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5조원의 수업료

[기자수첩]5조원의 수업료

김진형 기자
2002.03.27 12:38

[기자수첩]5조원의 수업료

“5조원의 대가로 우리가 얻은 것이 무엇이었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외국계 투자회사들이 국제통화기금(IMF) 체제를 전후해 우리 금융기관에 투자한 지분의 평가이익이 5조원대를 넘고 이들이 지금 이익실현에 나서고 있다는 얘기에 한 시중은행 관계자가 던지는 질문이다.

이들의 천문학적인 투자이익에 배아파할 필요는 없다. IMF 직후 너도나도 주식시장을 떠날 때 오히려 주식을 매수해 지금 엄청난 차익을 실현한 개인투자자가 있다면 아마도 우리는 '탁월한 투자감각을 지닌 사람'이라며 박수를 보냈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들의 지분매각 움직임이 우리에게 허탈함을 남기는 이유는 5조원의 대가로 우리 손에 남겨진 것이 별로 없다는 뒤늦은 아쉬움에서 기인한다.

IMF이전 국내 최대은행 중 하나로 꼽히던 제일은행이 뉴브리지 캐피털로 5000억원에 넘어가던 98년 12월, 뉴브리지와 정부는 선진금융기법의 이식으로 거래를 포장했었다. 지금 제일은행을 선진은행이라고 평가하는 사람은 거의 없는 듯 하다. 옛 국민은행이 골드만삭스에 싯가에도 못미치는 가격에 신주를 넘겨줬던 99년 6월, 역시 선진금융기법이 강조됐지만 골드만삭스의 가시적 기여를 찾기는 쉽지 않다.

물론 외국 금융기관들이 우리나라에 들어온 성과가 제로라는 얘기는 아니다. 실추된 국가신인도를 어느정도 끌어올릴 수 있었고 연봉제, 사업부제 등 새로운 제도들도 잇따라 도입됐다. 하지만 외양과 몇가지 제도는 바뀌었을 지언정 정작 중요한 금융시스템은 아직 바꾸지 못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지금 상황에서는 값비싼 수업료만큼 금융시스템을 바꾸지는 못했더라도 그나마 우리 모두가 선진금융기관의 실체를 바로 보는 공부만은 똑바로 했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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