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T시평
세상이 급박하게 돌아가고 있습니다. 어떤 사건이 역사에 남을 만한 것인지 판단할만한 여유도 없습니다. 시사에 대한 지식인들의 평론은 독자 여러분의 판단에 도움을 줄 것입니다.
세상이 급박하게 돌아가고 있습니다. 어떤 사건이 역사에 남을 만한 것인지 판단할만한 여유도 없습니다. 시사에 대한 지식인들의 평론은 독자 여러분의 판단에 도움을 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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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노무현 대통령이 국민으로부터 재신임을 받겠다고 천명한 이후로 정국이 연일 들끓고 있다. 물론 재신임이 문자 그대로 “깜짝 카드”인 것은 분명하지만 노무현 대통령이 이런 극단적인 행동을 선택하게 된 상황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취임 이후 지속적으로 추락해 온 정권지지율에서 보듯이 국정의 전분야가 난맥상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재신임은 이런 총체적 난국을 돌파하기 위한 최후의 수단이라고 해석할 수도 있다. 그러나 필자는 재신임이라는 극단적 처방에 반대한다. 그러나 그 이유는 요즘 정치권이 운위하듯이 재신임이 위헌이라고 생각해서가 아니다. 위헌 여부는 헌법학자들이 판단할 문제다. 필자가 재신임에 반대하는 이유는 그것이 참여정부가 처한 난국의 원인을 잘못 진단한 데서 연유하는 잘못된 처방이기 때문에 그러하다. 물론 참여정부의 인기가 바닥권인 것은 사실이다. 그리고 무엇 하나 속 시원하게 해결되는 것이 없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그 이유가 이 정권의 정당성 부족
지진이 나기 전 과학적인 데이터로 아직 지진발생 여부가 아직 감지되기 전에 동물들이 먼저 움직이는 경우가 있다. 과학적인 접근으로는 설명하기 힘든 부분이기는 하지만 본능이라는 것은 과학적으로 설명이 불가능한 그 무엇을 감지하는 능력이다. 특히 위험이 닥쳐올때 본능은 더욱 날카롭게 작동한다. 가끔씩 "동물의 왕국"을 시청하다보면 사자가 덮치기 전 사슴은 굉장히 불안한 움직임을 보이는 모습을 볼 수가 있다. 케인즈는 기업의 투자가 "동물적 본능"에 의해 결정된다고 기술했다. 물론 기업의 투자가 변동성이 크고 불안하다는 의미이기는 하지만 이를 거꾸로 보면 기업을 오래 경영하다보면 기업인들에게 돈의 흐름과 경제가 움직이는 데 대한 본능 같은 것이 키워진다는 해석도가능해진다. 물론 경제라는 것이 과학적인 분석도 가능하고 여러 가지 지표를 가지고 현재상태를 짐작할 수 있지만 장바구니를 들고 장에가 반찬거리를 사들이는 주부들이 느끼는 물가가 훨씬 더 정확할 수 있는 것처럼 경제의 현장에서 뛰
외환시장이 따끈따끈하게 달아 오르고 있다. G7 재무장관 회담에서 “유연한 환율정책”이라는 표현을 통해 달러화 약세가 예고된 이후 일본 외환시장은 물론 우리나라까지 그 여파에 몸살을 앓고 있다. 한때는 심리적 마지노선이라고 볼 수 있는 달러당 1150원선의 지지 여부가 시험대에 오르기도 했다. 외환시장이 달아 오르면서 덩달아 부산해진 것이 한국은행이다. 드러내 놓고 말할 수는 없지만 아마도 최근 몇 차례의 외환시장 개입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필자는 한은에게 “신중하라”고 권고하고 싶다. 그 이유는 필자가 기본적으로 중앙은행의 외환시장 개입에 회의적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지금은 단순히 외환시장의 일시적 동요에만 관심을 두고 환율정책을 펼 때가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지금은 장기적인 관점에서 여러 요인을 고려하여 바람직한 환율수준을 조망해 볼 때다. 첫째로 현재의 환율수준이 경상수지의 장기적 균형을 엇비슷하게나마 보장해 주는 수준인가 하는 점이다. 이에 대한 대답
은유적인 화법이었긴 하지만 G7 국가들이 엔과 위안의 절상을 촉구하는 공동선언문을 발표했다. 경상수지 적자가 GDP의 5%를 넘는 미국으로서 뭔가 근본적인 대책을 강구해야 함은 분명하다. 그 중에서도 환율정책이 매우 중요한 부분을 차지해야 하는 점도 이해가 간다. 그런데 미국이 달러를 하락시키려는 방법이 묘하다. 이자율을 내리거나 달러를 매각하는 경제적인 방법이 아니라 유럽을 꼬드겨서 중국과 일본에 구두압력을 넣는 외교적 편법을 행사하고 있는 것이다. 참으로 부시(Bush)다운 발상이다. 미국사람들이야 원래 그런 사람들로 치부해 버린다 하더라도 유럽이 가담하는 품세가 야릇하다. 이 공동선언문은 몇 가지 유사성 때문에 1985년 플라자 협정과 같은 달러하락 협정으로 가는 준비단계로 인식될 수 있다. 당시에도 미국의 경상수지 적자가 GDP의 5%를 들락거리고 있었고, 유럽이 미국을 도와 달러 폭락을 유도하는데 성공하였다. 하지만 그 때와 지금은 상황이 다르다. 당시 유럽과 일본은 기운이
지난 여름 개인투자자를 대상으로 실시하는 기업IR(Investor Relations : 투자자에 대한 재무홍보) 행사에 몇 차례 참가할 기회가 있었다. 행사를 하는 기업은 대부분 한국을 대표할만한 유력 상장기업이었다. 각사의 CEO(최고경영자) 또는 IR담당임원이 나와서 고급용지에 방대한 양의 정보가 수록된 자료를 배포한 후 열심히 설명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문제는 설명의 내용이었다. 청중의 대부분이 개인투자자라는 사실을 알고 있는지 의문을 갖지 않을 수 없을 정도로 어려운 내용이었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프로 애널리스트나 펀드매니저가 아니면 이해할 수 없을 것 같은 전문용어와 외국어 그리고 복잡한 숫자의 나열이었다. 30년 이상을 증권업계에 종사해온 필자로서도, 공부 부족 탓이겠지만, 이해를 하기 어려운 부분이 너무 많은 것이었다. 이런 내용을 아마추어 일반투자자들이 과연 몇 %나 이해할 수 있을지, 의문을 갖지 않을 수 없었다. IR행사를 하는 기업측은 참가자가 개인투자자라는 사
수없이 강조되는 구조조정과 개혁노력에도 불구하고 우리경제의 시계는 여전한 불확실성에 가려져 있다. 이는 주변환경이 워낙 빠르고 심각하게 변하고 있는데도 원인이 있겠지만 기본적으로 우리의 노력방향이 중장기적 불확실성 제거에 효과적이지 못하기 때문이다. 구체적으로 급속하게 노령화가 진행되는 우리사회에서 미래의 소비흐름을 안정적으로 가져가기 위한 제도, 산업공동화를 극복하기 위한 방안, 통일이후 대비전략의 미비나 부재는 요소시장의 낙후성과 더불어 장기투자의 걸림돌이다. 개혁의 방향이 설득력있게 제시되었다 하더라도 일관된 흐름하에서 치밀하게 움직여지는 모습보다는 단편적인 단기성과위주의 노력이 일순간 강조되다 잊혀지다하는 상황이 되풀이 되는 느낌이다. 어떻게 우리 경제의 구조적 문제를 제거하는 노력을 시장의 흐름에 맞추어 나가면서 중장기 불확실성을 제거할 수 있을까? 우선 우리는 현 상황의 원인을 거시적 구도하에서의 체제적 문제로 인식할 필요가 있다. 현재 빠르게 진전되고 있는 세계화의
요즘 직장인들 사이에서 인기 최고인 집단은 단연 외국인 주식투자자들이다. 할 줄 아는 것이라고는 안전빵 차익거래 밖에 없는 국내기관은 영 밉상이지만 소신투자로 주가를 홀로 끌어올려 작년에 본 손해 ‘반까이’하게 해 준 외국인들은 껴안아 주고 싶다. 주식에 투자한 직장인뿐만이 아니다. 이번 정권에 깊숙이 관여하고 있는 사람들도 외국인들이 기특한 눈치다. 정권이 조장하고 있는 정책 불확실성과 좌익성향이 외국인들을 내쫓고 있다는 보수언론의 반복된 보도와는 달리 외국인들은 두 팔 벌리고 우리 주식시장에 뛰어 들고 있지 않은가? 노조도 마찬가지다. 파업 조금 한다고 외국인 도망가는 건 아니라는 걸 주장하고 싶으면 즉시 주가를 들먹인다. 심지어 강남부동산 대책에 골몰하고 있는 관료도 외국인에 기대고 싶은 듯하다. 백약이 무효인 상황에서 이 쪽이 뜨면 그 쪽이 좀 잠잠해지는 걸 기대해 보는 것이 최후의 대책인 듯하다. 수천달러짜리 양복에 빨간 넥타이를 맨 MBA의 푸른 눈은 우리가 모르는 뭔가를
최근 신임 대법관의 추천과 관련하여 법원 안팎에서 작은 “소요”가 있었다. 연공서열에만 치중하지 말고 사회 전반의 요구를 수용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있었던 반면, 대법관의 임명제청권은 대법원장의 고유권한이라는 목소리도 있었다. 양자의 갈등은 “이번은 그냥 넘어가고, 다음부터는 다른 목소리도 반영하겠다”는 절충형 약속에 의해 서둘러 봉합되었지만 이번 사건이 제기한 문제의 본질은 계속 우리 사회의 숙제로 남아 있다. 필자는 법을 전공한 사람이 아니다. 따라서 이제부터 필자가 제기할 논점은 사계의 권위자가 심도있는 해설을 하는 것과는 거리가 멀다는 점을 미리 밝혀둔다. 다시 대법관 임명제청의 문제로 돌아가 보자. 이 문제는 제청권자인 대법원장이 보유한 재량권의 한계가 어디까지인가 라는 물음으로 재포장될 수 있다. 우리는 흔히 재량권이라는 말을 할 때 그 권한을 “내 마음대로” 행사할 수 있다는 자유재량의 뜻으로 이해한다. 그러나 필자는 몇 년전 미국에서 재량성과 관련하여 아주 충격적인 사건
어떤 사람이 절벽에서 발은 헛딛고 추락하다가 그만 나무뿌리를 하나 잡아서 겨우 추락을 모면한 채 버티고 있었다. 살려달라고 온힘을 다해 외치는 그에게 하늘에서 음성이 들려왔다. “나무뿌리를 놓아라” 그러자 이 사람은 나무뿌리를 놓지 않고 더욱 더 크게 살려달라고 외치기 시작했다. 다시 하늘에서 음성이 들려왔다. “괜찮으니 나무뿌리를 놓아라.” 그러자 그 사람이 나무뿌리를 더욱 꼭 잡은 채 외쳤다. “거기 하나님 말고 딴 사람 누구 없소?” 퀴즈 하나 내보자. 1억을 2억 만들 때까지 연 x%로 y년이 걸린다. 당연히 x가 크면 y가 작고 x가 작으면 y가 크다. x와 y사이에 어떤 관계식이 있을까? 답은 x와 y의 곱이 72가 된다는 것이다. 이 공식을 일인당 국민소득에 적용해보자. 지금 일인당 GDP가 1만달러 정도다. 국민소득 2만달러이면 지금의 두배이다. 두배가 될 때까지 걸리는 시간은 전적으로 성장률에 달려있다. 인구증가율 등의 변수를 무시하고 위의 관계식을 가지고 근사적
금년들어 가시화된 성장률의 저하는 첫째, 우리경제의 경쟁력퇴조로 성장동인에 이상징후가 본격화되었음을 시사한다. 더 이상 세계화의 파고는 자체적 추진력 없는 경제의 안정기조 유지를 허용하지 않는다. 물론 세계경기가 회복된다면 우리도 좋아질 것이나 과거 패러다임에만 의존해서는 선진경제권 진입에 필요한 추진력을 확보할 수 없다. 중국의 대두와 더불어 심화된 일본과 독일의 디플레이션은 특히 임금이 신축적으로 조정되지 못하는 우리의 현실에서 고용사정 악화로 나타날 뿐이다. 둘째, 성장활력의 저하는 정책노력만으로 한계에 봉착했음을 시사한다. 세계적 저금리추세하에서 통화정책의 유효성을 기대하기 어려운데다 부실화가능성이 높아진 상황에서 신용공급의 위축은 곧바로 소비와 투자부진을 촉발하고 있다. 그동안 새로운 소비자신용시장덕에 우리나라는 상대적으로 양호한 모습을 보여왔으나 이제 더 이상 소득증가없는 신용증가는 기대하기 어렵다. 현 상황을 잘 유지해나가는 것만도 쉽지 않은 과제이다. 자칫 신용불량
왜 LG-필립스 공장은 괜찮고 우리의 에이스 기업인 삼성전자 공장은 수도권에 지으면 안되나? 요즘 경제현안으로 떠오른 수도권집중억제 정책의 한 단면이다. 한 일년 붙잡고 달달 외어야 이해가 될 정도로 복잡다기한 각종 수도권규제 관련법규와 예외조항의 복합적 산물이다. 정비되어야할 것은 수도권 난개발만이 아닌 것 같다. 수도권규제체제 자체가 대폭 정비되어야 할 듯하다. 하지만 이 보다 더 근본적인 문제를 한 번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왜 수도권집중억제를 해야하나? 국토의 균형발전을 촉진하기 위해서라고 한다. 참 아름다운 말이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면 이해가 가지 않는다. 왜 국토균형발전 그 자체가 국가의 목적이 되어야 하는지. 경제성장에는 하나의 큰 제약이 따른다. 성장동력에 큰 타격을 주지 않는 한 모든 사람이 성장의 혜택을 골고루 누리도록 하여야 한다. 국토균형발전이란 목표는 여기에 추가적인 조건을 첨가하는 셈이다. 이를 위해서는 모든 사람이 성장의 혜택을 ‘할아버지가 태어난
참으로 산 너머 산이다. 연초부터 북핵사태를 필두로 SK 글로벌과 카드채 문제가 한국 경제를 짓누르더니 최근에는 단연 노동문제가 새로운 화두로 등장하고 있다. 특히 최근 경제5단체장들이 “법대로”와 “공장이전”이라는 협박성 발언을 서슴지 않고, 이에 맞서 민노총등 노동계가 파업으로 맞불을 놓고 있어 노동현장에는 전운이 짙게 깔리고 있다. 이에 대한 정부의 공식적인 반응은 “엄정한 법집행”이다. 이것은 옳은 말이다. 법이란 바로 이런 갈등상황을 교통정리하기 위해 만들어 놓은 것이고, 또 국가란 법을 그대로 강제하기 위해 존재하는 기관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소위 “법대로 하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며 또 국가가 그것을 제대로 하고 있는가 하는 점일 것이다. 우선 “법대로”란 무엇을 의미하는가? 그것은 한편으로 사용자와 피용자 각각에 대해 현행 법이 보장하고 있는 각종 권리가 철저히 보호되도록 하면서, 다른 한 편으로는 그런 권리가 현행 법의 테두리를 뛰어넘어가면서까지 행사되는 것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