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T시평
세상이 급박하게 돌아가고 있습니다. 어떤 사건이 역사에 남을 만한 것인지 판단할만한 여유도 없습니다. 시사에 대한 지식인들의 평론은 독자 여러분의 판단에 도움을 줄 것입니다.
세상이 급박하게 돌아가고 있습니다. 어떤 사건이 역사에 남을 만한 것인지 판단할만한 여유도 없습니다. 시사에 대한 지식인들의 평론은 독자 여러분의 판단에 도움을 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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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초부터 일련의 악재를 계기로 나타난 SK 및 카드채사태는 앞으로 거시금융안정을 지켜가는 일이 결코 순탄치 않음을 예고하고 있다. 발 빠른 정책대응으로 시장심리는 비교적 빠르게 안정되었지만 시장에 내재된 불확실성은 미래와 관련된 위험의 파악이나 대비자체를 원천적으로 가로막고 있다. 당장 일부업종의 호전기대로 활력이 되살아난다고 해도 다양한 충격을 이겨낼 수 있는 시장의 대응력 제고는 근본차원의 노력미흡으로 심각한 한계에 봉착해 있다. 흔히들 현 경제상황의 악화를 정책대응의 실패로 치부하려 한다. 그러나 현재 시장에서 나타나는 각종 징후들은 정책자체의 문제라기 보다 금융시장의 구조적인 문제가 방치된 결과이다. 복잡다기화된 충격전달과정이나 정책대응경로로 인해 금융시장의 정상적 작동없이는 위험차별화 자체가 불가능하기 때문에 효율적 자원배분을 기대할 수 없기 때문이다. 현 상황을 보더라도 가장 시급한 금융시장 여건이 성숙하지 못함에 따라 우리는 수시로 금융불안을 경험하고 성장탄력이
지난 2월 새 정부가 내각을 발표했을 때다. 뭐 눈엔 뭐만 보인다고 국제경제학이 전공인 필자의 관심은 문광부와 농림부 장관에 쏠렸다. 스크린쿼터 사수운동의 핵심인물 영화감독 이창동, 그리고 쌀시장 개방반대 삭발투쟁과 한-칠레 자유무역협정 비준 반대운동의 국회의원 김영진. 한국 경제가 성장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개방이라고 생각하는 필자의 입장에서는 실망스러운 선택이었지만 진보 정부에 걸맞는 인선이라 생각했다. 또 이창동 감독의 영화는 전부 보았을 정도로 이창동 감독의 팬이기도 했다. 그러나 동북아경제중심 정책이 정부의 핵심정책으로 포진하고 있다는 사실은 필자를 어리둥절하게 했다. 동북아의 경제중심이 되려면 - 비록 그것이 전부는 아니라 할지라도 - 외국인 직접투자를 많이 유치하여야 한다. 경제자유지역의 선포도 결국 사회간접자본 제공과 조세감면으로 외국기업을 유치하려는 노력이다. 또 많은 금융인들이 관심을 가지고 있고, 현실성도 있어 보이는 금융의 허브가 되기 위해서는 외국의
필자가 최근에 투자자별 거래량과 우리나라 주가지수선물가격의 움직임에 대해 분석한 논문의 결과에 따르면 외국인 투자자의 매수거래량이 증가하면 선물가격이 오르고 매도거래량이 증가하면 선물가격은 하락한다. 반대로 개인투자가의 매수물량이 증가하면 선물가격이 떨어지고 반대로 매도물량이 증가하면 선물가격은 상승하는 것으로 분석되었다. 외국인들이 매수를 시작하면 한발 늦게 개인투자자들이 추격매수를 하면서 가격을 올리면서 외국인은 이익을 보게 된다는 얘기도 된다. 매도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실제로 99년도에 우리나라 선물시장에서 주목을 받았던 홍콩계 펀드의 경우 단타매매를 통해 상당한 수익을 올린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홍콩 물고기”라는 별명을 얻었다. 그런데 이렇게 별명이 붙여질 정도로 주목을 받으면 상당히 유리한 입장이 된다. “홍콩물고기”가 본격적으로 선물매수를 시작했다고 소문이 나면 국내투자자들이 추격매수를 하면서 가격이 오르고 거꾸로 매도포지션을 취한다는 소문이 나면 투자자들이 달려들
6월 초가 되면 노무현 정부가 출범한 지 100일이 된다. 돌이켜 보면 지난 100일은 참으로 다사다난한 기간이었다. 아니 다사다난 보다는 우왕좌왕이 더 정확한 표현일 지도 모른다. 취임 벽두부터 SK 글로벌의 수사외압과 관련하여 경제부총리와 금감위원장이 큰 홍역을 치렀다. 국무총리가 경제정책에 개입하는가 하면 부총리가 중앙은행의 고유영역인 통화정책에 대해 이러쿵 저러쿵 논평을 아끼지 않기도 했다. 중앙은행 총재는 별로 효과가 없을 것을 알면서도 금리를 인하한다고 발표하는 희한한 광경을 연출하기도 하였다. 금융기관의 팔을 비틀어 카드사를 도와주는 억지대책을 발표하던 금감위 공무원은 "관(官)은 치(治)하기 위해서 존재한다"는 희대의 망발을 뱉어냈다. "관(官)은 봉사(serve)하기 위해 존재한다"는 공복(公僕)이라는 개념은 이제 우리 공무원 사회에서 영원히 증발해 버린 것인가. 그러나 경제정책의 희화화(戱畵化)보다 더 우려스러운 것은 경제정책이 경제문제를 치유하기는커녕 오
수년전부터 일각에서 거론되던 디플레이션이 이웃나라에서 심각한 양상으로 전개됨에 따라 이에 대한 경각심이 일고 있다. 최근의 디플레이션은 생산성증대에 따른 유익한 디플레이션과는 달리 30년대와 같이 구조적 수요부족에 의한 해악적 디플레이션으로 현재 일본과 독일에서 과잉생산, 기업부실, 금융부실의 과정을 밟으며 전개되고 있다. 모순적으로 보일만큼 현 디플레이션의 징후는 그동안 우리가 성공적으로 추구해온 노력의 부산물이다. 인플레이션에 익숙한 경제주체들은 냉전 이후 모든 정책노력을 인플레이션 방지에 맞추어왔으며, 인터넷과 정보통신기술의 비약적 발전과 생산성 증대에 대한 기대는 자산시장호황으로 이어져 튼튼한 수요기반으로서의 역할을 해왔다. 세계화추세에 따른 아웃소싱과 규제완화는 자원배분의 효율성을 높이고 세계적 분업체계를 형성해 인플레이션 없는 성장에 기여했다. 이제 이러한 패러다임의 부작용이 부각되는 시점에 도달했다. 주식시장에 반영된 기업수익성의 한계는 투자기회의 축소이며 시중자금의 부
말도 많던 금리, 결국 금융통화위원회가 콜금리를 0.25%포인트 내리기로 결정했다. 필자는 금융전문가는 아니다. 하지만 나름대로 경제학을 열심히 공부한 사람의 입장에서 볼 때 금리인하를 둘러싼 최근의 논쟁에는 이해하기 힘든 구석이 많다. 우선 `인위적 경기부양'은 하지 않겠다는 말이 요상하다. 그럼 자연적 경기부양책이란 것도 있단 말인가? 이 표현이 경제책임자들의 입에서 반복되게 것은 아마도 노무현 대통령이 취임 전후에 이 말을 했기 때문인 것으로 추측된다. 필자는 이 말을 잠재성장률을 7%로끌어올리겠다는 선거공약을 지키기 위해 일시적 효과밖에 없는 재정정책이나 금리정책을 쓰지 않겠다는 뜻으로 해석했다. 그렇다면 백번 지당한 말씀이다. 문제는 올해 성장률이 잠재성장률로 추정되는 5%대를 미달할 것이 거의 확실해진 뒤에도 인위적 경기부양을 하면 안 된다는 주장이 반복되었다는 것이다. 잠재성장률보다 낮은 성장률을 잠재성장률로 끌어올리는 정통적인 경기안정화 정책을 사용하면 안 된다는 것은
지난 3월말 정부가 발표한 경제운용 방침에 이례적 시책이 몇건 포함돼 있다. 임시투자세액 공제시한 연장등 시장 참여자에게 고루 혜택이 가는 중립적 투자진작 조치 외에 몇몇 대기업만을 대상으로 한 규제 완화가 나와 눈길을 끌었다. 새 정부 출범을 맞아 그동안 기업투자를 저해한 미해결 과제를 모두 개선한다는 배경설명 뒤에 기업 이름과 조치내역이 적시돼 있다. 동부전자의 1조4천억 투자 건에 대해 환경 규제, LG필립스 파주 LCD공장에 대해 수도권공장 신증설 규제, 영국 AMEC사의 1조원 건설사업과 미국 Gale사의 127억달러 투자에 대해 투자 애로를 각각 해소한다는 내용이다. 경제분야의 특별사면이라 할 만하다. DJ정부가 임기말 선심행정으로 오해살까 봐 미뤄 온 것을 참여정부가 고민 끝에 결단한 것이리라. 투자기대 효과가 17조원 이상, 중소기업의 건축허가 제한 1,570여건도 풀린다고 덧붙였다. 특혜 시비라도 일까 봐 꽤 신경쓴 모습이다. 극단적인 자유시장론자들도
집단소송제의 도입이 산고를 거듭하면서 가닥을 잡아 가고 있는 와중에 분식회계 사면에 대한 찬반양론이 가열되고 있다. 분식회계는 일부기업에 한정된 예외사항이라고 지금까지 감독당국은 발표해 왔다. 심지어 미국의 엔론사태가 발생하였을 때 미국보다 우리나라의 회계감리가 철저해 회계의 투명성에 관한 한 우리나라가 미국보다 한 수 위라는 감독당국자의 발언도 있었다. 그러나 지금 분식회계에 대한 일괄사면론이 고개를 드는 것을 볼 때 속고 살아온 투자자들은 언제까지 속아야 할지 끝이 보이지 않는다. 고개를 넘어 가는 할머니에게 호랑이가 팔 하나만 떼어 주면 잡아먹지 않는다고 해 팔 하나를 주었더니 계속 같은 요구를 하다가 결국 할머니를 잡아먹었다는 이야기가 있다. 지금 분식회계에 대해 일괄사면을 하면 향후 분식회계가 재발하지 않는다는 그 어떤 보장도 없다. 호랑이에게 잡아먹히지 않기 위해서는 호랑이를 쫓아 낼 수 있는 힘을 가져야지 호랑이의 자비심에 의존할 수 없다는 것이 우리가 금과옥조로 여
동료 교수가 얼마 전 미국 대학에서 안식년을 마치고 귀국했다. 이런 저런 얘기를 하는 중 화제가 9.11 테러로 옮겨졌다. 미국 대학 정치학과 교수와 어느 날 식사를 하게 되었는데 그 정치학교수가 9.11 테러 얘기를 하다가 울더라는 것이었다. 혹시 가족이나 친지가 희생당한 일이 있느냐고 나중에 물어보니까 전혀 그런 일이 없다는 것이었다. 그 얘기를 들은 필자로서도 충격적인 얘기였다. 9.11 테러가 미국인들을 변화시켰다는 얘기를 많이 들었지만 그 변화가 어떤 정도인지를 조금은 짐작할 수 있었다. 미국은 확실히 변했다. 이라크 전쟁을 모든 나라의 반대를 무릅쓰고 수행한 배경에는 9.11 테러생각만 하면 분하고 억울해지고 그래서 미국에 위협이 되는 요소는 그 싹부터 잘라버려야 한다는 많은 국민들의 울분에 찬 공감대가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흔히들 거리에 나와 반전 시위를 벌이는 모습을 뉴스로 접하면서 부시 대통령이 상당한 반대에 봉착하는 줄 알았지만 말없는 다수는 전쟁을 수행하는
5공 전두환 정권도 적어도 경제 운용에서는 눈길가는 업적이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통화 재정의 긴축과 3%대 물가 안정이 바로 그것이다. 정통성 시비에 시달린 전두환 정권은 그 보상심리 때문인지 경제 운용에서 뚜렷한 정책 일관성을 보였다. 그 결과 연 30%선을 넘나들던 인플레를 잠재우고 흑자재정의 기반을 구축, 86-88년 호황을 만끽할 기초를 다졌다는 평가다. 인기없는 긴축을 고수한 결과 체질이 개선된 경제를 넘겨줄 수 있었다. 반면 김영삼 정권은 팽창정책에 탐닉하다 IMF 구제금융의 나락으로 굴러 떨어졌다. 당시 박재윤 경제수석은 개혁을 위한 진통제라는 명분을 앞세워 때늦은 경기부양책을 강행했고, 국제수지 적자가 눈덩이처럼 커져 외환위기를 불렀다. 참여정부가 이어받은 우리 경제의 실상은 어떠한가. 김대중 정권은 국민들의 피와 눈물과 땀 덕분에 일단 공황상태를 벗어나 회복국면에 진입한 경제를 남겼다. 엄청난 규모의 국가채무도 함께 남겼다. 그동안 진행된 수많은 구조조정
청와대의 수석비서관 자리는 참 어려운 자리다. 대통령의 신임과 본인의 능력, 의지에 따라 그 임무와 영향력이 천변만화하기 때문이다. 특히 경제정책을 총괄했던 과거 경제수석의 입지는 이런 가변성의 극치를 보여준다. 어떤 경우에는 관련 부처 장관을 제치고 실질적인 경제대통령으로 경제정책을 총괄하기도 했지만, 때로는 관료들의 집중견제속에서 아무 것도 하지 못하는 불구자로 전락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런 가변성에도 불구하고, 경제수석의 역할에 대한 일반적인 시각은 대략 대통령의 경제분야 가정교사로서 한편으로는 대통령의 뜻을 경제부처에 전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경제부처의 정책에 대한 평가를 대통령에게 전하는 통로 역할을 하는 것 정도일 것이다. 물론 수시로 이곳저곳에서 경제현실이나 경제정책에 대한 여론을 청취하여 이를 의사결정과정에 반영시키는 것도 중요한 역할중의 하나로 간주된다. 경제수석 자리는 이번 정부 들어 표면적으로 보면 더욱 강화되었다. 정책실장이라는 새로운 간판을 달고 활동을 시작
미국과 이라크의 축구 경기에서 미국 선수가 심판의 제재를 완전히 무시하고 페널티 박스 안에서 이라크 수비수에 치명상을 입힌다. 그래도 아무 일도 없다. 그런데 미국과 한국의 경기에서 한국 선수가 미국 선수를 건드리지도 않았는데 심판은 한국 선수에게 레드카드를 꺼내 보인다. 이게 무슨 놈의 세상인가? 레드카드는 심할지 모르지만 혹시 한국 선수가 잘못 했을 수도 있다고 한다면 매맞기 딱 좋은 이야기일까?. 미국 상무부가 하이닉스 D램에 50%가 넘는 고율 상계관세를 부과하는 예비판정을 내리더니 연이어 유럽연합도 30%가 넘는 상계관세를 책정하고 나섰다. “세상에 그런 반칙이 어디 있어? 내정간섭 아니야?” 이것이 보편적인 관중의 반응이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그런 반칙은 있다. GATT의 `정부 혹은 정부의 통제 하에 있다고 판단되는 기관이 특정기업을 도와줄 목적으로 부채를 경감해 준' 반칙에 해당된다. 원래 있었던 GATT 보조금 규정이 이렇게 구체화되고 강화된 것은 94년의 우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