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정→안기부→국정원→다음은…정보기관 이름, 왜 바꿨나

중정→안기부→국정원→다음은…정보기관 이름, 왜 바꿨나

변휘 기자
2020.07.30 15:08
국가정보원 GI 변천사/사진=국가정보원 홈페이지
국가정보원 GI 변천사/사진=국가정보원 홈페이지

당정청이 국가정보원 명칭을 '대외안보정보원'으로 바꾸기로 했다. 직무를 해외 정보로 명확히 하는 의지를 담아 '대외'와 '안보'를 명칭에 새겨 넣었다. 1961년 조직의 태동 후 네 번째 이름인데, 각각의 명칭에는 당대 요구된 조직 성격의 변화 목표가 담겼다.

조정식 민주당 정책위의장은 30일 오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당정청 협의회 후 브리핑에서 "국가정보원을 대외안보정보원으로 개칭한다"고 밝혔다.

직무 범위에서 국내 정보와 대공 수사권이 삭제되고, 내·외부 통제를 강화하며 국내 정치 참여 등 불법 행위 시 처벌을 강화하는 방안이 마련됐다. 대공 수사와 국내 정보 수집 등 역할은 경찰로 넘기면서 정보 방첩기관으로서 새로운 위상 변화를 분명히 했다.

조직의 출발은 1961년 5·16 쿠데타 직후인 6월 설립된 '중앙정보부'(중정)다. 반혁명 세력과 간첩 색출을 비롯한 국가 안보 관련 정보활동을 위해 설립됐다. 미국 CIA(중앙정보국)와 연방수사국(FBI) 기능을 한데 갖춰 군사정권 시절엔 가장 사실상 막강한 영향력을 가진 정부 기관으로 군림했다.

1965년 김종필 중앙정보부장이 당시 일본 오히라 마사요시 외무상과 비밀 접촉해 '한일청구권협정'을 체결하고, 1972년에는 이후락 중앙정보부장이 방북해 김일성을 면담한 뒤 '7·4남북공동성명'을 이끌어내는 등 현대사의 굵직한 장면마다 주도적 역할을 했다. 그러나 반독재 세력 탄압으로 군사정권의 독재 체제 유지에 앞장서며 부정적인 이미지도 상당했다.

첫 명칭 변경은 김재규 중앙정보부장이 박정희 전 대통령을 저격한 10·26 사건이 계기가 됐다. 사태의 여파로 중앙정보부 물갈이가 불가피했고, 12·12 쿠데타로 권력을 잡은 전두환 정권은 '박정희의 그림자를 지우는' 차원에서 1981년 1월 명칭을 '국가안전기획부'(안기부)로 명칭을 바꿨다.

국가정보원. /사진제공=뉴스1
국가정보원. /사진제공=뉴스1

기능과 역할은 중정과 큰 차이가 없었다. 더욱이 전두환·노태우 정권 기간 중에는 국내 정치 개입과 반정부 세력 탄압 등 과거 중정 시절의 부정적 활동이 그대로 이어졌다. 현재까지 정보기관을 대하는 국민적 감정이 그리 탐탁지 않은 이유다. 첫 문민정부로 불리는 김영삼 대통령 취임 후 안기부 권한을 축소했지만, 탈법적 행동을 완전히 청산하진 못했다.

1998년 민주화 이후 최초 평화적 정권교체에 성공한 김대중 전 대통령은 평생 중정·안기부의 사찰과 감시, 위협에 시달려왔던 사람이다. 이에 김 전 대통령은 1999년 1월 안기부 명칭을 국가정보원(국정원)으로 바꾸고, 국내 정치 개입을 금지하는 제도적 장치를 보완했다.

특히 이때는 조직 출범 이래 단 한 번도 바뀌지 않았던 '음지에서 일하고 양지를 지향한다'는 훈령을 '정보는 국력이다'로 고쳐 화제가 됐다. 이후로는 2008년 '자유와 진리를 향한 무명의 헌신'으로, 2016년에는 '소리없는 헌신, 오직 대한민국 수호와 영광을 위하여'로 다시 변경했다.

그럼에도 군사정권 아래서나 벌일 법한 불법 도청, 댓글 부대 등 여론 조작, 민간인 불법사찰, 간첩 조작, 특수활동비 청와대 상납 사건 등 국정원의 탈법 행위는 여야를 가리지 않고 끊임없이 이어졌다. 이후 문재인 정권은 출범 후 국정원 개혁 TF를 운영하며 조직 혁신 작업을 벌였고, 이날 대외안보정보원 명칭 변경을 계기로 권한도 많이 축소될 전망이다. 관련 법 개정안은 연내 통과를 목표로 국회 정보위원회 여당 간사인 김병기 의원이 발의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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