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참사]진도 실내체육관 다시 찾은 단원고 교사들

처음 선생님이 될 때는 이렇게 책임이 큰 직업인 줄 몰랐다. 이렇게 힘들 줄도 몰랐다. 매일 투닥거리던 아이들의 모습이 아직도 눈앞에 잔상으로 남았다. 충격이 가시지 않았지만 그런 상태로 학과목 수업을 해야 했다. 괴로운 마음을 어디다 꺼내 보일 수도 없다. 선생님이기 때문이다.
"참아내고 있는 거죠. 우리가 티를 내면 아이들이 더 힘들어질 테니까. 억지로 밝은 척 하는 게 가장 힘들죠."
30대 초반의 젊은 남자 선생님은 힘겹게 웃으며 얘기했다. 안산의 단원고 선생님들 58명은 2일부터 주말마다 교대로 조를 짜 진도에 내려와 진도체육관과 팽목항에서 밤을 지새우기로 했다. 선생님들이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아도 그냥 자리라도 지키려 한다. 선생님들은 평일에는 학교에서 수업을 하고, 주말이면 진도에 내려온다.
"저는 수업 도중에 운구차가 학교로 들어올 때가 힘들더라고요. 운구차가 들어오면 영정사진을 가진 상주가 운동장을 한 바퀴 돈 뒤 교실로 들어오잖아요. 아이들이 그 사진을 보고 울고 우울해진 상황 속에서 또 다음 시간 수업을 준비하는, 그 시간이 정말 힘들죠."
존경하던 교감선생님이 살아남았다는 사실을 비관하며 자살했고 매일 얼굴보고 지내던 동료 선생님 8명이 아직 저 캄캄한 바다 속에서 나오지 못했다. 매일을 투닥거리던 아이들도 물 속에서 나오지 못하고 있다. 2일 현재까지 아직 구조되지 못한 희생자는 76명. 이중 2명을 제외한 74명이 다 단원고 사람들이다.
"우리 학교가 있는 동네는 정말 작은 동네에요. 서로 누가 어디 사는지 다 아는 그런 동네." 40대 여자 선생님은 10년 넘게 안산 단원고가 있는 동네에서 살았다. 아이들이 태어났을 때부터 커오는 과정을 다 지켜봤다는 선생님의 눈시울은 금방 붉어졌다. "생각해보니 그렇네. 그 아이들 커오는 모습을 내가 다 봐 왔네."
17일간의 혼돈으로 마음이 너덜너덜해졌지만 선생님들은 할 수 있는 말이 많지 않다고 말했다. 아이를 잃은 학부모들의 원망을 들어드려야 할 책임이 본인들에게 있다는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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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님들이 초반에 저희에게 원망과 하소연을 많이 하셨어요. 왜 수학여행을 보낸 거냐, 그런 날씨라면 출발을 하지 말았어야 하는 것 아니냐…"부모들은 더 이상 항의하지 않는다. 이제는 항의할 힘도 다 빠졌다. 선생님들은 이제 항의도 않는 부모들을 보면서 더 마음이 아프다.
원래라면 며칠 후인 스승의 날을 즐거운 마음으로 기다렸을 것이다. 선생님들에게 지금 바라는 것이 무엇이냐고 물었다. 남자 선생님은 말했다. "저희 모두 마찬가지에요. 지금 바라는 건 단 하나뿐이에요. 모든 아이들이 다 돌아오는 것. 그것 하나에요."
선생님이 된 후 가장 아플 올해 스승의 날, 지금 단원고 선생님들이 바라는 단 한 가지 선물은 아이들이 돌아오는 것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