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T초대석
혁신, 도전, 소통, 전문성으로 대한민국 각계 리더들의 성장과 변화를 조명합니다. 과학, 금융, 교육, 공공 등 다양한 분야의 인물들이 전하는 경험과 비전, 그리고 사회에 미치는 긍정적 영향력을 소개합니다.
혁신, 도전, 소통, 전문성으로 대한민국 각계 리더들의 성장과 변화를 조명합니다. 과학, 금융, 교육, 공공 등 다양한 분야의 인물들이 전하는 경험과 비전, 그리고 사회에 미치는 긍정적 영향력을 소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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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이 부지런한 자에게 복이 있다" 1979년에 공직에 입문해 30여년을 공무원으로 살아온 정승 초대 식약처장은 이 말을 늘 마음속에 품고 살았다고 했다. 그리고 늘 사람들을 만나기 위해 뛰어다녔다. 그렇게 해서 얻은 별명이 '마당발'이다. "공무원은 국민이 행복할 수 있게 정책을 만드는 사람입니다. 그 정책이 세상에 도움이 될 때 공무원은 보람을 느끼게 되죠. 그런데 모든 정책을 결정하고 추진하는데 있어 여러 분야의 협조가 필요합니다. 조직내부, 정부부처, 시민단체, 학계, 정계, 언론, 국제단체 등 수많은 협조를 이뤄내야 정책이 성공한다고 생각한거죠." 그가 마당발이 된 또 다른 이유는 정확한 정책결정을 위해서라고 했다. "시장이 앞서가는데 정부가 한가한 소리나 하고 있으면 안되잖습니까. 각 분야가 빠르게 변화하고 있는데 끊임없이 연구하지 않는다면 올바른 정책이 나올 리 없죠. 주말을 이용해 업체, 소비자단체, 학계전문가들을 만나서 조언도 듣고 토론도 하고 현장을 직접 찾고 있습
"민물장어는 비늘이 없어요. 그래서 한곳에 모아놓고 양식을 하면 뒤엉켜서 상처가 나고 질병이 생깁니다. 이것을 막으려면 항생제를 쓸 수밖에 없죠. 결국 양식장어 몸속에 남은 항생제는 국민들이 먹게 되고요. 그렇다면 항생제 걱정 없이 국민들이 양식된 민물장어를 먹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청에서 처로 승격된 식약처를 어떻게 이끌어갈 것이냐"는 물음에 정승(55·사진)초대 식품의약품안전처장은 양식어장 얘기로 답을 풀어갔다. "제일 쉬운 방법은 장어에 항생물질이 남아있는지 검사하면 됩니다. 기준치 이하면 유통시키고, 기준치 이상이면 시장에서 격리하면 됩니다. 하지만 이것은 기본적인 안전대책일 뿐 근본적인 대책은 아닙니다." 이어 그가 말한 근본적인 대책은 이랬다. "양식을 할 때 항생제를 쓰지 않아도 되게 해주면 됩니다. 농림부에 근무할 때인데 한 연구자가 황토를 고열로 찐 다음 미세한 나노입자크기로 갈아서 양식장에 넣어 항생제 없이도 양식을 할 수 있는 기술을 개발하고 있다는
"사자가 초원의 풀까지 뜯어 먹으면 초식 동물들은 뭘 먹고 사나요?" 중소기업 정책을 총괄하는 한정화 중소기업청장은 지난 5일 오후 서울 여의도에서 가진 머니투데이와의 인터뷰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경제민주화의 필요성을 설명하는데 할애했다. 대기업 옥죄기가 아니라 대중소기업간 공정한 경쟁의 토대를 마련하는 경제민주화는 시대적 요구이며, 선택이 아닌 필수라는 것이 한 청장의 주장이다. 한마디로 대중소기업이 공존할 수 있는 기업생태계를 조성해야한다는 것이다. 한 청장은 이를 위해 국회에 계류 중인 공정거래위원회의 전속고발권 폐지와 일감 몰아주기 근절, 가맹점주 보호 등 경제민주화 법안들이 조속히 처리돼야한다고 덧붙였다. "비유적으로 말하면 현재의 시장 경쟁환경은 마치 대중소기업이 한 쪽으로 기울어져 있는 운동장에서 축구를 하고 있는 것과 같은 상황이다. 중소기업은 아무리 노력을 해도 대기업에 비해 골을 넣기가 휠씬 어렵다." 한 청장은 대기업의 무분별한 사업 확장에 대해서도 쓴소리를 쏟아냈
민복기 대표(52·사진)는 대학을 졸업하던 1986년 삼나스포츠(현 나이키스포츠코리아)에 입사해 실무를 익혔다. 이후 휠라코리아 창사때 합류해 브랜드 론칭부터 유통.영업.마케팅 등 업무를 도맡아하며 사업에 눈을 떴다. 2001년 EXR코리아를 설립해 현재까지 30년 가까이 스포츠 의류업계 밥만 먹은 대표 CEO다. '몸에 딱 달라붙는 블랙 트레이닝 재킷에 회색 수트 바지.' 서울 서초구 방배동 EXR코리아 본사 사장실에서 만난 민 대표는 패션기업 CEO답게 스포츠 의류와 정장을 믹스매치한 세련된 모습이었다. 비즈니스 미팅에는 깔끔한 정장 스타일을 즐긴다고. 사이클과 골프, 등산 등으로 다져진 군살없는 몸매와 짧은 헤어스타일은 말 한마디 흐리는 법 없이 시원시원한 그의 성격을 그대로 드러낸다. '한번 꽂히면 끝을 보는' 스타일답게 민 대표는 회사를 설립한 뒤 늦깍이로 공부를 다시 시작해 박사학위까지 받았다. 핀란드 헬싱키대에서 경영학 석사학위(디자인 경영)를, 중앙대에서 박사학위(의류
지난달 18일 서울 중구 수하동 페럼타워 4층 컨퍼런스홀에 민복기 EXR코리아 대표이사(52·사진)가 등장하자 운동복을 입은 200여명이 일제히 환호성을 쏟아냈다. 연예인도, 스포츠 선수도, 정치인도 아닌 기업인의 등장에 도심 속 오피스 타워가 들썩인 이유는 뭘까. 민 대표는 스포츠 업계 큰 손으로 통한다. 회사를 설립한 지난 2001년부터 지금까지 스포츠 마케팅을 중단한 적이 없다. 스타만 앞세운 반짝 마케팅이 아니라 해당 종목 발전을 위해 회사 수익의 일정 비율을 내놓는다. 국내에서 개념이 생소하던 시절부터 자동차 레이싱과 인연을 맺었고 얼마전부터는 대한사이클연맹도 후원하고 있다. 자체 스노우보드팀도 운영중이다. 이번엔 피트니스 댄스 스포츠다. 이날 민 대표는 전문 피트니스 강사팀인 '제프라'와 손잡고 'EXR 프로그래시브 댄스 트레이닝' 프로그램을 개발, 전국의 피트니스 센터 일반 회원들에게 전파할 것을 공식 선언했다. 전국적으로 피트니스 인구가 많지만 제대로된 후원이나 지원
최삼규 대한건설협회장(74)은 50년 이상을 건설산업 한 길을 걸어온 업계의 산증인이다. 종합건설사 이화공영의 대표이사이기도 한 그는 의외의 두 가지 스토리를 갖고 있다. 최 회장의 학창시절 꿈은 건설기업 경영이 아닌 약학도였다. 그의 인생이 바뀐 터닝포인트는 '가업'이었다. 자유당 정권 시절 건설업체를 경영한 선친이 국회의원에 출마해 낙선한 뒤 선친을 도우려고 중앙대 약대 졸업을 포기하고 경영일선에 뛰어든 게 계기였다. 최 회장은 부친이 창립한 '동지'라는 상호를 1971년 현재의 '이화공영'으로 바꾸고 본격적인 종합건설업체로 키워나가기 시작했다. 이화공영은 국내 건설업 등록 제53호 업체다. 이화공영이 주택사업을 하지 않는 것도 의외다. 최 회장은 이화공영을 경영하며 지난 반세기 동안 공공토목·학교·환경 등 공공시설, 공장·빌딩 등 업무시설, 연구시설 등 다양한 분야에서 시공경험을 축적해왔다, 최근에는 최첨단 제약시설 시공분야에서도 기술력을 인정받았다. 하지만 최 회장은
- 분리발주제 지방·중소업체 혜택없어…하자보수·안전관리도 구멍 - 경제민주화 원도급·하도급에만 초점…2차협력사까지 포함시켜야 - 내달 종료 취득세 감면기한 연장 등 주택경기 활성화 대책 필요 "정부가 건설공사를 공종별로 '분리발주'하는 이유로 원·하도급간 분쟁해결을 명분으로 내세우지만 정작 지방의 중소 일반건설업체들엔 혜택이 없어요. 지금은 하도급사로 분류돼 있는 전문건설업계뿐 아니라 중소 일반건설업체들의 고통을 덜어주는 육성방안이 필요합니다." 평소 과묵하기로 소문난 최삼규 대한건설협회장(73)은 작심이라도 한 듯 건설업계가 안고 있는 어려움을 쏟아냈다. 그는 우선 건설산업이 가야 할 경제민주화와 동반성장의 바람직한 방향에 대한 소신을 밝혔다. 특히 업계의 '뜨거운 감자'가 된 '분리발주' 도입과 '주계약자 공동도급제도' 확대를 두고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는 점을 강조했다. 최 회장은 종합과 전문 건설기업의 업역간 구분을 마치 대기업과 중소기업으로 나누는 것 자체가 중소기업
김명자 한국여성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 6대 회장은 평소 온화한 성품과 함께 꼼꼼한 업무처리로 잘 알려진 '외유내강'형 여성관료 출신이다. 특히 환경과 원전, 사회복지 정책 전반에 관해선 과학자다운 논리와 여성적인 시각을 동시에 녹인 접근법으로 '창의적 해결사'형 인물로 잘 알려져 있다. 김회장은 1960년대 초 경기여고 시절, 부친의 조언에 따라 자연과학자의 길을 걷게 됐다. 서울대 화학과 졸업 후 미국 버지니아대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1974년부터 숙명여대 화학과 교수로도 재직했다. 1999년 6월 환경부 장관 재임 시절, 가장 기억에 남는 일로 그는 '낙동강물관리종합대책'을 꼽았다. 낙동강 댐 건설에 반대하는 주민들을 설득하기 위해 평소 알고 지낸 문인들에게 글을 받아와 주민들 마음을 돌려놓은 일화는 당시 큰 화제가 됐다. 또 여성이 장관 업무를 수행하는 데 대해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는 우리 정치 풍토에 굴하지 않고 그는 환경부장관이 된 후 3년 8개월간 재임하면서 '헌정 사상 최
'경단(경력단절)의 심각성'. 올해 우리나라 나이로 일흔이 된 전직 여성장관으로부터 이 축약된 단어를 듣게 될 준 몰랐다. '경단'은 최근 들어 고급 여성 인력 활용에 대한 문제제기가 더욱 커지면서 자주 등장하고 있는 단어지만, 여성에 대한 편견이 더욱 심했던 시절을 겪어내고 21세기 행정부의 장관과 국회의원까지 역임했기에 다소 의외였다. 김명자 한국여성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이하 여성과총) 회장. 하지만 김 회장의 문제의식은 생각보다 컸다. "너무 자주 듣다보니 이젠 진부하기까지 하죠. 매 정권마다 업그레이드되는 정책과 제도로 여성인력들의 상흔을 치유하고자 했다면, 이젠 이 때문에 고통 받는 자들이 줄어야 정상인데 역으로 그 수는 더 늘어나고 있지 않나요. 놀라운 것은 제가 이십년 전에 번역을 하거나 논문을 쓰면서 담았던 주장이 지금도 여전히 되풀이되고 있다는 점이죠." 우리나라 여성과학기술인력 정규직 고용률은 10% 수준이다. 이는 현재 여성과학기술 인력활용에 뭔가 잘못된 게 있다
권동칠 트렉스타 대표이사(58·사진)가 신발과 처음 인연을 맺은 것은 우연이었다. 동아대학교 경제학과 야간과정을 어렵게 마친 늦깎이 대학생이 부산 지역 신문에 난 신입사원 채용공고를 보고 아무 생각없이 지원서를 낸 것이 '30년 신발 인생'으로 이어졌기 때문이다. 경북 예천 출신인 권 대표의 집안 형편은 매우 어려웠다. 대학 진학은 꿈도 못 꿀 정도였다. 8남매 중 맏이인 권 대표는 부산의 한 동사무소 공무원으로 일하며 동생들 학비를 챙겼다. 학업에 대한 의지가 강해 뒤늦게 야간대학에 진학해 열심히 공부했다. 권 대표가 이력서를 낸 곳은 '아식스' 운동화를 주문자상표부착방식(OEM)으로 생산하던 세원. 무역회사인 줄 알고 응시했다가 신발회사라는 사실을 알고 입사 여부를 고민했다고. 하지만 우연히 첫 단추를 꿴 신발회사는 그에게 필연이 됐다. 남들보다 1시간 일찍 출근해 해외 바이어가 주문한 제품 외에 또 다른 디자인을 적용한 샘플까지 만들었다. 회사로 나이키, 아디다스 등 세계 굴지
무겁고 딱딱한 통가죽 등산화 일색이던 1990년대초 시원한 메시 소재 초경량 등산화를 처음 선보인 기업이 있다. 이 회사는 세계 최초로 보아시스템(신발 끈이 아닌 와이어가 연결된 다이얼로 신발을 고정하는 시스템)을 트레킹화에 접목했다. 하루만에 맞춤형 신발을 주문·제작하는 디지털 시스템을 갖췄고, 단일 등산화 모델로만 100만켤레를 누적 판매하는 기록도 세웠다. 이달에는 손을 대지 않고 신고 벗을 수 있는 '핸즈프리' 신발도 내놓는다. 토종 등산화 전문기업으로 잘 알려진 '트렉스타' 얘기다. 이 회사는 1988년 하이텍, 살로몬 등 유명 아웃도어 브랜드에 신발을 공급하는 주문자상표부착생산(OEM)으로 출발했다. 하지만 회사 설립 수년만에 제조자설계생산(ODM)으로 전환을 거쳐 현재는 세계 60개국에 신발 기술과 제품을 수출하는 대한민국 대표 아웃도어 기업으로 성장했다. '세계 최초 개발', '세계 유일 기술' 등 수식어가 붙는 트렉스타 제품의 중심에는 천생 '신발맨' 권동칠 대표이
박한오 바이오니아 사장(51·사진)은 1992년 번민하는 과학도였다. 서울대 화학과를 졸업했고, 한국과학기술원(KAIST) 화학과에서 석·박사 과정을 마친 상태였다. 대학원 때는 국내에서 처음으로 DNA합성 기술을 개발해 내기도 했다. 그리고 미국 MIT로 박사후(포스트 닥터) 과정을 가기로 돼 있었다. 당시 화학분야 인재가 귀했던 탓에 미국에서 공부하고 오면 교수로 임용될 가능성이 높았다. 그러나 그는 MIT행을 포기했다. 그를 국내에 눌러 앉도록 한 건 '조국'이었다. 박 사장은 80학번이다. 군사정권이 들어섰고 대학캠퍼스는 민주화운동으로 열병을 앓던 때다. 박 사장은 자신의 대학시절에 대해 "과학자를 지망했지만 진지하게 사회에 대해 고민하던 시기"라고 말했다. 대학시절 역사를 연구하는 '언더서클'에 몸담기도 했다. "1980년대에 학생운동을 하다 고난을 겪은 친구들을 위해 우리 사회에 무언가를 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유학을 포기하고 연구를 할 때 꼭 필요한 유전자 진단시약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