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투초대석]김정훈 국회 정무위원장은 누구
'부산과 대한민국, 금융'
이 세 단어를 빼고는 김정훈(56) 국회 정무위원장을 설명하기 힘들다. 부산 남구갑에서 내리 3선을 한 김 위원장의 '지역 사랑'은 정평이 나 있다. 중진의원으로 대한민국의 금융과 공정거래를 책임진 정무위를 맡고 있으면서도 부산과 자신의 지역구인 남구갑의 현안을 소홀히 한 적이 없다. 동남권 신공항, 해양금융공사 유치 등 굵직한 현안 마다 선봉에 섰다.

그의 관심은 지역에만 그치지 않는다. 그 매개에 '금융'이 있다. 부산을 해양금융과 파생금융 등 특수금융의 '메카'로 키워 부산 경제를 살리고 대한민국 경제 발전에도 토대를 만들겠다는 것이 정치인 '김정훈'의 포부다. "세계적인 해양항만 도시들은 대부분 금융 산업이 발달했으며, 부산도 금융을 함께 키워야 세계적인 도시가 될 수 있다. 그래야 한국 경제에도 도움이 된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다. 김 위원장은 이를 위해 부산 문현금융중심지를 발전시키는데 앞장서 왔고, 최근에는 카이스트 금융전문 대학원을 이곳에 유치하는데 성공했다.
부산 남구가 세계 유일의 유엔 평화 특구로 지정된 것도 의정 활동 과정에서 보람으로 꼽는다. 김 위원장은 "동북아의 긴장이 높아지고 있는 가운데 우리나라가 살 수 있는 길은 바로 외교력"이라고 말했다.
1989년 제31회 사법시험에 합격해 변호사로 활동하던 김 위원장은 지난 2002년 대선 때 한나라당(현 새누리당) 이회창 후보의 법률 특보로 활약하면서 정치권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이를 계기로 치열한 경쟁을 뚫고 17대 총선에서 공천을 따낸 뒤 18,19대까지 파죽지세로 당선됐다.
김 위원장의 어렸을 때 꿈은 정치인이 아닌 과학자였다. 그는 "초등학교 때는 미 항공우주국 나사에서 일하는 과학자가 꿈이었다"며 "집 옆에 공터 지하에 연구실을 만든다고 삽으로 며칠을 파다가 아버지에게 야단맞은 적도 있다"고 소개했다. 아버지가 사업에 실패하면서 경제적인 어려움을 겪기도 했다. 김 위원장은 "부모님과 4형제, 여섯 식구가 18평 아파트에서 10년 가까이 살았다"면서 "방이 좁아 잘 때 책상 의자를 책상에 얹고 자곤했다"고 회고했다. 처음 만나면 구수한 부산 사투리 억양이 인상적이다. 활발하고 사교적인 성격에 추진력을 겸비했다는 평가다.
<약력> △1957년 부산 출생 △부산고, 한양대 법학과 졸업 △1989년 제31회 사법시험 합격 △제17·18·19대 국회의원 △부산시당위원장 △2009~2010년 한나라당 원내수석부대표 △현 국회 정무위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