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T초대석
혁신, 도전, 소통, 전문성으로 대한민국 각계 리더들의 성장과 변화를 조명합니다. 과학, 금융, 교육, 공공 등 다양한 분야의 인물들이 전하는 경험과 비전, 그리고 사회에 미치는 긍정적 영향력을 소개합니다.
혁신, 도전, 소통, 전문성으로 대한민국 각계 리더들의 성장과 변화를 조명합니다. 과학, 금융, 교육, 공공 등 다양한 분야의 인물들이 전하는 경험과 비전, 그리고 사회에 미치는 긍정적 영향력을 소개합니다.
총 1,446 건
2009년 내놓은 '바다와 대학'이란 저서가 홍승용 덕성여대 총장(64)의 인생을 잘 대변해 준다. 고려대 상대를 나온 그는 석사과정부터 해양경영학 분야를 파고들었다.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부설 해양연구소 해양정책 연구실장, 한국해양연구소 해양정책 연구부장 등을 거쳐 1997년에는 해양수산개발원 원장에 올랐다. 인생의 전환점은 1999년에 한 번 찾아왔다. 해양수산부 차관을 맡은 것. 해양경영 전문가로서 1980년대 초부터 15년간 각 분야 인사들과 함께 해양수산 관련 통합행정의 필요성을 역설해 온 결과 관료로 변신하게 됐다. 3년여 동안 차관직을 수행하며 노무현 전 대통령 등 정치인 장관 5명을 모셨다. 재임 중 국민들의 우려가 컸던 한중 어업협정, 한일 어업협정 개정을 성공적으로 이끌었다. 차관을 떠나서는 대학과 인연을 맺었다. 2002년부터 2008년까지 7년여 동안 인하대학교 총장을 맡은 것. 아시아의 MIT를 비전으로 CEO 대학총장을 표방했다. 취임 당시만 해
돌이켜 보면 도전의 연속이었다. 연구원에서 관료로, 관료에서 총장으로, 총장에서 사장으로…. 사장을 벗어던지니 다시 위원장이란 벽이 막아섰다. 뚫고 나아갈 것인가, 못 본 척 돌아갈 것인가. 2011년 6월, 고려대 기술지주회사 대표이사직을 막 그만둔 홍승용 전 해양수산부 차관은 대한민국 역사상 그 누구도 맡아본 적이 없는 '교육과학기술부 대학구조개혁위원회 위원장'이란 자리를 수락하기로 마음먹었다. 이렇다 할 보수도 없고, 욕만 많이 먹는 자리였다. 하지만 회피할 수 없었다. 해양수산부를 떠난 이후 인하대 총장 등 대학에 10여년 간 몸담으면서 대학 구조개혁의 필요성을 누구보다 절감해 온 터였다. 대학을 사랑하면서도 대학을 객관적으로 볼 수 있는 이가 맡아야 할 자리였다. 회의는 수시로, 치열하게 열렸다. 마침내 정부 재정지원 제한대학 43곳이 지정됐다. 이른바 부실대학들이다. 17곳은 학자금 대출까지 제한됐다. 하지만 학생모집에 문제가 없는, 전통과 명성이 있는 대학들도 일
뭐든지, 진짜 뭐든지 헷갈리거나 모를 때. 농담처럼 혹은 진지하게 우리는 "아무개 형님에게 물어봐"라는 답을 한 번쯤은 한다. 이 형님의 이름은 '네이버'다. 이런 질문은 어떨까. "우리나라에서 삼성, LG, SK 그리고 카카오 임원을 배출한 기업은?" 네이버에 물어봐도 안 나오는 정답은 바로 네이버서비스를 제공하는 NHN이다. 10여년 전, 대기업의 작은 사내벤처로 출범했으나 지금은 시가총액 규모 13조원, 매출 2조3000억여원, 영업이익 7000억여원에 달하는 기업으로 컸다. 자회사 및 해외인력까지 합하면 총 직원수는 6000여명이다. NHN 출신들을 '사회관계망'으로 그려보면 대기업과 신흥벤처기업 인맥의 중심이 된다고 해도 과장이 아니다. 21세기 대한민국이 통하는 곳 네이버. 하지만 비난도 많이 받는다. 대표적인 비난이 '벤처 죽이기'다. 언제부터일까. 왜일까. 도대체 NHN은 무엇인가. 지난 22일 NHN의 경기 분당사옥 '그린팩토리'에서 만난 김상헌 대표는 "'인터넷은
지금은 많이 얌전(?)해졌지만 신창연 여행박사 사장(50·사진)은 몇 년 전만해도 1년에 2∼3개월 정도는 다리가 부러져 있곤 했다고 한다. 속도위반을 했다하면 시속 200km를 넘기기 일쑤였고, 스키도 회전보다는 무한 질주인 활강이, 등산보다는 암벽타기가 제 맛이라고 믿는 그였다. "유고시를 대비해 사장 권한 대행을 둬야 하는 것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유독 위험한 스포츠만 즐겼다. 그는 2006년 실제로 사장 권한 대행을 세웠다. 권한 대행을 만든 이유는 또 있다. 여행박사만의 독특한 사장 재신임 투표제 때문이다. 신 사장 스스로가 회사 지분을 22% 보유한 최대주주지만 그는 매년 직원들에게 "내가 내년에도 사장을 계속 해도 되겠느냐"며 전 직원 워크샵(11월)에서 투표를 실시한다. 이 투표는 과반수이상 득표 방식이 아니라 재신임 찬성률이 70%를 넘어야 한다. 신 사장은 "만약 직원들이 내가 마음에 들지 않아 나를 재신임해주지 않으면 그때 누군가 사장을 대신해야 하는 것
신창연 여행박사 사장(50·사진)은 경북 문경 산동네에서 6남매 중에서 다섯째로 태어났다. 형제는 많고 가정형편이 어려워 중학교를 마친 뒤 고등학교에는 진학하지 못했다. 신 사장은 무작정 상경해 친구 집에 얹혀살며 닥치는 대로 일을 했다. 하지만 10대 후반인 그가 할 수 있었던 일은 구두닦이, 포장마차뿐이었다. 하루하루 힘들게 일했지만 생활은 여전히 궁핍했다. 20세가 되면서 대학에 진학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검정고시에 합격해 군 제대 후 경원대 관광경영학과를 다녔다. 졸업을 앞둔 1990년 아주관광여행사에 입사했지만, 직장 생활은 순탄치 않았다. 여행사들이 소비자가 원하지 않는 여행코스를 '패키지 상품'에 넣는 관행이 싫었다. 매번 패키지 상품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그는 어느 덧 회사에서 천덕꾸러기가 돼 있었다. 신 사장은 입사한 지 2년이 채 안돼 아주관광 계열사인 한국고속해운으로 좌천됐다. 하지만 그곳에서 귀한 자산을 얻었다. 한국고속해운은 부산에서 출발하는 일본 뱃길여행을
“강의 이름과 강의 내용이 너무 달라 당황스러웠습니다.” 페이스 북을 통해 김형률 교수의 수업을 듣는 학생들에게 평가를 부탁했다. 새 학기가 시작된 지 일주일 밖에 되지 않아 ‘과연 학생들이 평가를 제대로 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앞섰지만 밑져야 본전이지 않은가. 의외로 반응은 몇 가지로 요약됐다. ‘당황스럽다’와 ‘신선하다’는 의견이 가장 많았고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을 것 같다’는 기대감을 나타낸 학생도 상당수였다. 그는 숙명여대에서 20년 가까이 역사를 가르치고 있다. 그런데 첫 수업시간부터 다양한 멀티미디어가 등장한다. 코세라(www.coursera.org) 같은 해외 석학들의 강의를 무료로 들을 수 있는 사이트에 쉴 새 없이 접속해 참고할만한 강의 목록을 알려준다.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방식으로 수업이 진행되다 보니 학생들이 당황하는 것은 당연한 결과다. 그는 3학점 강의의 경우 1주일에 2시간은 직접 수업을 하고 나머지 1시간은 같은 분야를 연구하는 세계 석학들의 강
“지금 미래창조과학부 때문에 많은 논란이 제기되고 있지만 정작 중요한 것은 빠져 있는 것 같습니다. 창조는 결국 사람이 하는 것이고 싱크 탱크가 아니라 싱크 탱크가 나올 수 있는 인프라를 만드는 것이 미래창조부의 핵심입니다.” 지난 7일 만난 김형률(56) 숙명여대 역사문화학과 교수의 말이다. 교육 현장 최일선에서 20년 가까이 학생들을 가르쳐온 터라 말의 무게감이 남다르다. 그럼 싱크 탱크가 나올 수 있는 인프라는 어떤 것을 말하는 것일까. 김 교수는 “지식을 축적하고 유통하며, 토론하고 재생산할 수 있는 허브를 하루 빨리 구축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미국의 하버드나 MIT, 프린스턴, 영국의 옥스퍼드와 같은 세계적 대학들이 앞 다퉈 무료온라인 공개강좌(무크, Massive Open Online Course)를 개설하고 있는 움직임에 주목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코세라(Coursera)나 에덱스(edX), 유다시티(udacity) 같은 온라인 무료 강의를 통해 전 세계에서 하루
"중산층 육성이 뜬 구름 잡는 화두가 아닙니다. 주식 투자자들이 모두 중산층입니다. 자본시장이 튼튼해지는 것이 든든한 중산층 확보를 위한 첩경일 수밖에 없습니다." 지난 19일 서울 여의도 사무실에서 만난 김형태 자본시장연구원장(51·사진)은 자본시장을 주식을 매매하는 곳으로 보는 시각에 섭섭함을 내비쳤다. 새 정부가 화두로 제시한 중소기업 활성화나 중산층 육성 등의 해법을 제시해 줄 자본시장이 홀대를 받고 있는 것에 대한 안타까움이다. 금융투자업계는 거래대금 급감으로 유례없는 혹한기를 맞고 있다. 벤처기업 전용 주식시장인 코넥스(KONEX) 신설, 대형 투자은행(IB) 육성 등을 골자로 한 자본시장법 개정안은 번번이 뒷전으로 밀렸다. 다행히 새 정부가 이를 국정 과제로 채택해 기대감은 가질 수 있게 됐다. - 자본시장법 개정안이 이명박 정부에선 국회의 벽을 넘지 못했습니다.(김 원장을 만난 19일 국회 정무위 법안심사소위는 개정안을 심의조차 못해 다음 임시국회에서 다시 다뤄지게 됐
증권사, 금융투자협회 및 한국거래소 등 유관기관의 출자로 설립된 자본시장연구원은 현재 박사급 인력만 30명이 넘는다. 지난 97년 증권연구원으로 출범했을 때에 비하면 배 이상 늘었다. 연구의 지평도 크게 확대됐다. 지난 2009년 2월 자본시장법 시행에 맞춰 자본시장연구원으로 확대·개편되면서 외환, 파생, 금융제도 등에 대한 연구가 추가됐다. 특히 연구원은 자본시장에 관한 선제적인 연구를 진행해 자본시장법 제정에 힘을 보탰다. 우수한 인재들도 연구원으로 몰려들고 있다. 연구원 관계자는 "최근 해외 유수대학 출신의 박사급 70명이 지원을 했는데 그 중 8명만 서류전형을 통과했다"고 귀 뜸했다. 사실 이런 성장에 김형태 원장의 노력을 빼놓을 수 없다. 그는 중국사회과학원 금융연구소와 양해각서(MOU) 체결을 추진했고 국제통화기금(IMF), 세계은행, 아시아개발은행(ADB) 등 국제 금융기구와의 협력 관계도 다졌다. 김 원장은 파생상품실과 펀드·연금실을 신설하는 등 자본시장연구원을 '국가
김기석 로만손 사장은 창업주인 김기문 대표이사 사장(현 중소기업중앙회 회장)의 막내 동생이다. 로만손이 1988년 4월 설립됐고 김 사장이 1989년 1월 입사했으니 사실상 형제가 함께 창업한 셈이다. 김 사장은 입사 6년차인 1994년부터 시계부문 국내영업본부장을 맡았다. 어깨 너머로 형의 사업수완을 익혔고 중요한 순간마다 "나라면 이렇게 결정하겠다"라고 시뮬레이션을 거듭하며 경영 내공을 차곡차곡 쌓았다. 2002년 그에게 기회가 찾아왔다. 정체된 시계사업의 대안으로 주얼리 사업을 추진하게 된 것이다. 브랜드 콘셉트를 찾아 한달에 수차례씩 이탈리아 비행기에 몸을 싣고, 왕가의 생활상을 이해하기 위해 수많은 역사책을 뒤지며 어려운 브랜드 론칭 작업을 김 사장이 진두지휘했다. 주얼리와 핸드백을 합쳐 연매출 1000억원대 브랜드로 성장한 제이에스티나는 김 사장의 경영 데뷔작이자 성공작인 것이다. 김 사장은 2007년 최고경영자(CEO)로 정식 취임한 이후 로만손의 몸집을 3배 이상 키
백화점서 고급 모델 '아트락스' 내놓자마자 '완판' 70개국 年 2500만弗 수출, 주얼리·핸드백도 대박 국산 시계가 각광받던 호시절이 있었다. 1980년대 초·중반 얘기다. TV나 라디오 뉴스에 앞서 "OO시계가 O시를 알려드립니다"라는 시보 광고가 등장할 정도로 시계 브랜드의 영향력이 막강했다. 삼성, 아남, 한독 등 대기업들이 너도나도 시계 사업에 뛰어들었다. '오리엔트 갤럭시, '삼성 돌체' 등은 결혼 필수 예물이었고 최고의 졸업·입학 선물이었다. 1980년대말 시계 수입이 자유화되면서 시장이 급변했다. 고가의 수입 브랜드들이 '물좋은' 예물 시계시장을 석권했다. 중저가 시장은 중국산 제품에 자리를 내줬다. 갈 곳을 잃은 국산 시계 브랜드들은 매출 감소세를 지속하다 줄줄이 자취를 감췄다. 그 와중에서도 살아남아 대한민국 시계 자존심을 지켜주는 국산 브랜드가 있다. 바로 로만손이다. 1988년 창업당시 대기업 공세에 밀려 중동 수출로 활로를 찾아야했던 기업었지만 이제 100만원
한글과컴퓨터(한컴)가 변했다. 매출이 400억원에서 2년새 650억원대로 껑충 뛰었다. 노트북PC 등 '박스 유통'을 없앤 순수 SW 판매만의 '진성매출'이다. 37%의 영업이익은 더욱 놀라운 수치다. 하지만 이 조차 외형이다. TV에 개발자 구인광고를 내도 지원하지 않던 회사. 경영권 분쟁을 거치며 조직에 몸담고 있는 게 부끄러워 하나 둘 떠난 기업. 한컴에선 미래를 찾을 수 없다는 분위기였다. 상황은 역전됐다. 이제는 우수한 개발자들이 한컴을 찾는다. 10대 1 미만이던 채용 경쟁률은 55대 1이 됐다. 개발자만 30대 1 수준이다. 한컴 개발자들은 작년에 연차, 직급에 관계없이 스톡옵션을 받았다. 한컴에선 개발자가 '왕'이다. 이런 변화의 중심엔 이홍구 대표가 있다. 시쳇말로 '다국적IT기업에서 박스 장사가 몸에 밴' 그가 한국을 대표하는 SW 기업 CEO가 됐을 때, 주변의 시선이 반신반의였던 게 사실이다. 다국적 IT기업 국내 지사에서도 놀라울만한 실적을 보이며 승승장구했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