 책임을 다하는 행위는 아니다. 판결문을 곱씹어 보고 오히려 비판을 감내하더라도, 잘못된 것은 바로잡는 용기가 필요하다. 검찰에 기소권을 독점하도록 권능을 부여한 이유다.

고대 중국 철학자 장자의 무위(無爲) 사상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할 수 있음에도 하지 않는 것'이다. 검찰이 상고할 수 있는 권능을 가졌지만 하지 않는 것, 이것이 진정한 용기다.

오동희 산업1부 선임기자
오동희 산업1부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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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동희 기자

'기자의 생명은 현장에 있다' 머니투데이 산업1부 선임기자(국장대우)입니다. 추천도서 John Rawls의 'A Theory of Justi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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