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T초대석
혁신, 도전, 소통, 전문성으로 대한민국 각계 리더들의 성장과 변화를 조명합니다. 과학, 금융, 교육, 공공 등 다양한 분야의 인물들이 전하는 경험과 비전, 그리고 사회에 미치는 긍정적 영향력을 소개합니다.
혁신, 도전, 소통, 전문성으로 대한민국 각계 리더들의 성장과 변화를 조명합니다. 과학, 금융, 교육, 공공 등 다양한 분야의 인물들이 전하는 경험과 비전, 그리고 사회에 미치는 긍정적 영향력을 소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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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용주 초록마을 사장은 대상그룹에서 입지전적인 인물로 통한다. 1990년 대상 전신인 미원에 평사원으로 입사해 2006년 그룹 지주회사인 대상홀딩스 대표이사에 선임됐다. 당시 나이가 만 43세. 대다수 동료가 부장을 맡고 있을 때 그룹 지주회사 대표이사에 발탁된 것이다. 박 사장의 경영철학은 '우문현답'으로 정리된다. '우리들의 문제는 현장에 답이 있다'는 뜻의 '우문현답' 철학 실천을 위해 늘 현장을 찾아 소통과 해결책을 찾는다. 때문에 말쑥한 양복보다는 현장에서 일하기 좋은 점퍼 차림을 선호한다. 초록마을로 자리를 옮긴 것은 2013년3월. 대상홀딩스 대표를 7년 지낸 뒤 임창욱 대상그룹 회장의 '특명'을 받고 부임했다. 건강에 대한 관심 증가와 안전한 먹거리 선호로 성장세인 유기농 식품을 대상그룹의 차세대 동력으로 발전시키는 데 박 사장이 적임자이기 때문이다. 박 사장은 '큰 그림'을 잘 그리는 경영인으로 평가된다. 그룹 성장동력 발굴에 탁월한 성과를 올렸다. 대상홀딩스 대표
틈새로만 여겨졌던 유기농 식품시장이 가파르게 성장하고 있다. 2005년 7600억 원에 불과했던 시장 규모가 지난해 3조5000억 원으로 10년 만에 5배 커졌다. 웰빙 바람이 불며 안전한 먹거리에 대한 관심이 높기 때문이다. '한 끼를 먹더라도 양보다 질'이라는 의식도 한몫했다. 농약과 화학비료를 쓰지 않는 유기농 식품은 신뢰가 생명이다. 생산과 제조, 유통, 소비에 이르기까지 정직과 신뢰가 뒷받침되지 않으면 존재 이유가 없다. 무엇을 믿어야 하는지, 누구를 믿어야 하는 지가 큰 과제다. '원 스트라이크 아웃'과 '가족 같은 상생'. 박용주 초록마을 대표이사(52·사진)는 품질과 신뢰, 상생을 강조한 이 말을 가슴에 품고 산다. [대담=송기용 산업2부장, 정리=오승주 기자, 사진=홍봉진기자] -초록마을 사장으로 부임한 이후 매출이 큰 폭 증가하는 등 성과가 좋다. ▶지난해 매출액과 영업이익이 1800억 원, 50억2500만원으로 잠정 집계됐다. 2013년 3월 초록마을을 맡은 이후
이르면 다음달부터 한국 인천과 중국 칭다오간 페리선을 활용한 특송물품의 해상 배송 체계가 도입된다. 현재 중국세관의 경우 비행기를 통한 통관때만 신속 통관 시스템이 가능하지만 앞으로는 배를 통한 배송 때도 통관 절차가 빨라진다. 역직구 시장의 30% 가량을 차지하고 있는 중국 시장을 겨냥한 것으로 풀이된다. 또 이달까지 여행자 면세한도 상향조정에 따른 홍보·계도 절차를 진행하는 한편 검사 강화도 추진한다. 김낙회 관세청장은 머니투데이와 인터뷰에서 “급성장하고 있는 역직구 시장에 대한 지원 방안이 필요하다”며 이같이 밝혔다. 김 청장은 “배를 통해 가는 특송물품 통관이 신속하게 이뤄지면 비행기 배송과 시차가 하루밖에 나지 않고 비용은 30% 이상 저렴해진다”며 “전자상거래업체의 경쟁력 강화를 위한 물류비 절감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한중 자유무역협정(FTA)와 관련 “전국 30개 세관에 한중FTA 전담창구를 설치, 총 100명의 세관 전문가를 투입하고 모든 지원으로 원스톱으
이근면 인사혁신처장의 명함 뒷면에는 "이제는 사람, 입니다"라는 글귀가 적혀 있다. 사람을 단지 자원으로만 바라보면 안되며, 쉼과 여유를 가질 수 있도록 '애정'을 갖고 환경을 바꿔줘야 한다는 것. 일과 삶의 균형을 중시하는 인사관은 인사혁신처가 추진하는 '공무원 저축형 안식월제' 등에서 드러난다. 저축형 안식월제란, 남은 연차휴가를 모아 3~5년마다 한 번씩 쉴 수 있게 하는 제도다. 혁신처는 공무원들의 평균 연차휴가 사용률이 50%에도 미치지 못하자 잔여일수를 다음해로 이월할 수 있도록 복무규정을 개정키로 했다. 반면, 일할 때만큼은 높은 생산성이 중요하다. 이 처장은 "결혼한 다음 날 늦게 퇴근했더니 아내가 밥을 안 먹고 기다렸다"며 "그 때부터 업무에 집중하는 게 중요하단 걸 알게 됐고 이후 일찍 퇴근하는 걸로 유명해졌다"고 말했다. 삼성그룹 인사전문가 출신인 이 처장은 근무한 지 30년이 넘은 지금도 사람 한 명을 면접 볼 때 굉장히 신중하게 생각한다. 이 처장은 "후배들
“사람(공무원)은 하루아침에 바뀌기 쉽지 않아요. 손자 세대까지 길게 내다보고 혁신의 씨앗을 뿌리겠습니다.” 인사혁신처는 그간 존재했던 정부 부처 중 ‘혁신’이란 이름을 달은 첫 사례다. 그만큼 국민들은 세월호 참사 등 일련의 사태를 겪으며 공무원의 변화에 대한 열망이 강했다. 그런 기대와 부담을 동시에 안고 출범한지 지난달 26일로 100일이 됐다. 삼성그룹 30년 ‘인사통’ 출신인 이근면 인사혁신처장의 어깨는 그래서 더 무겁다. ‘관피아’라는 말을 들어야 할 만큼 전락한 공무원조직에 대한 혁신과 신뢰회복은 물론이고, ‘공무원연금개혁’이란 대수술까지 도맡게 됐다. 국민의 기대에 부응하면서도, 공무원 인사의 수장으로서 공무원 내부의 목소리에도 귀를 기울여야하는 자리다. 100일간 공직사회를 동분서주한 이 처장은 공무원들에 대한 ‘채찍’과 ‘당근’을 함께 준비했다. 자기계발과 목표가 부족하다고 쓴 소리를 하면서도 그런 공무원을 바꾸려면 시스템이 바뀌어야 한다며 성과·승진제도를 바꾸고
지난해 5월 재계에 깜짝 인사 소식이 전해졌다. 한화그룹이 남성우 전 삼성전자 IT솔루션 사업부장을 한화솔라원 사장 겸 이사회 의장으로 선임했다는 소식이었다. 삼성 출신이 다수 기업의 대표로 발탁되는 일은 여럿 있었지만 적어도 한화에서 임원이 아닌 사장으로 영입한 전례가 없었다. 태양광 사업이란 한화의 차세대 주력 사업이며 김승연 회장의 장남 김동관 실장이 몸담고 있다는 점에서 남 사장 영입이 갖는 의미는 매우 남달랐다. 한화가 태양광에 그룹의 내일을 걸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화는 국내 기업 중에서는 유일하게 잉곳에서부터 셀, 모듈까지 태양광 설비의 모든 것을 수직계열화 했다. 여기에 큐셀의 연구개발 능력까지 보태졌다. 그 자리가 갖는 무게감을 남 사장은 잘 알고 있다. 그래서 목표를 단순하지만 강렬하게 잡았다. 한화큐셀을 '세계 1등'으로 만드는 것이다. 그는 "2017년 세계 톱3, 2020년 세계 1위에 반드시 올라서겠다"며 강한 의욕을 보이고 있다. 남 사장은 삼성전자
잘 나간다는 국내 기업들이 경쟁적으로 태양광 발전산업에 뛰어들던 시절이 있었다. 유가가 오르고 저탄소 녹색성장을 표방하는 정권이 밀어주던 산업이었다. 불과 3~4년이 지난 지금, 정권이 바뀌고 유가는 하향 안정화되면서 태양광은 '한 때' 얘기가 돼버렸다. 신재생에너지 산업은 정말 한 물 갔을까. 남성우 한화큐셀 사장 생각은 다르다. "석유로 불 때서 전력 일으키는 비중이 얼마나 되겠어요. 태양광 시장은 곧 제자리 찾아갈 거에요" 지난해 5월 삼성전자에서 한화그룹에 합류한 남 사장. 반년만에 그는 태양광 예찬론자가 돼 있었다. 최근엔 매출에서나 점유율에서나 한화큐셀을 세계 1위 태양광업체로 키우겠다는 목표를 설정했다. 이를 통해 우리 국민에게 자부심을 주고 싶다는 게 남 사장의 꿈이다. 지난 10일 서울 장교동 집무실에서 남 사장을 만나 세계 1위 전략과 비전, 올해 목표 등을 들어봤다. -유가가 워낙 많이 떨어져서 태양광 산업이 잘 될 것인지 우려가 많습니다. ▶유가가 싸니 태양광에
임종룡 NH농협금융지주 회장은 스스로 자신에 대해 어떻게 생각할까. 한 문장으로 설명했다. ‘금융 행정을 하다가 현장으로 왔다’는 것이다. 임 회장은 행정고시 24회로 공직에 입문한 정통 관료 출신이다. 재정경제부 경제정책국장, 기획재정부 기획조정실장과 1차관을 거쳐 국무총리실장을 거치면서 거시경제 및 금융에 대한 해박한 지식과 풍부한 경험을 쌓았다. 여기에 온화하고 친화력 있는 성품까지 갖춰 농협금융 수장 적임자로 꼽혔다. 그는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2013년 6월 임 회장 취임 후 농협금융의 변화가 가시화했다. 우리투자증권 인수에 성공했고, 자산운용 부문을 강화하며 그룹의 포트폴리오를 재정비했다. 임 회장은 농협금융의 '공익적 기능'을 중시하면서도 조직에는 시장의 '경쟁 의식'을 주입시켰다. 4대 금융그룹 발돋움에 임직원들의 사기도 높아졌다. 덩치 크고 느린 곰이라고 폄하하던 시장은 농협금융의 확연히 달라진 모습을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있다. 임 회장은 일을 할 때는 치밀하고
"올해는 수익성 회복의 원년으로 삼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농협금융은 공익적 기능과 상업적 기능이 조화롭게 되는 금융회사 성격을 유지해 나갈 것 입니다." 임종룡 NH농협금융지주 회장은 머니투데이와의 인터뷰에서 '수익성'을 강조하면서 농협금융의 ‘사회적 역할’을 가장 많이 언급했다. NH투자증권을 성공적으로 출범시키며 명실상부한 '국내 4대 금융지주'로 자리 잡았지만 수익성 개선이 더 필요하다는 게 임 회장의 판단이다. 더불어 "시골 마을에도 금융서비스를 제공해야 하는 '사회적 인프라'를 갖추는 게 농협금융의 역할"이라고도 그는 강조했다. 최근 서울 서대문 집무실에서 임 회장을 만나 농협금융의 현안과 비전을 들어봤다. -취임 이후 1년 7개월 간 농협금융의 이미지를 많이 바꿔놓았다는 평가가 나오는데, 비결은. ▶농협금융은 외부에서 보이는 이미지와 다르게 여러 장점을 지닌 조직입니다. 취임 이후 직원들의 경쟁의식 확립과 함께 야성(野性)을 불러일으키는데 주력했습니다. 즉, 시장과
상법, 회사법, 금융법 등을 전공한 김화진 서울대 법학대학원 교수는 정책법률을 연구하는 국내 몇 안 되는 법학자 중 하나다. 북미에는 법경제학과 법정책학을 연구하는 학자들이 많지만 국내엔 판결해석 법학을 전공하는 학자들이 더 많다. 김 교수는 서울대 수학과에 진학했다 법학으로 진로를 바꾸고 독일 뮌헨대 법학부, 하버드대 로스쿨에서 수학했다. 미국 뉴욕주 변호사, 고려대 경영대학 겸임교수를 거쳐 현재 서울대 법학대학원 교수와 미시간대 로스쿨 해외 석좌교수를 맡고 있다. 대통령 자문기구인 국민경제자문회의 전문위원, 공정거래위원회 경쟁정책자문위원, 국민연금 의결권행사 전문위원회 위원 등으로도 활약했다. 현재는 금융투자협회 공익이사로 활동하는 등 금융투자업계와 인연도 깊다. 금융투자발전이나 금융규제와 관련한 토론회가 열리면 발표자로 참석해 업계와 당국에 조언을 아끼지 않는다. 법학대학원 교수라면 딱딱하고 엄격한 이미지가 떠오르지만 김 교수는 영화와 피아노 등 예술에도 조예가 깊다. 지난해엔
“과거 20년 동안 경제학자들이 가장 많이 연구한 주제가 있습니다. ‘은행 중심의 금융과 자본시장 중심의 금융 중 어느 쪽이 경제효율을 더 많이 발생시키느냐’는 것입니다. 결론은 자본시장 중심의 금융이 경제 성장을 더 촉진한다는 것인데 이는 이미 학계에서 정설로 자리잡았습니다.” 김화진 서울대 법학대학원 교수는 학계의 이 같은 연구 결과에도 불구하고 국내에서는 과도한 규제 등으로 자본시장 중심의 금융이 소외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가계의 자산형성과 기업 성장의 젖줄이 되는 자본시장이 위축되면서 한국 경제의 역동성과 활력도 떨어지고 있다는 진단이다. 자본시장 성장이 위축되다 보니 세계 무대에서 뛰는 금융회사도 탄생하지 못하고 있다. 김 교수는 “내수시장이 좁은 한국으로선 금융산업에서도 국제화는 선택이 아닌 운명”이라며 “문제는 서울이 국제화 측면에서 외딴섬처럼 고립돼 가고 있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서울과 부산 등 국내 금융도시가 홍콩이나 싱가포르는 물론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나
"서양의 옷 디자인이 우리보다 앞서 있다고 생각돼요? 고유한 한복의 소매 끝자락을 다른 색깔로 장식하는 거나 앞트임이 있는 투피스, 바지 등 서양의 것이라고 생각되는 의복의 특징이 우리 양식에도 이미 있었다는 걸 잘 모르죠." 나선화(66) 8대 문화재청장은 문화재청 문화위원으로 재직하던 시절, 덕수궁에서 패션쇼를 허가해달라는 샤넬 측의 요구를 받은 경험이 있다. 나 청장은 당시 한복은 물론 과거 고려, 신라시대 의복을 자세히 설명하면서 우리 복식에도 서양과 공통된 점이 많다는 점을 설명했다. 문화사대주의를 극복하는 일은 고유한 우리 문화를 이해하는 일부터 시작된다. 그리고 그 고유한 문화는 어려운 것이 아닌 일상생활에 깃들여있다는 게 나 청장의 생각이다. 2013년 12월 취임한 나 청장은 30여 년간 전국 곳곳의 발굴 지역을 누빈 '현장 전문가'로 통한다. 서울 출신으로 숙명여고와 이화여대 사학과를 졸업한 그는 1998년부터 이화여대 박물관에서 학예실장 등으로 35년간 재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