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300]朴 대통령 '거부권' 시사…3권분립 대논쟁…정치역학 지각변동 불가피

박근혜 대통령이 정부 시행령에 대한 국회의 수정·변경 권한을 강화하는 내용의 국회법 개정안을 "받아들일 수 없다"고 거부권 행사를 시사하며 '위헌 논란'에 뛰어들었다. 개정안의 국회통과를 주도한 새누리당 유승민 원내대표에 대한 친박계(박근혜계)의 집중포화가 쏟아지는 등 당청 갈등이 전면전으로 확산되고 있고, 야당은 "입법부와의 전쟁 선포"라며 강력 반발했다.
세월호법 시행령 개정문제로 촉발된 이번 사안이 입법부와 행정부간 본질적인 3권 분립 문제에 대한 정치권의 대논쟁으로 확대되고 있다. 결과에 따라서는 입법부와 행정부, 당청간, 그리고 여야간 정치역학 관계에도 큰 변화가 예상된다. 단기적이고 정파적인 접근보다 냉정하고 실무적으로 3권 분립의 원칙을 재점검하는 계기가 돼야 한다는 지적이다.
박 대통령은 1일 오전 청와대에서 수석비서관회의를 주재하고 "정부의 시행령까지 국회가 번번이 수정을 요구하게 되면 국정은 결과적으로 마비상태가 되고 정부는 무기력화 될 것"이라며 "이번 국회법 개정안은 정부로서는 받아들일 수 없다"고 수용불가 입장을 분명히 했다.
박 대통령은 "정부의 정책 추진은 악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고, 결국 그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들에게, 우리 경제에 돌아가게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아울러 "이번 공무원연금법안 처리 과정에서 공무원연금과 관계없는 세월호특별법 시행령 문제를 연계시켜서 위헌 논란을 가져오는 국회법까지 개정했는데 이것은 정부의 기능이 마비될 우려가 있어서 걱정이 크다"고 말했다.
박 대통령은 특히 "가뜩이나 국회에 상정된 각종 민생법안 조차 정치적 사유로 통과가 되지 않아서 경제 살리기에 발목이 잡혀있고 국가와 미래세대를 위한 공무원연금 개혁조차 전혀 관련도 없는 각종 사안들과 연계시켜서 모든 것에 제동이 걸리고 있는 것이 지금 우리의 정치 현실"이라며 상관 관계가 전혀 없는 공무원연금법과 국회법 개정안을 연계시킨 정치권을 강도 높게 비판했다.
박 대통령은 "과거 국회에서도 이번 개정안과 동일한 내용의 국회법 개정에 대해 위헌 소지가 높다는 이유로 통과되지 않은 전례가 있는데, 이것은 국회 스스로가 이번 개정안이 위헌의 소지가 높다는 점을 인식했던 것"이라고 지적했다.
지난달 1일 '과잉 행정입법 통제시스템 강화'를 포함한 국회 운영제도 개선 방안을 논의하기 위해 열렸던 국회 운영위원회 소위에서 국회의 행정입법 개정요구는 위헌이라는 의견이 제시됐던 점을 언급한 것이다. 그런데 새로운 야당 원내 지도부가 구성된 후 이뤄진 공무원연금개혁 협상 과정에서 여야 원내지도부가 전격적으로 국회법 개정안에 합의했다는 것. 이어 같은 달 29일 운영위 소위에서 일부 여당 의원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통과된 개정안은 '정치적 타협'의 산물에 불과하다는 점을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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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국회 사무처와 법제실은 이날 보도자료를 내고 "국회의 행정입법에 대한 수정·변경 요구 권한이 남용될 가능성은 적고, 국회가 수정·변경을 요구하는 것과 대법원의 심사권이 충돌하지 않는다"며 박 대통령의 위헌 발언을 반박했다.
정의화 국회의장도 지난해 11월 국회 상임위원장 연석회의를 주재하면서 "법률이 헌법 위에 있을 수 없듯 시행령이 법률 위에 있을 수 없다"며 현행 행정입법의 문제점을 지적한 것으로 확인됐다.
법제처도 지난해 8월 한국법제연구원에 의뢰해 국토·물류 등 법령 335개의 위헌 여부를 분석했고, 이 중 위헌 소지가 지적된 시행령도 다수 포함된 것으로 나타났다.
위헌 가능성을 염두해 둔 박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 시사 발언에 새정치민주연합 문재인 대표는 "시행령이 법률 취지에 위배된다면 국회가 수정을 요구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권한"이라며 "대통령과 청와대의 태도가 좀 심하다"고 강력 비판했다.
새누리당은 국회법 개정안 통과를 계기로 친박계와 비박계 지도부간 갈등이 전면전으로 확산되는 분위기다. 이날 열린 최고위원 회의에서 서청원·김태호·이인제·이정현 최고위원은 국회법 개정안에 합의한 유 원내대표에게 맹공을 퍼부었다.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는 "대통령의 뜻과 당의 뜻이 다를 수 없다"며 당·청 갈등 및 당 내분 봉합에 나섰지만, 유 원내대표는 국회법 개정안에 대해 "강제성이 없다"고 청와대에 대한 불만을 노골적으로 나타내고 있어 당청간 힘겨루기 양상이 당분간 지속될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