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L] 대법원, PC 하드디스크 실물 제출 거부에 檢 차선책 제시

검찰이 법관사찰과 재판거래 등 사법농단 의혹 관련자들의 PC 하드디스크를 통째로 복제해 수사 자료로 활용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대법원이 하드디스크 실물의 제출을 거부하는 데 따른 차선책이다. 만약 대법원이 이마저 거부한다면 압수수색 영장 청구가 불가피하다는 관측이다.
사법농단 의혹 사건을 수사 중인 서울중앙지검 특수1부(부장검사 신자용) 관계자는 29일 "임의제출 방식을 따르되 검찰 관계자가 대법원에 가서 직접 하드디스크 원본을 이미징(복제)하는 작업을 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검찰로선 증거능력 있는 수사 자료를 확보하고, 대법원은 하드디스크 실물 제출에 따른 부담을 덜 수 있는 해법 가운데 하나다.
검찰은 지난 19일 양승태 전 대법원장과 박병대 전 법원행정처장(대법관) 등의 PC 하드디스크와 사건 관련자들의 업무용 휴대폰 기록, 법인카드 내역 등을 제출해 달라고 대법원에 요청했다. 그러나 대법원은 지난 26일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 관련 특별조사단의 자체 조사 때 확보한 410개의 문건만을 제출했다. 양 전 원장 등의 하드디스크는 이미 데이터 삭제장치인 '디가우저'를 사용해 파일들을 물리적으로 파기했고 다른 하드디스크 등도 개인정보보호법 등의 문제로 내줄 수 없다는 입장이다.
대법원 관계자는 "개인정보보호법 등 관련 법령에 위배되지 않는 구체적 방안만 확보돼 있으면 얼마든지 임의제출이 가능하다고 검찰에 밝혔다"며 "구체적 방안은 검찰과 협의를 해 봐야 한다"고 말했다. 검찰이 제안한 하드디스크 원본 복제에 대해선 "하드디스크에 저장된 전자정보 관리자로서의 책임을 다 할 수 있는 구체적 조사 방법에 관해 협의하고 있다"며 원론적 수준에서 답했다.
그러나 하드디스크를 복제할 경우에도 개인정보보호법 위반 문제를 피해갈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이 하드디스크 안에는 사법농단 의혹과 관련이 없는 개인적 자료들도 포함돼 있을 가능성이 높다는 점에서다. 당사자 동의 없이 이를 외부에 건넬 경우 개인정보보호법에 저촉될 수 있는데, 원본이 아닌 사본을 넘기는 경우에도 법령에 위배될 수 있다.
김명수 대법원장과 안철상 법원행정처장 등 사법부 수뇌부는 자료 제출을 압박하는 검찰에 어떻게 대응할지 고민을 거듭하고 있다. 검찰의 요구를 수용해 하드디스크를 통째로 넘길 경우 하드디스크에서 별도의 범죄혐의가 발견돼 논란이 확산되고, 이후 사법부가 검찰에 휘둘릴 수 있다는 우려에서다.
반면 자료 제출을 계속 거부할 경우 압수수색을 당할 가능성도 있다. 압수수색 영장 발부 여부는 판사가 심리하는데 사법부에 대한 압수수색 여부를 사법부가 스스로 결정하는 묘한 상황이 연출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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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검찰은 대법원을 상대로 자료 제출을 최대한 설득한 뒤 그래도 안 될 경우 압수수색 영장을 청구하겠다는 방침이다. 다만 역사상 유례가 없는 대법원에 대한 압수수색인 만큼 명분이 쌓일 때까지 충분한 시간을 가질 공산이 크다.
재경지법의 한 판사는 "대법원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에 빠진 것 같다"며 "일선 판사들 사이에서도 어떻게 해야하는지에 대한 의견이 분분하다"고 말했다. 서초동의 한 변호사는 "그간의 상황을 보면 검찰이 매우 강한 수사 의지를 보이고 있다"며 "결국에는 압수수색을 시도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고 밝혔다. 이어 "법원이 빠르게 결단을 내리지 않으면 상황이 점점 압수수색이 불가피한 상황으로 흘러갈 것"이라고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